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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들만의 발레는 없다!
더 이상 그들만의 발레는 없다!
  • 김정은 | 무용평론가
  • 승인 2018.08.3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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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발레단들의 유쾌한 도발
▲ 와이즈 발레단 소속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W시리즈 공연

발레에 대한 대중의 환상이, 발레를 여전히 귀족예술이니 소수계층의 이데올로기적 상징물 혹은 돈이 엄청나게 드는 예체능 정도로 치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발레리나, 발레리노는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우아하기만 한 직업은 아니다.


과거 스타급 무용수인 강수진의 발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고통과 인내, 가장 아름답고 모범적인 발로 미화되어 발레에 관심 없던 일반인들조차 ‘강수진 발’이라는 연관검색어를 통해 발레에 관심을 끌게 된 다소 코믹한 효과도 있었다. 그만큼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되는 길은 인고의 과정과 노력의 시간이 요구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코 충족조건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선택받은 체격조건, 타고난 재능, 악바리 같은 근성과 부모의 헌신적인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들 가운데 하나라도 빠진다면 발레리나, 발레리노로 대성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작은 얼굴과 비정상적으로 가냘픈 팔과 다리, 유연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고함(?) 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탁월한(?) 신체조건을 지닌 아동들이 10년 이상을 기능 위주의 체계적인 발레 프로그램을 통해 몸을 만들고 단련시켜 발레 전공자가 된다. 

그래서일까? 누구도 발레가 소수 엘리트층을 위한, 소수 엘리트층에 의한, 소수 엘리트층의 전유물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여전히 대중의 뇌리에는 결코 넘나볼 수 없는 이른바 ‘넘사벽’의 영역이다. 자본주의의 꽃인 상업광고(CF)에서 보이는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제스처와 그 이미지는 어느 누구도 모방하기 힘들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출신으로, 50이 넘은 나이에도 발레의 정수를 보여주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은 TV 브라운관에서 백화점, 자동차, 화장품, 명품 등의 모델로 나서, 우아한 발레리나의 이미지를 한껏 과시한다. 국립발레단의 김기완과최지인, 김리회와 이동훈,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 황혜민도 고급 브랜드를 다루는 광고주들의 주된 타깃 모델들이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에서는 홍보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소속 무용수가 명품 CF에 출연하는 데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명품 CF 출연이 정작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발레리나가 고급스러운 명품을 끼고서 우아한 동작을 하는 자태를 보며, 자신도 발레를 체험해보고 싶다거나 발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할 이들은 거의 없다. 더욱이 CF 속 발레리나가 어느 발레단 소속인지 눈여겨볼 이들도 거의 없다. 신문 같은 대중매체는 저명한 발레리나의 명품 CF 출연에는 앞다퉈 뜨거운 관심을 갖지만, 정작 발레에 대해선 지면할애가 인색하다. 

대중매체의 시선에서 이제 발레는 자본주의의 상징이며, 발레리나는 자본을 소비하는 고급 고객의 연기자다! 오죽하면, 미국 현대 무용안무가 젠 반 다이크가 “무용이 단지 사회와 현금을 거래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통탄했을까? 물론, 이는 예산과 지원이 집중된 국립발레단 같은 ‘넉넉한’ 발레단의 이야기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 백화점, 명품, 화장품 회사들이 자신들의 브랜드 홍보에 엄청난 돈을 들여 극소수의 유명 무용수를 기용할지언정, 결코 한국 발레의 발전을 위해 돈을 쓰진 않는다. 국내에 발레가 들어온 지 어언 100년이 지났으나, 한국 발레는 이처럼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궁중무용’을 강요하는 자본의 욕망에 짓눌려온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발레의 현실이 암담하고 고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중매체의 영향 때문인지, 또는 개인적 성취감 때문인지, 그 동기야 다양하겠지만 일반인들 사이에 발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문화센터나 시중 발레학원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성인발레반과 아마추어발레반이 성업 중이고,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앙 바, 앙 아방, 아라베스크, 턴 같은 우아한 발레 동작을 취하는 모습들이 새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반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린 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발레 대중화에 땀 흘려온 민간발레단의 공이 크다. 
CF 한편 출연에 몇억씩 받는 스타급 발레리나가 없지만, 이들 민간발레단은 신선한 기획과 창의적인 작품을 내세워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민간발레단의 미덕은 관객과의 눈높이 소통을 통해 발레의 ‘넘사벽’ 환상을 깨뜨리고, 그 자리에 감동과 후원, 직접 참여의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2018년의 무더운 8월 17~1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 만석의 관중석은 와이즈 발레단(예술단장 김길용)의 무용수들이 대단히 우아하고 절제된 몸동작을 선보일 때마다 숨죽이듯 고요했다. 이번 공연은 와이즈 발레단의 W시리즈로, 상이한 성격의 안무가 3인(김용걸, 김성한, 주재만)이 각기 다른 개성이 담긴 창작 작품들을 내놓았다. 

김용걸 안무의 ‘레 무브망’은 연작 형식을 빌려 고난도의 컨템포러리 발레를 선보였다. 두 번째 안무작인 김성한의 ‘더 게임’은 섹슈얼리티의 숨겨진 욕망을, 세 번째 주재만의 안무 ‘인터메조’는 현실도피의 멜랑콜리 등을 표현,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뜨거운 갈채를 자아냈다. 공연이 끝난 뒤 객석을 빠져나오는 700여 관객의 얼굴에는 흥분 섞인 아쉬움이 가득했다. 일반 관중을 파고든 와이즈 발레단의 유쾌한 ‘도발’은 올 한해 <지젤>, <말괄량이 길들이기>, <안나카레니나> 등 서양 작품들만 무대에 올리고, 무더위 휴지기에 들어간 국립발레단의 ‘여유’와는 대조적이다.   

소수의 ‘그들’만을 위한 공연이길 거부하고, 발레를 사랑하고 즐기는 모든 이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민간발레단의 공연들이 최근 시선을 끈다. 수원 문화예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지난 8월 열린 <2018 수원발레축제>가 대표적이다. 올해로 4회를 맞은 이 축제에는 국내 최정상 민간발레단 ‘발레STP협동조합’의 공연과 함께, 발레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발레단의 자유참가공연, 발레체험교실 등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발레STP협동조합’은 2012년 발레계의 발전과 발레대중화를 위해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이원국발레단, SEO(서)발레단, 와이즈발레단, 김옥련발레단 등 국내의 대표적인 6개 민간발레단이 결성한 단체다. 각 발레단은 24일 개막공연에 앞서 20일 수원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플래시몹 형태의 깜짝 횡단보도댄스를 선보여 일반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다. 

개막공연이 열린 24일에는 와이즈발레단의 <나와>를 시작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중 백조 파드되>, 김옥련발레단의 <분홍신 그 남자>, SEO(서)발레단의 <판도라>, 이원국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중 흑조 파드되>,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여기에 자유참가작 학생부 공연과 일반 아마추어 발레단 공연도 진행되어 아마추어들의 풋풋함과 발랄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민간발레단이 다양한 레퍼토리와 창작 작품을 통해 발레단의 기량을 높이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예술계 구조상 국립·시립무용단이나 통일교단의 유니버설 발레단을 제외하고, 민간 발레단이 제대로 된 후원회 없이 버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무용은 미술, 음악에 비해 기업 메세나를 통한 스폰서십의 기회가 많지 않다. 따라서 공연 기획과 관객확보, 무대의상 등 공연에 드는 비용 대부분을 무용단이 나서서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무용수들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도 거의 전무한 상태라, 예산이 지원되는 국립·시립 무용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민간 무용단원들은 무급여로 공연수당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와이즈 발레단의 김길용 예술단장은 “발레시장을 성장시키고 문화예술로서의 작품의 브랜드화를 시도하고자, 발레단을 만들었지만, 창작발레의 다양한 노력 못지않게 경제적인 흥행성을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론한다. 민간발레단의 열띤 활약에 힘입어 발레의 대중화가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소위 공연단체의 저명성만을 따지는 후원문화의 후진성과 관행처럼 이뤄지는 초대권 문화의 관행이 개선되지 않으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글·김정은 
숙명여대 겸임교수. 무용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교대와 창원대에서 무용미학을 강의하고 있다. 



김길용 와이즈 발레단 예술단장 인터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충족시키려 늘 고민”


“만들어가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브랜드로 내세울 만한 작품을 제대로 선보이고 싶다.”
민간 발레단의 선두주자로서 공연 때마다 성황리에 관객을 동원하는 와이즈 발레단의 김길용 예술단장은 관객이 찾아오는 ‘완성도 높은’ 공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17일 오전, 마포아트센터의 공연 연습실에서 만난 김 단장은 “발레단 창단 이후 2011년 ‘블라인드’를 시작으로 2012년 ‘프러포즈’ 그리고 2018년 초 ‘플레이’를 통해 창작발레의 다양한 변신과 흥행성이라는 두 가지의 긍정적인 성과를 얻었다”며, “이번 W시리즈 연작에서도 역시 예술성이 흥행성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발레 STP협동조합’ 이사이자 한국무용협회 발레분과위원장을 맡은 김 단장은 공연에 올리는 무용마다 성공을 거둬 민간발레 단계의 롤 모델로 평가된다.  

- 민간 발레단 운영자로서 가장 힘든 부분은?
“모든 민간무용단이 그렇겠지만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 위까지 올리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경제적인 문제다. 작품의 질과 예술성을 고민해야 하는데, 돈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건 예술가로서 모순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용단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 외부 지원이 더러 있을 텐데……. 
“민간발레단의 경우 국립·시립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 지원예산을 받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발레단은 다행히 무용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티켓 예매율이 높은 편이다. 와이즈발레단의 경우 1년에 대략 100회 정도의 크고 작은 공연을 하는데, 대부분 수익금으로 공연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하고 있다. 다른 민간 발레단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와이즈 발레단의 경우 초대권은 거의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공연에는 평론가나 기자들도 표를 사서 봐야 한다.(웃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않나? 무용수들의 복지와 훌륭한 안무, 질 높은 공연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관행처럼 이루어지는 초대권 문화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발레가 다른 장르의 무용에 비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이유는?  
“1970~80년대에 대학 중심의 공연문화가 이루어지면서 발레는 쇠퇴기를 걸었다. 바로 전공자들만을 위한 공연문화가 주로 이루어진 탓이다. 그래서 정적인 고전 발레보단, 좀 더 역동적인 댄스 컬쳐를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싶다. 이것이 와이즈 발레단이 생존할 수 있는 예술적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성인발레의 대중화에 무척 많은 관심을 쏟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7년도에 아마추어 발레단인 ‘스완스 발레단’을 만들었다. 스완스 발레단은 비전공자들로만 이뤄져 있다. 간혹, 어렸을 때 전공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둔 40대 이상의 일반인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몇 분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비전공자들만 뽑는다. 사실 한국은 아마추어 발레, 성인 발레가 많이 뒤처져있다. 
일본의 경우 ‘마담페스티벌’을 통해 발레의 대중화를 유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희 ‘스완스 발레단’ 단원들이나 발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그들의 열정은 전공자들에게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스완스 발레단’만 해도 1년에 20회 정도의 공연을 한다. 각자 직업을 가졌지만 연습에 있어 너무나도 충실하다.
지난해 처음 기획한 아마추어 발레단의 ‘발레메이트 페스티벌’도 성인발레 대중화 노력의 일환이다. 올해 2회째 진행되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발레라는 장르가 자본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마추어 발레시장이 두텁게 성장해야 한다. 취미발레든, 성인발레든 아마추어들이 없으면 발레는 다시 대학 안에 갇혀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 것이다. 우리 같은 민간발레단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연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32명의 단원들에게 모두 제대로 된 급여를 주고 싶다. 현재 월급을 받는 무용수들은 몽골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남성 무용수들 그리고 몇몇 단원들을 빼고는 모두 공연 수당만을 받고 있다. 무용계의 노동시장에서는 국립과 시립무용단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노동력이 투자된 만큼의 보장된 물질적인 대가를 받기가 어렵다. 
다들 무대 위에서 춤을 추기 위해 입단한 무용수들이기에 노동 차원에서의 금전적인 보상을 얘기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단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발레단 전원에게 100%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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