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갓길, 때 맞춰 등장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만땅’으로 채운다. 계기판에서 빨간 경고등이 깜박 거린지 제법 오래되었기에 저렴한 가격까지 갖춰 나타난 주유소는 조금 과장하면 은총이다. 차를 몰고 가다가 길에서 서본 사람은, 그 낭패감을 안다.
오도 가고 못하고 폭염이면 폭염, 혹한이면 혹한을 꼼짝없이 견뎌야 한다. 그밖에 몇 가지 다른 불편이 따라온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낭패감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과장됐다고 봐야 한다. 운전하면서 기름이 떨어져 차가 서는 경험의 물리적 고충은 한국에선 견딜만한 것이다. 보험회사의 서비스가 너무 훌륭해 신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량의 기름을 들고 구세주가 나타난다. 그러하기에 ‘엔꼬’로 인한 개인적인 낭패감은 주로 ‘소진’의 체험에서 유래한다.
손과 온몸으로 전해지는 ‘멈춤’과 ‘소진’의 경험은, 그 경험이 물리적 형식을 취하기에 더욱더 유쾌함과는 먼 거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맞은편에서 한동안 나를 지켜보던 나의 개가 스르륵 눈을 감고 잠에 빠진다. 낮에 많이 걸어서 피곤한 모양이다.
추석 전날에 올려다본 달. 한 달에 한 번씩 원을 만들어가는, 원에 가까운 그저 익숙한 달. 오늘은 우연찮게 달을 바라보다 팝송이 하나 떠올랐다. ‘벨벳 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 ‘충만’으로 치닫는 오늘 둥근달의 표면에서 과거 고대인도 보았을 저 두 눈을 연상함은 아마도 며칠 전 라디오에서 <pale blue eyes>를 들은 영향이지 싶다.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sad
Sometimes I feel so happy
but mostly you just make me mad
Baby, you just make me mad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개가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개는 달에 관심이라곤 없다. 고대인에게 달은 ‘광기’를 상징했기에 달을 보며 <pale blue eyes>를 떠올렸다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한가위에 할 만한 생각은 아니다. 그냥 빌딩 숲 위로 불쑥 솟아오른 달이 마음에 남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우리를 벗어난 퓨마가 사살됐다. 퓨마에게 어울리지 않은 이상한 이름까지 부여된 그 맹수는 생애 첫 세상나들이를 나섰다가 영영 세상을 떠났다.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나고 백두산에 올라서 손을 맞잡을 때도 가끔씩 나는 사살당한 퓨마를 생각했다.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내일은 조금 더 완벽하게 둥그러진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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