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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며···
또 다른 10년을 준비하며···
  • 성일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8.09.2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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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를 발행할 거냐”고 많은 사람들이 제게 많이 묻곤 합니다. <르디플로>의 재정상황이 걱정되어서 일 것 입니다. 당당하게 ‘이 땅에 제대로 된 고급 지성지를 일으켜 세우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거창한 포부인 듯싶어, “달리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얼버무리곤 합니다. 실제로, 매달 <르디플로>를 마감하고, 새로 또 다음 호를 준비하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갑니다. 꼼짝달싹 다른 일을 생각지 못할 만큼 반복적인 시퀀스 회로에 갇혔지만, 저는 이걸 ‘행복한’ 숙명이라고 여기고 싶습니다. 


<르디플로>가 올 10월로 만 10년 1개월이 됩니다. 한 차례의 결호 없이 121호까지 발행된 지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2008년 10월, <르디플로>는 지구촌을 뒤흔든 미국의 금융위기 해결책과 관련해 ‘FRB가 사회주의로 회귀하다’라는 제목을 달고서 첫선을 보였습니다. ‘시장 전체주의’라는 특집기사는 마치 이명박 정권의 실체를 드러내는 듯한 짜릿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만의 감동은 아니었던 듯, 대형 서점가에 배포된 당월 호가 매진에 가깝게 판매됐습니다. 그렇게 <르디플로>는 시작했습니다. 마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매섭게 진단하듯이, <르디플로>는 민주주의의 위선, 우파 포퓰리즘, 환경재앙, 역사왜곡, 남녀차별, 신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 다국적 기업의 문제, 투기자본의 야만성, 종교·문화전쟁, 그리고 대학과 지식인 사회의 책무 등 다양한 쟁점들을 화두로 던지며, 우리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전체주의적’인 이명박 정권과 ‘권위주의적’인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성은 날카로운 진단과 저항적인 비판 언론인 <르디플로>에게 어떤 면에선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옛 권력이 해체되었다고 해서, <르디플로>의 날카로움과 저항성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최고 권력자 한 명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앙시앵레짐적인 반민주성이 없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르디플로>가 ‘모두까기’처럼 늘 비판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십분 이해되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르디플로>를 계속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국제문제를 비롯, 한미관계·동북아·남북·교육·환경·문화·기업·난민·청년·여성·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관되게 외치는 게 있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종속에서 탈피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주체성 회복입니다 . 지난 10년이 <르디플로>의 안착기라면,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성장기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독자분들의 관심과 격려, 질책을 잃는다면, 우리가 꿈꾸는 성장기는 공염불이 될 줄 압니다. 경험적으로 볼 때, 기사의 관점, 문장 구조, 번역상태, 단어 등 하나하나에 까칠한 독자분일수록 <르디플로>와의 ‘질긴’ 인연을 보게 됩니다. 꾸지람이 애정만큼이나 크기 때문이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달 번역을 맡기고, 필자를 찾고, 밤늦게까지 글을 다듬어서 편집하고, 인쇄소에 넘긴 뒤 터벅터벅 걸으며 맡는 새벽공기가 그렇게 상큼할 수 없습니다. 몇 번씩 체크했음에도 오탈자나, 편집의 실수가 또 발견될 것이지만, 적어도 이때만은 뿌듯합니다. 물론, 독자분들의 격려 메일이나 전화를 받으면 더할 수 없이 기쁘고요. <르디플로> 한국어판 10주년을 독자분들과 자축하고자 두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10월 8~13일,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어판 발행인을 초대해 강연과 대담을 갖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프랑스의 앙벨리 튀르크와즈 극단을 초대해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10월 18~20일) 공연을 여는 것입니다(12~13면 참조). 알리미 발행인과의 허물없는 만남과 대화는 독자분들이 <르디플로>의 가치와 본질을 좀 더 이해하는 시간이 될 것이며, 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은 여성 문제, 인권, 난민, 전쟁의 광기, 민족주의 등 지구촌적 쟁점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의 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항상 그렇듯이 마지막에 마감되는 발행인 칼럼 탓에 또 자정을 넘기는 편집진의 노고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도, 어쩌면 또 맡게 될 새벽공기의 상큼함을 미리 느껴봅니다. 아, 제가 답을 제대로 하지 않았군요.  저희는 <르디플로>의 또 다른 10년, 나아가 100년을 약속드립니다. 권력과 자본도 아닌 독자분들과 함께라면 뭐든지 가능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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