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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르디플로> 읽기, 감춰진 ‘68혁명’ 의 진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곳
11월의 <르디플로> 읽기, 감춰진 ‘68혁명’ 의 진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멈추는 곳
  • 윤상민 편집장
  • 승인 2018.11.01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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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았던 10월이 지나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은 1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준비한 두 행사를 치렀다. 첫째로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어판 발행인을 초청해 문정인 대통령 외교특보, 조인원 경희대 총장과 대담을 나눴다. 한국외대에서의 특강도 있었다. 모든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둘째로 프랑스 원어연극 <전쟁터로서의 여성>(연출 루실라 세바스치아니, 원작 마테이 비스니에치)을 대학로 무대에 올렸다. 극이 끝난 뒤 이어진 토론에서는, 3시간이나 객석을 지킨 관객들의 열띤 토론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열정만큼이나 진지했다.

그리고 들이닥친 <르디플로> 11월호의 마감. 편집국에는 전쟁 같은 10월이었지만, 적은 인력으로 큰 행사들을 치르느라 혹 신문 제작이라는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하신 독자들이 계셨다면 그 걱정은 접어두셔도 되겠다. 여느 호 때와 마찬가지로 읽을거리가 가득한 <르디플로> 11월호의 면면을 소개한다.

 

11월호는 신문의 얼굴 자리에 위치한 ‘Focus’를 9면까지 이어지는 ‘Spécial 창간 10주년 기념’과 함께 읽어야 한다. 먼저 생애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의 칼럼 ‘먹구름 걷히고 훈풍 부는 아시아’가 눈길을 끈다. 그가 서울에서 보낸 일주일을 함께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브라질에서 극우 성향의 사회자유당(PSL)이 선거에 압승한 그날,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그를 픽업해 강변북로를 타고 서울로 접어들 때, 한강 양안으로 가득한 아파트와 빌딩 숲을 보고 그가 나지막이 내뱉은 “서울은 보스턴과 같은 도시로군”이란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그가 들여다본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그의 칼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일권 한국어판 발행인도 10주년을 맞아 <르디플로>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칼럼을 게재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적절히 이룬 성일권 발행인의 칼럼 역시 ‘Spécial 창간 10주년 기념’과 함께 읽어야 한다. ‘Spécial 창간 10주년 기념’에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알리미 발행인을 만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대담들의 주요 내용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특히 알리미의 “한반도 평화 정착되면, 주한미군 필요 없어”라는 파격적인 발언과 더불어, 인문정신으로 현 위기상황을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가감할 것 없는 알리미 발행인의 촌철살인의 발화들은 성일권 발행인의 칼럼과 훌륭하게 조응한다.

 

이번 ‘Focus’에서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은 또 있다. <르디플로> 프랑스어판이 20년 만에 독자들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와 그 결과다. ‘우리의 이름을 승리라 부르라!’고 외쳤던 그들답게 과연 <르디플로> 프랑스판의 재정구조에서 광고수익은 1%가 채 안 되었다. 설문지에 “독자 여러분의 응답은 우리의 편집노선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는 것에서 그들의 결의를, 그러나 도출된 결과에서, 그것이야말로 독자가 바라는 바임을 읽을 수 있었다는 그들의 고백은, 이 시대 독립 언론이 가야할 길을 한 줄기 빛으로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와 같다.

진보는 늘 선하게 다가오는가? ‘Dossier 불편한 진보’에서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마니에르 드 부아>2018년 10·11월호에 수록된 글들이 함께 실렸다. 2012년 우리 곁을 떠난 영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쓴 ‘수염 난 모나리자에서 캠벨수프까지’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전위예술이 어떻게 쓸쓸한 종말을 맞이했는가를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크리스틴 로스 뉴욕대 교수의 ‘기념사진 속에 노동자는 없다’는 글은 결국, 정치가 아닌 개인의 도덕성에 의해 재정의된 ‘68혁명’의 이미지 변천사를 반세기의 역사 속에서 꼼꼼히 되돌아봤다. 68혁명을 사랑스럽고 대수롭지 않은 대상으로 보이게 한 정사(official story)와는 달리, 총파업의 형태로 시작된 68혁명의 핵심 정신이 ‘평등’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했던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연대였다는 사실이 완벽히 감취진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독을 권한다.

‘Dossier 불편한 진보’에 실린 모든 글들은 사실 ‘Focus’에 실린 철학자 알랭 드노의 ‘경영이 살인행위가 될 때’와 겹쳐 읽을 때에야 <르디플로> 11월호를 더 깊이 사유할 수 있게 된다. 2000년대 말 프랑스텔레콤에서 벌어진 수십 명 직원들의 연쇄 자살사태를 다룬 이 글에서는, “문으로든 창문으로든 내보낼 것”이라고 외치며 사원에게 책임을 지우는 ‘거버넌스 경영’ 도입자 디디에 롱바르 전 프랑스텔레콤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직원들에게 가한 정신적 학대를 다뤘다.

하지만 알랭 드노의 글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하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학대받은 사람들, 또는 그에 준하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자신을 비하하고 파괴한 이들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려는 그들의 의도에 따라, 아주 빠르게,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 오히려 그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제, 회사의 단순한 직원이 아닌 ‘파트너’가 된 노동자들은 쓸모없는 취급을 당하지 않으려면 비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고, 조직에 자리 잡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모든 책임과 부담은 노동자에게 부가된다. 민주주의가 멈추는 곳은 바로 회사 문 앞일지 모른다. 독자들의 일터는 안녕하신지?

 

이제 절반을 둘러봤을 뿐인데 벌써 숨이 차다. 서둘러 남은 기사 소개를 이어가보자. <르디플로>가 ‘세계의 창’이라고 불리게 된 바로 그 섹션 ‘Mondial 지구촌’에서 주목할 만한 기사는 단연 ‘베일 벗은 트럼프의 자유무역 새 협정안’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드디어 지난 9월 말 베일을 벗은 새 협정(USMCA)에는 우려할만한 후퇴도 있지만, 몇 가지 ‘사회적 진전’들도 엿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의 새 협정이 커다란 진전일지, 심각한 후퇴일지는 오직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지만, <르디플로> 11월호에서 작은 실마리를 손에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Mondial 지구촌’ 섹션에서 또 눈길을 사로잡는 기사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화해의 이면’이다. 지난 여름, 두 나라가 성취한 화해는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 주선의 평화협정으로 이어진 바 있다. 에리트레아 독립전쟁이 끝난 2000년 이후 두 나라는 불안정한 평화 속에 살아왔다. 이번 화해의 지속 여부에 ‘아프리카 뿔’ 전체의 안정이 달려있는 셈이다. 아, 그리고 지난달 소개된 ‘피에르 라비는 구세주인가’를 읽고 피에르 라비가 직접 반론(나는 사기꾼이 아니다)을 보내왔다. 국내에도 많이 소개된 그의 항변을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Culture 문화’ 섹션에서는 살아있는 팝아트의 전설 중 하나인 케니 샤프를 인터뷰한 ‘내 작품 속 도넛은 미 자본주의의 상징’이 술술 읽힌다. 지난달부터 아시아 최초로 롯데뮤지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는 그를 조은영 원광대 교수가 만나봤다. 선명한 색채의 그라피티, 만화 이미지로 핵폭발을 묘사하는 케니 샤프가 ‘가벼운’ 예술 팝아트의 본질, 그리고 일상을 환상으로 바꾸는 ‘커스터마이징’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밝혔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가 선정한 2018년 한국영화 11선도 시선을 끈다. 지난 한 해 우리를 울고 웃게 한 영화들을 역사와 여성의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또한 7년 째 진행되고 있는 전문대학평가에서는 부동의 전문대 1위 영진전문대를 뒤로 하고 연암공과대가 2018년 새로운 패자로 등극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외에도 <르디플로> 각 섹션에 보물 같은 글들이 가득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르디플로> 11월호와 함께라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ilemonde.com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1월호 목차

■Focus 초점
세르주 알리미┃먹구름 걷히고 훈풍 부는 한반도
성일권┃다시 새겨본 <르디플로>의 정체성
알랭 드노┃경영이 살인행위가 될 때

■Special 창간 10주년 기념
<르디플로> 편집국┃<르디플로>만의 독특함을 공유하다
알리미, 문정인┃"한반도평화 정착되면 주한미군 필요없어"
세르주 알리미, 조인원┃“인문주의, 지구적 위기의 궁극적 처방책”

■Corée 한반도
추재훈┃분단과 여성혐오의 연결고리
최배근┃호모 이코노미쿠스에서 호모 데우스로

■Mondial 지구촌
카린 클레망┃푸틴의 반사회적 얼굴
르노 랑베르┃브라질 사람들은 모두 파시스트인가?
로리 월러치┃베일 벗은 트럼프의 자유무역 새 협정안
알렉상드르-콜리에┃시대정신을 읽지못하는 영국 보수당
브누아 브레빌┃이민의 원인을 없애버려라?
제라르 프뤼니에┃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화해의 이면
마농 드니오┃아일랜드 콘크리트 도시의 거품
마틸드 하렐┃유럽으로 팔려가는 나이지리아 여성들
피에르 라비┃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앙토니 글리누어┃대중을 위한 값싼 고전전집들

■Dossier 불편한 진보
에릭 홉스봄 l 수염난 모나리자에서 캠벨수프까지
크리스토퍼 래시 l 한계의 수용, 정신의 재발견
크리스틴 로스 l 기념사진 속에 노동자는 없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l 폭력의 다각적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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