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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수능단상…시험을 망친다고 인생을 망칠까만
[안치용의 프롬나드] 수능단상…시험을 망친다고 인생을 망칠까만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11.15 0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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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 재미난 얘기를 누가 지어냈을까. 어릴 적엔 기차가 지나가는 굴다리 위에서 아래를 통과하는 기차 끝을 밟으면 사랑인가 무엇인가에서 좋은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을 들여 첫눈이 내릴 때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에 성공한다던가.

 

‘첫사랑에 성공한다’는 무슨 의미일까. 해석이 쉽지 않다. 구세대라 가부장제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어떤 시험이든 시험 날 아침이면 아버지를 일찍 깨워서 대문 밖을 나갔다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오게 했다. 자신을 포함해서 여자가 먼저 문을 출입하면 부정 탄다나 어떻다나.

 

벌써 30년이 더 지난 학력고사(지금의 수능) 날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런 행사를 치렀다. 워낙 대범한 청소년이었던 나는 하나도 떨지 않고 웃으며 시험장에 가서 학력고사를 보았다. 한데, 그 날이 나에겐 ‘첫’이 들어간 아니 전무후무한 사건의 날로 기록되고 말았다. 점심 다음 시험시간에 졸고 말았으니, 대범도 이런 대범이 없다. 내 평생 시험을 치면서 존 적은 아직까지 그때가 유일하다.

 

잠에서 깨어 화들짝 놀라서 시계를 보니 답안을 제출할 시간은 임박했고 풀 문제는 많이 남았다. 찍기에 돌입할 수밖에.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수능날이 오면 그때가 생각난다. 당혹이란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참으로 낭패한 감정. 결국 나는 그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호기롭게 시작한 재수의 결말도 좋지 않아 원한 대학과는 다른 대학에 들어가서, 386세대가 그렇듯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가정하여, 학력고사 날에 졸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그런 부질없는 생각보다는 공원에 나가서 떨어지는 낙엽을 하나라도 더 잡으면 좋지 않겠냐, 라는 눈빛으로 나의 개들이 쳐다본다. 혹시 아는가, 그리하여 내가 잡은 낙엽 개수만큼 과거 나처럼 불의의 사건으로 시험을 망친 아이들이 줄어들지. 시험을 망친다고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연히 받을 점수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일은 없는 게 좋다. 수능(학력고사) 날이 돌아오면 언제나 떠올리게 되는 그날의 사건을 날이 갈수록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다. 달밤에 정말 낙엽 캐치를 나가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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