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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체스판’에 갇힌 한반도 평화
트럼프의 ‘체스판’에 갇힌 한반도 평화
  • 강태호 |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박순성 | 동국대
  • 승인 2018.11.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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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태호 전 한겨례 평화연구소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남북관계의 진전은 왜 이리 더딘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집권 이후 남북 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이 기대되지만, 실질적 결과는 아직 초라하다 못해 실망스러운 현실이다.

 
한평생 통일외교전문기자로 활동해온 강태호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과, 통일연구원을 거쳐 동국대 북한학과에서 남북관계를 연구해온 박순성 교수가 트럼프 이후의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를 짚어봤다. 강태호 전 소장은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3년 18대 한완상 부총리부터 통일부와 외교부 등을 20여 년간 출입하면서 북핵 등 남북문제를 취재해왔다. 남북문제를 넘어 중러의 전략적 협력 등 유라시아 대륙으로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강태호: 올해 있었던 세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그 자체가 역사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겠지만, 현장에서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부분과 정상회담의 합의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는 동맹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냉전이 해결되지 않은 한반도 상황에서 북핵이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동맹의 프레임은 한계로 작동한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태로운 정체 상황이 그걸 보여준다. 남북의 합의와 선택에 따라 미국이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던 건 잘못된 기대였다. 지금 미국은 남한을 묶어둔 상태에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그건 일방적인 요구다.
북핵 문제의 근원에서 본다면, 트럼프식 일방주의로 북한을 움직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동맹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미국이 기대하는 역할만을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가 북한을 설득해서 미국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비핵화를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출발부터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박순성: 그 출발이라는 게 평창 프로세스인가?
 
강태호: 평창 프로세스는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니라 북한이 시작한 것이다. 남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를 통해 북한이 자신들의 핵무력 강화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병진 노선을 수정할 여건을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북미관계 정상화의 프로세스에서 선행적 조처를 취한 건 북한이다. 그러나 이런 조처들이 한계에 부닥친 게 지금의 상황이다. 
9.19 남북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라든지, 미사일 시험장 및 발사대 폐기를 약속했으나 이는 지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일관되게 대북제재의 해제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는 입장만 고수할 뿐이다. 말이 UN의 제재지, 지금 남쪽에도 강요되고 있는 대북제재는 박근혜 정부가 취한 일방적 제재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에 의한 단독 제재까지 작동하고 있다. 현실에서 본다면 사실상 북한에 대한 봉쇄조처가 관철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트럼프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가능했다고 말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변화를 시작한 건 북한이고, 오히려 트럼프 때문에 그 변화가 위태롭다고 본다. 역사적인 합의와 아마도 남북협력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역사적인 현실의 괴리가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박순성: 북한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비핵화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그리고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은가?
 
강태호: 과거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북핵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비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 때도 협상의 룰과 합리성은 지키려 했다고 본다. 존 볼턴이라는 인물은 북한을 협상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말은 다르게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인식은 트럼프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일방적인 비핵화. 모든 것은 비핵화 다음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순성: 결국 미국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대북제재는 비핵화가 완성된 시점에서 푼다는 것인데, 남북 정상은 합의문에서 남북 협력에 대해서 상당히 진전되고 낙관적인 전망을 담았다. 남쪽 정부가 이런 미국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북한과 그러한 합의를 안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강태호: 합의를 통해서 북한의 선행적 조치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북미관계의 진전이라는 선순환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 합의했다고 생각하지만, 남북한의 긍정적인 요소들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 듯하다. 오히려 그런 합의가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킨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본다.
 
박순성: 그렇다면 북한이 남한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강태호: 김대중 정부에 들어 대북정책의 기본은 핵과 남북관계를 연계시키는 이른바 핵·경협연계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핵 남북 관계 병행론의 관점을 견지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이른바 대북 포용정책의 핵심 명제였다. 핵 문제는 우리 힘만으로는 풀 수 없는데, 이를 남북관계와 연계시키면 우리 스스로 손발을 묶는 어떤 변화도 만들 수 없는 자기모순 속에 빠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정상회담을 많이 하고 획기적인 합의들을 발표했지만 결국 이 연계론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말 <노동신문>은 ‘무엇이 북남관계의 새로운 여정을 가로막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구태와 경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가지고 북남관계를 대하여야 할 때”다. 
 
박순성: 평양 정상회담 이후 현 상황이 심각한 정체 상태라고 생각하며, 전망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강태호: 문재인 정부와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기본인식은 트럼프였기 때문에 북미 합의가 가능했다고 본다면, 내게는 그 트럼프 요인이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과연 트럼프와의 합의는 지켜질 수 있을까? 오바마 행정부에서의 모든 합의들을 트럼프가 다 깼다. 그러면 미국과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인데, 북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신뢰하기 어려운, 언제든 합의를 뒤집는 트럼프와의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박순성: 지난 9월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관계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뒤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연 것일 수 있는데 남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강태호: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은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징검다리를 놓기 위한 회담이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담 뒤 곧바로 미국으로 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트럼프의 발언은 한미 FTA가 더 중요하다는 식이었다. 중간 선거가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 트럼프가 이 중간 선거 지원 유세 중 보여 왔던 발언은 최대한 빨리 비핵화를 달성해야 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과는 다르게 북핵 문제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열릴 거 같던 북미 2차 정상회담은 연말로 미뤄지는 듯하더니 내년 1월, 지금은 내년 초 등으로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채 전혀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게 돼 버렸다. 
 
박순성: 미국 중간선거 결과 하원은 민주당이 차지했다. 지금 북한에 대한 불신에서 트럼프보다 민주당이 더 강경하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를 설득해 대북 제재를 푸는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미 연기된 북미 고위급 회담도 그렇고 내년 초 북미 정상회담은 어렵다는 이야기인가?
 
강태호: 고위급 회담은 연기된 게 아니라 북한이 회담 결렬의 메시지를 보낸 거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던 연내 답방이라든지, 미사일 실험장 폐쇄조치를 상호검증 하에 한다는 약속이 그 뒤 사라져버렸다. 또 북한은 바로 그 시점에 러시아, 중국과 삼자 외교차관급 회담을 열었다. 폼페이오를 만나는 대신 북중러가 삼자간 외교회담을 통해 비핵화와 관계 개선 및 제재 완화의 공동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보일수록 미국은 더 강경해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민주당 등 미국 내 여론은 트럼프를 공격할 것이다. 미국이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남북미의 3자 프레임 안에서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의 선행적 비핵화를 추진했던 방법은 불가능해 보인다.
 
박순성: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강태호: 트럼프를 바꿀 수 있어야 북한이 바뀐다. 북은 우리가 미국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될 때 남북관계에 적극적이었다. 북한의 김대중 정부에 대한 신뢰는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이 김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고 자신은 옆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이른바 운전자론에 의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을 바꿈으로써 미국을 바꿀 방법으로 접근했고, 트럼프는 좋은 말로 이른바 립서비스로 지원했다. 우리가 미국을 바꿔야 북한이 비핵화의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으나 지금은 미국이 우리를 바꾸려하고 있다. 남북이 너무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북이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할지 의문이다. 중국, 러시아(때에 따라서는 일본도)는 한반도 비핵화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으로 북한의 요구하는 관계 정상화와 제재 완화와 함께 해결돼야 한다는 상호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긴 임기에다 정책의 연속성이 존재한다. 그에 비한다면 남은 2년의 임기에 1년 뒤면 재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미국이 우리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외교적 역량을 미국에만 쏟아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순성: 만약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의 정책과는 괴리가 있는, 동맹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정책을 펴면, 우리 내부에 한미동맹을 절대시하는 보수 세력의 반발이 거세질 것이다.
 
강태호: 북한의 악마화가 극에 달했던 것이 평창올림픽 전까지라면 그 이후 북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또 미국은 선한 존재, 제국의 선한 수호자라는 미국에 대한 인식도 트럼프 이전 이후가 달라졌다고 본다. 한미동맹을 존중하는 것과 절대시하는 것은 다르고 트럼프 행정부와 거리를 두는 걸 미국과 거리두기로 봐서는 안 된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을 정상적인 미국의 외교정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독일 등이 트럼프행정부에 대해 보여주는 시각도 그렇지 않나? 
트럼프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리두기’는 가능한 것이고,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합리적 보수는 맹목적인 동맹의 지지자가 아니라면, 트럼프가 동맹을 무시하고 있는 데 대해 비판적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만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보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박순성: 그렇다면 한미 동맹에 대한 맹목적인 관점을 벗어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동맹의 프레임을 벗어난 한미동맹의 21세기적 의미를 고민해야 하나? 
 
강태호: 전통적 한미동맹이라는 건 이미 트럼프에 의해 깨졌다. NATO도 그렇고 모든 군사연습을 군사적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를 놓고 존폐를 따지는 걸로 보면 트럼프의 일관된 인식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럼프가 무시하는 걸 붙잡고 앉아서, 그의 동맹 무시 정책을 지지하는 이중적인 태도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 지난 평창 올림픽 이래로 지금까지의 과제다. 
북한을 트럼프가 요구하는 만큼 끌고 가지 못하는 이상 이 북핵 협상은 접점을 못 찾을 것이다. 한 전문가는 이런 비유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대미관계든 외교관계를 보면, 남의 체스판에 들어가서는 할 게 거의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바둑을 두든 장기를 둬야 한다. 미국의 체스판을 가져갔는데, 북한이 우리는 체스를 둘 줄 모른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돼 버린다.  
 
 
정리·윤상민
본지 편집장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파리 10대학 경제학 박사. 새로운 코리아 구상을 위한 연구원의 원장과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로 시민단체 ‘바꿈’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강태호
한겨레신문 통일팀장,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평화연구소장을 지냈다. 편역서로 『북방루트 리포트』, 『천안함을 묻는다』, 『미국의 세계전략: 닉슨부터 레이건에 이르는 반혁명세계전략』, 『코리안 엔드게임』 등이 있다. 한겨레 선임기자시절부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해왔으며, 그간의 경험과 경륜을 살려, 앞으로 <르디플로> 편집위원장으로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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