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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이후,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물음은?
촛불 이후,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물음은?
  • 김상봉 | 전남대 교수
  • 승인 2018.11.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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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시대에서 형성의 시대로
▲ 크리스티안 노스이스트, 2006년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혁명인가?

 
촛불혁명은 4.19나 6월 항쟁처럼 헌법적 체제를 바꾼 사건이 아니다. 또한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과 같은 의미의 혁명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촛불항쟁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촛불혁명을 통해 뭔가 특별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특별한 의의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촛불혁명이 초래한 외적 변화는 평화적인 의사표시와 정해진 법에 따른 선거를 통한 새로운 정부의 출범이다. 그것은 비정상으로부터 정상적인 상태로의 이행, 비상식으로부터 상식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박하고도 상식적인 정치질서를 수립하기 위해, 우리는 200년 가까운 세월 피나는 항쟁의 역사를 살아왔다.  
 
하지만 촛불혁명의 혁명적 의의는 단지 외적인 의미에서 민중이 요구해 온 정치적 질서가 수립됐다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촛불혁명을 통해 실현된 정치적 진보가 사회 전체의 성숙 또는 겨레의 내적 성숙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성숙’이야말로 우리가 촛불혁명에서 가장 먼저 읽어낼 수 있는 역사적 의미다. 그 성숙의 결정적인 외적 징표는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평화다. 하지만 민중이 평화적으로 요구한다 해서 국가 기구가 평화적으로 그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계엄령을 기획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일이나, 그 시도는 성공할 수 없었다. 자신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외침 앞에서 국가폭력을 동원하고 싶어도 동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군대나 경찰, 그리고 정부기구 역시 민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군대를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은, 국가 기구의 불법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지 않을 만큼 한국 민중이 전반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요구는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용되고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진보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정신적 성숙을 증명한 사건이다. 
 
모든 성숙이 그렇듯, 이 역시 한순간에 가능했던 비약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세상을 혁명하는 것과 나의 내면을 쇄신하는 것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동학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의 민중항쟁의 두드러진 고유성이었다. 동학농민전쟁의 뿌리가 단순히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동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철학적 세계관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의 민중항쟁의 정신성을 말하는 것인 동시에, 같은 사태를 반대쪽에서 고찰한다면 종교나 철학의 혁명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학부터 민중 신학에 이르기까지 종교나 철학 같은 정신적 삶의 원리가 정치적 혁명과 결합해온 것이야말로 한국 근·현대 민중항쟁사의 고유한 성격이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적 진보의 과정을 단순히 외적 제도의 변화가 아니라 동시에 내적 성숙으로 만들어준 안팎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구한말의 열렬한 신교육운동이나 7~80년대 야학운동을 생각해보라. 전자는 3.1운동과 뗄 수 없는 것이고, 후자는 그 시대 노동운동의 성장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다. 이처럼 정치적 운동이 민중의 자기 교육과 결합돼 있었던 것은 한국의 민중항쟁사의 두드러진 개성이다. 
 
 반동적 퇴행은 가능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혁명적 진보가 반동적 퇴행으로 귀착되는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는 촛불혁명이 이룬 진보 역시 다시 퇴행할 가능성은 없는지 물을 수 있다. 이 물음을 보다 구체적인 정치 현실에 대입해서 재구성하자면, 그것은 한국의 자칭 ‘보수정당’, 실상은 매판정당(들)이 다시 권력을 잡거나, 재집권하지 않더라도 현재 수준의 정치적 세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의 민중항쟁의 역사가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식의 외부적 작용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었더라면, 또는 생산력과 생산양식의 불일치에 의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동이 낳은 상부구조의 변화였더라면, 우리는 앞으로 있을 외적 변화에 따라 촛불혁명이 다시 혁명 이전의 상태로 퇴행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외적 조건에 의해 규정돼 일어난 사건이라면 언제라도 그 외적 조건의 변화에 의해 다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민중항쟁이 전위적인 정당이나 그 정당 지도자에 의해 주도된 것이라면, 이 경우 그 정당이나 지도자의 타락, 과오에 의해 혁명의 동력이 상실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촛불혁명을 어떤 배후 조직에 의해 조종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이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졌듯, 문재인 정부의 가능한 한계나 과오가 매판정당의 부활을 불러오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민중항쟁은 하부구조 상부구조의 모순이나, 전위적인 조직의 주도로 다 설명될 수 없다. 한국의 민중항쟁사에서 전위정당의 주도로 일어난 대표적인 항쟁이 제주4.3인데,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고 4.19나 부마항쟁 또는 5.18의 경우처럼 광범위한 민중적 주도에 의해 항쟁이 촉발되고 전개된 경우가 더 많았다. 이번의 촛불혁명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점이 한국의 민중항쟁이 유럽의 그것과 다른 점 중 하나다. 유럽의 정치적 변혁은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부터 전통적으로 밑으로부터가 아니라 위로부터 주도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중들은 대개 수동적으로 그런 변화에 순응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정치는 지배계급이든 그에 저항하는 혁명 세력이든 양쪽 모두 대부분 전위적이고 과두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사정은 일본의 근현대 정치체제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된 입헌민주주의는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이었던 까닭에 다이쇼(大正) 민주주의 시대에 만개했던 민주주의는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아무런 저항 없이 다시 회수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일본은 군국주의로 퇴행했던 것이다. 이는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미국에 의해 외부로부터 주어진 제도인 까닭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전체주의적 야만으로 퇴행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열등감의 극복
 
한국의 민주주의가 매판정당의 존속과 재집권 등에 의해 퇴행하지 않으리라고 예측하는 중요한 근거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오랜 대외적 열등감이 이즈음 거의 극복됐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민중의 열등감이 모든 매판적 기생권력의 정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땅의 민중들을 국가기구와의 적대적 대립으로 몰아넣은 것은, 이 나라가 너무 오랫동안 온전한 주권국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식민지국가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의 제후국으로, 그 뒤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그리고 해방이 된 뒤에는 미국의 반식민지로 존재해 온 나라를 가리켜 온전한 주권국가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근본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자칭 ‘보수정당’은 외세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정치집단이다.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정치체제 내에서는 모든 정당은 누군가의 이익을 먼저 돌보고 대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른바 보수정당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그들은 외세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재벌과 자본의 이익은 오히려 민주당이 대변해주고 있다). 다른 모든 정체성은 이 정체성과 충돌하지 않는 한에서만 그들의 정체성과 결합할 수 있다. 이런 정치집단이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외세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사실을 은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국이 스스로 자립할 수 없고 오직 외세에 의존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자기 불신·자기 부정·자기 비하의 감정을 널리 퍼트려야 한다. 민중이 정치를 불신하고 냉소하며,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자기를 먼저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기비하의 감정은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에게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습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선명한 차이 속에서 확인하려면, 가능한 한 현재로부터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윤치호(1865~1945)의 일기에서 우리는 자기비하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
 
“흑인 노예제도는 상황을 고려할 때 유색인을 위해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것이었다고 믿게 됐다. 인디언이 처했던 상황과 흑인들의 상황을 비교하라. 한 민족이 스스로 통치할 능력이 없을 때,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더 개화되고 더 강한 인민에게 통치받고, 보호받으며 가르침을 받는 것이 낫다.
 
영국의 동인도 정책에 대해 실제 있었거나 없었거나 간에 어떤 비난을 퍼부어도 좋다. 나는 인도가 다른 나라의 통치 아래에 있는 것보다 영국 정부 아래 있는 것이 분명 더 낫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가지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 조선이 자치할 수 없다면 중국 아래 있는 것보다는 영국 아래 있는 것이 분명 나을 것이다.”
 
조선 엘리트 지식인들의 이런 유약함과 열등감이, 해방 뒤에도 전혀 근절되지 않았다는 것은 1980년대 유포되기 시작한 안병직이나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면 알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론의 외피를 쓰고 나타난 것은 80년대의 일이지만 그 논리 자체는 해묵은 식민주의 논리 또는 친일파의 논리다. 그런데 그 이론 아닌 이론의 전제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고 도리어 주관적 감정으로서, 곧 “한국인은 스스로 근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는 자기비하의 감정 곧 열등감이다. 
 
이 열등감이야말로 우리가 외세에 의존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대주의의 근거이기에, 오직 민중이 그 열등감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는 한에서만 매판정당도 민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중국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스스로 나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열등감이 사대주의를 낳고, 일본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근대화할 수 없다는 열등감이 친일파를 낳는다. 그리고 미국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열등감이 이승만과 박정희 이후 매판적 정치집단을 존속시켜왔던 것이다. 
 
촛불혁명이 평균적인 한국인들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증명이 필요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많게는 한꺼번에 100만이 넘는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아무런 폭력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적인데, 게다가 그렇게 놀라운 집단적 저항의 몸짓이 과거처럼 다시 국가폭력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순리에 따라 새로운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누구도 1964년 발표한 『회색인』에서 최인훈이 탄식했듯 “그래서 고무신 한 켤레에도 팔리고 막걸리 한 사발에도 바뀌는 거야”라고 한국인의 후진적 정치의식에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우리 자신이 불의한 현실을 바꿨다는 긍지와 함께, 우리가 원한다면 불의한 현실을 우리 손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촛불혁명이 보통의 한국인에게 선사한 새로운 자기인식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기긍지를 가진 평균적 한국인이라면, 더는 누구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좋든 싫든, 미국과 일본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자연에 비약이 없듯, 역사에도 단절적인 변화는 없으므로 과거의 관성이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외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수십 년을 이어 내려온 권력과 이익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전체 유권자 5명 중 1명이 외세의 이익에 복무하는 매판정당(들)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해도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충분히 물질적으로 발전했고 정신적으로 성숙했으므로, 이제 매판세력의 지지자들이 더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그런 자들에 기대 국가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당(들)이 다음번 총선에서 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예측할 수 있다. 
 
‘저항’에서 ‘형성’으로, “네가 곧 나라다”
 
민중과 국가기구가 잠재적 전쟁상태에 있을 때, 항쟁의 일차적 목표는 언제나 기존의 국가기구의 부정과 타도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민중은 불의한 권력을 거부하고 부정하면서도 참된 나라를 지향한다. 그러나 민중의 항쟁이 현존하는 국가기구를 실제로 타도하거나 제거할 수 없을 때, 항쟁은 새로운 현실을 온전히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현실을 부정하는 행위로 남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 실패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코 식지 않는 민중의 참된 나라에 대한 지향과 동경은 현실에서는 언제나 ‘잠정적인 것’이거나 ‘임시적인 것’ 또는 ‘계시’로서만 남게 된다. 동학농민전쟁 당시의 집강소나, 3.1운동이 낳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그랬듯이, 또는 80년 5월 그 열흘 동안의 광주를 두고 우리가 “하늘나라의 계시”라고 불렀듯이.   
 
그런데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가 민중과 국가기구 사이의 전쟁상태로부터 정치적 상태로 진입했다는 것은, 기존의 국가기구나 사회질서의 부정이나 타도가 아니다. 이제 새로운 나라의 형성이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또는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국인들이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형성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삶의 세계를 형성함으로써만 현실적으로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데, 그가 직접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 삶의 세계, 그 한계가 바로 ‘나라’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를 주체로서 형성한다는 것과 자기가 속한 나라를 스스로 형성한다는 것은 공속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의 철학자들이 “자유의 실현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유는 오직 그가 형성하는 국가 속에서만, 또는 국가를 형성하는 능동적인 활동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 형성의 활동 속에 존립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이런 자기형성의 자유를 빼앗긴 채 살아왔다. 처음부터 나라형성의 자유를 허락받지 못하고 오로지 수동적인 보살핌이나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한 겨레를 가리켜 ‘백성’이라 부른다면, 우리는 그 ‘백성’이 수탈에 저항할 때, 같은 겨레가 ‘민중’으로 탈바꿈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저항하는 겨레는 ‘민중’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이 땅에서 항쟁의 역사를 써 온 겨레는 민중이었다. 
 
나아가,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가 민중과 국가기구의 전쟁상태에서 정치적 상태로 이행했다는 것은 우리들 한국인들이 억압받고 저항하는 ‘민중’에서 스스로 참여하고 형성하는 ‘시민’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성이 통치와 보살핌의 대상이라면, 민중은 자신을 노예화하려는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주체다. 저항은 자유를 위한 출발선상에 있지만, 저항 그 자체가 자유의 실현은 아니다. 자유는 스스로 형성하는 것에 존립하기 때문이다. 그런 형성의 주체, 그리하여 정치적 자유를 온전히 실현할 가능성의 주체가 바로 시민이다.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은 생각의 주체와는 구별된다. 둘 다 세계를 형성하는 주체라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생각과 인식의 주체가 형성하는 세계가 이념의 세계인 데 반해, 시민적 주체가 형성하는 세계는 구체적 삶의 세계로서 나라다. 그러므로 같은 형성이라도 인식의 주체가 세계를 이념 속에서 설계한다면 정치적 주체인 시민은 그 이념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게 되는데, 그 현실적 형성의 과제가 바로 나라다. 그리하여 자기의 삶의 세계를 스스로 형성하는 시민에게 나라는 소외된 권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자유로운 형성의 과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는 “네가 곧 나라다.”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이 나라가 됐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자기형성은 나라를 형성하는 것에 존립한다. 
 
권리에서 만남으로
 
하지만 나라를 형성하는 것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뜻으로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자유가 홀로주체의 제한 없는 자기주장이라면 시민적 자유의 실현이란 무정부 상태로의 귀착이거나, 끝없는 계급투쟁의 연속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라는 홀로주체의 자기주장이 아니라 함석헌의 말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너도 나라!’라고, 곧 ‘네가 바로 나’라고 고백하는 서로주체성 속에서만 나라의 기초는 굳건해진다. 
 
서양의 진보를 이끌어 온 자유의 이념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권리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고, 그런 개인들이 더불어 형성하는 공동체의 온전함 역시 각자의 권리의 균형에 존립한다. 그러나 각자의 권리의 확보와 서로 간의 권리의 균형은 온전한 나라를 위한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권리의 균형이란 시민사회의 공정한 거래관계를 표시하는 것일 뿐, 그 자체로서는 너와 나의 인격적 만남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참된 만남을 위해서는 공정한 거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너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너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피차 손해 보지 않는 기계적 균형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전태일은 배고픈 여공들을 위해 주머니 속에 마지막 남은 돈, 버스요금을 꺼내 붕어빵을 사준 뒤 자기는 밤길을 걸어 청계천에서 도봉산 아래 집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붕어빵이 그들의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었으므로 그는 자기의 눈을 팔아 그들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공장을 지으려 했다. 그것조차 불가능해졌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혔다. 그 불꽃이 80년 광주의 횃불이 되고, 2016년에는 온 나라를 밝힌 수백만 촛불이 됐다. 그렇게 가난한 여공의 슬픔과 눈물에 대한 응답에서 시작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의 눈물에 대한 응답까지 타인의 슬픔에 자기의 존재를 걸고 응답하는 전통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모두의 마음의 무늬가 됐다. 그리고 그 마음의 무늬 사이로 다시 우리 모두의 나라로 이르는 길이 열릴 것이다. 
 
왜 남과 북 사이의 길이 
가장 처음 열렸는가?
 
촛불혁명 이후 새로운 나라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열릴 수 있는 만남의 길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다른 모든 단절의 심연, 이를테면 노동과 자본,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또는 학벌의 차별에 앞서 하필이면 남한과 북한 사이의 단절을 극복하는 만남의 길이 가장 먼저 열렸는가? 그것은 남과 북 사이의 만남의 길이야말로 나라의 주권을 확고히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로운 형성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형성하는 국가가 주체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귀속하는 국가가 주체적이지 못하고 어떤 외세에 예속된 상태에 있다면, 나의 모든 형성행위는 처음부터 그 외세의 힘에 의해 저지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으로서 나와 너의 시민적 주체성과 국가의 주체성 다시 말해 국가의 주권은 적어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속성을 지닌다.
 
해방 이후 한국사를 보면,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시민적 주체성은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을 확고히 정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최근의 이른바 천안함 침몰 이후 내려진 5.24조치와 관련해서 일어난 해프닝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5.24조치의 해제를 언급한 것을 두고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승인 없이는 한국정부가 5.24조치를 해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아직 이 나라가 온전한 주권국가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촛불혁명의 성공 이후 한국사회가 다른 무엇보다 국가주권의 확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필연이라고 해도 좋다. 국가가 주체적이지 않다면, 시민의 주체성 역시 결코 담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주체로서 자각한 시민이라면 반드시 국가의 주체성 곧 주권을 확립하는 것을 모든 것에 앞서는 일차적 선결문제로서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랫동안의 민중항쟁을 통해 단련된 민중의 시민적 주체성에 대한 열망이 촛불혁명을 통해 실현되면서, 개개인의 정치적 주체성이 시민 공동체인 국가의 집단적 주체성 곧 온전한 주권의 정립과 실현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행이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사명은 무엇인가?
 
이런 의미에서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남북문제와 국가 주권의 문제에 대해 다른 어떤 문제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거부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시대정신의 자연스런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남북의 평화적 공존과 통일의 기초를 확고히 놓는 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를 이끌고 있는 주체들의 면면을 고려할 때, 그들이 떠맡아야 하고 또 감당할 수도 있는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문재인 정부를 이끌고 있는 중심세력이 권력재창출에 눈이 어두워져 자신들에게 맡겨진 정당한 역사적 소임을 넘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사명을 떠맡겠다는 만용에 사로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만용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리스 비극이 반복해서 경고했던 어리석은 인간의 ‘히브리스(hybris)’와 같은 경계를 넘는다면, 그들은 운명의 여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이미 그들은 마시지 말아야 할 독배를 마셔버리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그들 자신의 치명적인 ‘하마르티아(hamartia)’로 말미암아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미 종말의 시간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촛불혁명이 이룬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촛불혁명을 촉발한 87년체제의 모순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이른바 87년체제의 내적 모순이란 6월항쟁 이후 정치는 민주화됐으나, 경제는 전혀 민주화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민중이 피 흘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후 이 땅의 자본가들은 박정희도 전두환도 없는 세상에서 예전 같으면 독재자들에게 강탈당했을 막대한 재산 중 일부만으로도 여의도 정치인들과 서초동 법조인들, 그리고 광화문의 관료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그들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그리하여 민주화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재벌이 민주화의 과실을 찬탈해 나라 전체를 ‘재벌을 위한, 재벌에 의한, 재벌의’ 기업국가로 만들고 국민을 재벌 가문의 노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기여한 정부가 노무현 정부였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리고 모순이 노무현도 이명박도 아니고 하필이면 박근혜에 이르러 폭발했던 까닭은, 박근혜가 어리석게도 대한민국이 이미 기업국가가 돼버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라를 군주국가로 되돌리려 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 칩거생활 때문에 그녀는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작 5년 단임의 대통령이 3대째 세습하면서 한국사회를 이미 물샐틈없이 장악하고 있는 재벌권력을 다시 노예로 길들이려 했으니, 그 때문에 박근혜는 한국사회의 새로운 지배자들로부터 처참하게 응징당해야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다. 그리고 그 계승자답게 현 정부가 삼성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금산분리의 완화나 원격의료 도입추진 등을 통해 오해의 여지가 없이 우리 모두에게 증명해 보여주었다. 삼성과 현 정부의 친밀함을 애써 감추지 못하고 인도에서 또는 평양에서 증명해 보여야 했다는 것이야말로, 현 정부가 삼성에 얼마나 철저히 예속돼 있는지 보여주는 희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선량한 시민들은 그 희극을 보면서도 애써 눈감아 줄 것이다. 우리 앞에 보다 엄중한 과제가 놓여 있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 정부가 최선을 다해 헌신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다음 총선에서 저 매국노들의 정당을 국회의사당에서 깨끗이 추방하기 전까지는 현 정부의 과오를 애써 모른 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선의를 지금의 집권세력은 악용할 것이다. 그렇게 파멸을 부르는 비극의 씨앗은 언제나 자기 속에서 자라는 법이니, 인간의 어리석음을 타인이 치유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와 기업국가의 미래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재벌이 지배하는 기업국가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특권계급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답도 있게 마련이다. 그 답은 북에서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남북교류에 따른 북한특수가 남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리라는 망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호남선 고속철도 공사가 광주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군산의 자동차공장이 몰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그리고 4대강 사업이 부산과 대구의 토호들을 배불리는 것 외에 아무 기여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남쪽의 기업이 북한 땅에 철도와 도로를 놓는 토목공사를 벌인다면 재벌의 금고에는 돈이 쌓이겠지만, 그로 인해 남쪽 젊은이들의 가난이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라 기업과 기업들 사이에만 오간다. 기업은 최저생계비만 지불하고도 비정규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산업예비군들을 얼마든 확보할 수 있다. 그리하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라는 시대에 재벌기업의 금고에만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이 쌓여갈 뿐, 정작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리는 초현실주의적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북한의 개방과 남북한의 경제교류가 가져다줄 효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남한의 재벌독점경제체제와는 다른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게 되리라는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의 경제개방이 북한체제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은 증명이 필요 없는 자명한 사안이다. 그 위험은 휴전선 남쪽에 북한과는 전혀 다른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증폭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교류가 본격화되면 될수록, 북한 주민들의 동요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이는 과거 동서독의 통일과정을 돌이켜 볼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지금과 같이 남북한 교류와 경제개방을 추진하면서도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북한주민들이 북한체제가 남한체제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아니 최소한 남한체제보다 북한체제가 열등하지 않다는 확신을 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그 확신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경제의 사회주의적 공공성밖에 없다. 중국이 말하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나, 베트남이 모색하는 ‘사회주의적 지향의 시장경제(Socialist oriented market economy)’처럼 북한 역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공공성을 결합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의 사회주의적 공공성이 지금으로서는 개선될 가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남한의 재벌독점경제체제와 비교해서 북한이 확고하게 비교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이라면 (루소가 영국의 노동자들을 두고 야유했듯) 몇 년에 한 번 선거 때만 자유로운 시민일 뿐 1년 365일을 재벌기업이나 그 하청회사에서 임금노예로 사는 ‘헬조선’의 삶과, 아침저녁으로 어버이 수령님의 사진이나 동상에 절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매일 나가는 일터에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삶 중 택일하라면 어디를 선택하겠는가? 
 
이 물음을 생각하면 남한에 북한이 있고, 북한에 남한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서로를 폭력적으로 굴복시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던 역사를 끝내고 두 체제가 평화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시작하게 되면, 결국 서로의 장점을 배우면서 더불어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은 북한을 따라 경제의 공공성과 국가의 주체성을 확립해 나가고, 북한 역시 남한을 따라 정치의 공공성과 시민적 주체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은 서로의 고통에 손을 내밀어 응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고통에 응답하고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서로에게 “너도 나라다”는 고백을 할 날이 올 것이다. 통일은 그렇게 너와 내가 우리가 되는 서로주체성의 실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새로운 나라의 형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
 
하지만 그날이 그냥 기다린다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 역시 능동적 형성의 과제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온전히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의 설계도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설계도가 필요하듯, 나라를 세우려 할 때도 설계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해방 후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는 자각이 전혀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낡고 부패한 권력을 타도하고 스스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해도 설계도가 없는 까닭에 다시 예전 방식을 답습하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자기 나라를 스스로 형성하기 위한 설계도를 만들려 하지 않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매판 지배집단의 경우에는 식민종주국의 지시에 따르거나 그들의 설계도를 빌려오면 그만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을 비판하는 이른바 진보세력의 경우에는 이번에는 이론과 학문에서 철저히 사대주의의 노예가 돼 있는 까닭에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진보이론에만 기대려 한다. 우파가 권력의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면 좌파는 이론의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남의 이론이나 사례에 기댈 수 있다. 하지만 나라 전체를 새롭게 형성하려 할 경우에는 그런 모방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라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인 까닭에,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부분적 설계도를 모자이크처럼 연결한다고 해서 전체의 설계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의 설계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서 시작하는 이론의 총체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현실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고찰하면서, 총체성 속에서 그 현실을 그려내는 정신노동이 바로 철학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한 사람들은 “형이상학 없이 개화된 민족”이다. 반면 북한은 여하튼 그들만의 일관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북한의 철학적 경직성이 그 사회의 취약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남한의 철학적 무국적성과 몰주체성이 북한의 철학적 주체성을 이길 수는 없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싫다면, 우리가 다른 주체의 이념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서로 대화하고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의 적은 밖에 있는 현실적 권력이었다. 그렇게 타도해야 할 외부의 적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체제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고 학벌을 타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제도에 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이런 사정은 촛불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젠더와 소수자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모든 주제들에 대한 새로운 모색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룰 수 있으려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 위에서 우리가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총체성 속에서 기투(企投, Entwurf) 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정신적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누가 그런 정신의 노동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촛불 이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글·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학벌없는사회 이사장,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5.18기념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칸트철학과 근대적 주체성의 존재론』(한길사, 1998),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 『학벌사회: 사회적 주체성에 대한 철학적 탐구』(한길사, 2004), 『서로주체성의 이념』(길, 2007),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2012), 『만남의 철학』(길, 2015), 『철학의 헌정-5.18을 생각함』(길, 2015), 『네가 나라다』(길, 2017) 등이 있다.
 
※ 이글은 지난달 2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촛불혁명 2주년 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된 것으로 주최 측과 필자의 동의를 받아 발췌, 게재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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