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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분쟁‘조장’위원회와 탐욕의 좀비들
사학분쟁‘조장’위원회와 탐욕의 좀비들
  • 이진경
  • 승인 2010.09.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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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ée]

1993년인가, 대학에서 처음으로 강의를 했다. 물론 시간강사였다. 학교는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 그 이전에는 헌병 출신 이사장 김문기의 비리와 횡포로 인해, 그 뒤에는 교수와 학생들의 투쟁으로 김문기를 몰아내고 ‘민주화’가 되었기에 잘 알던 학교다. 민주화된 덕분에 나 같은 ‘좌파’ 이론가도 강의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뭐, 시간강의하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대수로울 게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대학에서 처음 한 강의여서 설렘마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소유권’

강의를 맡겨주신 선배에게 밥을 자주 얻어먹었는데, 종종 학교 일로 공부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재단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기 위해 계속 회의와 농성 등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김문기가 쫓겨나 구속된 상태였기에, 이미 해결된 것 아닌가 물었다. 그러나 사립학교 재단은 학교를 그들의 개인적 재산이라고 보기 때문에 ‘빼앗긴’ 채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다시 크게 싸워야 할 거라고 했다. 그럴 수 있겠지만, 비리로 쫓겨나 구속된 사람이 학교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했다.

그런데 얼마 전 기적 같은 일을 목격했다. 바로 그 상지대학교가 김문기와 그 일가에게 다시 넘어간 것이다. 교직원과 학생, 지역주민의 한결같은 의지와 투쟁에도 불구하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비리로 쫓겨난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 학교의 이사진을 장악할 수 있는 실질적 권리를 되돌려주었다. 18년 전에 들은, 투쟁의 뒤끝이었지만 결코 현실로 될 리 없다고 생각해 흘려들은 말이 실현된 것이다.

▲ <탐욕의 알레고리>, 1621-파울루스 모리일스
교육부에서도 난감해하는 일을, 어떤 주저함도 없이 과감하게 해치운 주역은 이른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였다. 아마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소유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게 틀림없을 이 위원회는, 교육부의 의도나 권고조차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학교를 원래 ‘소유자’의 손에 다시 넘겨주었다. 그들에겐 그 학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또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교육은 어찌될는지는 아무런 관심사도 아닌 것 같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학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누구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것인지뿐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자신들이 소유한 집이나 땅, 혹은 주식이나 채권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불법행위나 비리가 있든 말든, 소유권은 애초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는 상지대만이 아니라 조선대와 덕성여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덕분에 이제 그 대학교에선 교수도 학생도 공부하긴 틀린 것 같다. 저 끔찍한 비리와 횡포를 그저 방관할 수 없는 한, 그들은 재단과의 길고 지루한 싸움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잠재적 상태에 잠들어 있던 대립과 적대를 그 위원회는 전면에 불러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들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아니라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고 해야 마땅하다. 간신히 잠잠해진 학교에 다시 분란과 투쟁을 조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봉인된 악령들을 불러내는 기적의 마술사들이다. 누워 있던 좀비들의 환호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다. “아윌 비 백!”(I’ll be back!)

여기서 교육이나 학교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교육에서 미래를 보고 학교에 인생을 걸던 식민지 시대 계몽적 지식인 얘기는 어차피 아득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혹은 학교란 새로운 삶의 방식이나 좀더 나은 공동의 삶에 대해 꿈속에서 만드는 공동체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이에나들에게 채식을 권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하이에나에게 채식을 권하는 편이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식 학교를 말하면,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시계열적 연속성이 있어서 하나의 목적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이한 발생적 기원과 혈통을 갖는다. 가장 먼저 생긴 학교는 대학교였다. 11~12세기 파리대학 등이 그것인데, 신학이나 수사학, 수학 등을 가르치는 ‘직업학교’였다. 그다음 만들어진 것은 ‘콜레주’라고 부르던 중등학교로서, ‘청소년’들을 오염된 어른들의 세계에서 분리해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 지식, 이른바 ‘교양교육’을 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부르는 ‘국민학교’는 그 뒤 200년 정도가 지난 19세기 중반에 처음 만들어졌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대중을 ‘국민’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국민’으로 태어나는, 아니 그렇게 믿고 있는 지금으로선 ‘국민을 만들기 위한 학교’라는 말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민국가란 19세기에 비로소 탄생했다. 이전에 유럽 국가는 영국, 프랑스 등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봉건영주가 영토를 분할해 통치하거나 도시국가 내지 그것들의 연합체였다. 국민국가가 지배적 형태가 된 결정적 계기는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국민국가 규모로 군대를 모으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나폴레옹에게 봉건영주의 국가나 도시국가는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패배하고 점령당한 뒤 ‘우리도 국민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불같이 일어난 것은 당연했다. 19세기는 국민주의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국민국가가 된 것은 19세기 후반 들어서였다. 그런데 ‘통일운동’으로 국민국가는 만들었지만, 인민들은 지역마다 다른 언어로, 그리고 종교 등을 이유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국민국가를 이룬 1860년 다젤리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이탈리아인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국가의 ‘국민’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국민을 만들기 위한 가장 일차적인 장치가 바로 국민학교였다. 국민학교 교육이 국민의 ‘의무’가 된 것은 무엇보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대중이 ‘국민’이 되는 것은 의무로 강제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모든 비용을 국가가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가와 자본 위해 개인이 비용 부담

국민국가 단위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금, 학교 교육은 크게 두 개의 벡터로 규정된다. 하나는 ‘국민’을 만들어내는 것, 또 하나는 자본에 유용한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학교’에서 시작하여 ‘직업학교’로 끝나는 것이다. 교양교육은 그 두 방향에 의해 침윤되어 포섭되었고, 그나마 그 두 힘에 의해 점차 소멸의 길을 걷는 것 같다. 한때 ‘콜레주’ 개념의 확장으로 교양교육의 성격이 강화된 대학에, 이제 직업학교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필요와 기능의 논리에 따라 생각해보아도 이상한 것은 그에 필요한 비용을 이젠 대중 개개인에게 떠넘겨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게 국민국가였기에, 국민을 만들어내는, 이제는 단지 국민학교로 국한되지 않는 교육에 국가가 비용을 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에 필요한 노동력, 기업에 유용한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비용은 자본가와 기업이 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자본가들이 강성해지기 이전을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장인들의 시대에 도제들을 키우는 비용은 장인이 모두 지불했다. 먹고 자는 생활비 일체까지. 장인적인 생산이나 이윤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거대해졌고,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한 규모의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지금의 자본가라면, 그 교육비를 그들이 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세금 형태로 국가가 걷어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따라서 국민이나 유용한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역사가 ‘충실하게’ 진행된 유럽에서 국가가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당연한 것이다. ‘장학금’이란 말이 학비가 아니라 생활비를 뜻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탈리아에서 국민이나 노동자가 되기 위해 교육받는 것도 국가나 자본가를 위한 ‘노동’이므로 학생 모두에게 생활비를, ‘월급’을 지급하라고 요구한 것도 결코 황당한 일이 아니었다. 교육에 대해 ‘공공성’이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런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학교를 단지 개인의 소유물로, 재산으로 보는 입장이란 서당이나 향교, 혹은 서원을 떠올리게 하는 근대 이전의 ‘전통적’ 학교와도 아무 상관이 없고, 자본주의나 근대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서구의 학교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전혀 다른 혈통을 갖는다. 이는 모든 것은 소유자의 처분권에 속한다고 보는 근대적 소유 관념에서 연원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보면 모든 소유물은 소유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부르주아적 권리 관념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 소유 관념에서 기업과 집, 부동산과 학교는 어떤 차이도 갖지 않는다. 교수들의 ‘쪼인트’를 까는 이사장의 횡포 또한, 물론 안 그랬다면 더 좋았겠지만, 소유자의 처분권에 속한 것이다. 또한 부르주아적 권리 개념 속에서 학교 쪽의 착취나 재단의 비리는, 역시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기업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를 이유로 소유자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심지어 쫓아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사학분쟁 ‘조장’위원들의 생각이고, 사학을 소유한 수많은 소유자들의 신념일 것이다.

지옥 같은 교육 현실, 저항의 의미

나는 ‘국민’을 만드는 교육에도, 자본에 유용한 노동력을 만드는 교육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학교에선 이런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벌일 사정이 아닌 것 같다. 끝 모르고 올라가는 등록금, 쥐꼬리만 한 장학금, 은행의 이자놀이 수단이 된 학자금 대출, 재단에서 돈을 내기는커녕 학생들이 낸 등록금의 반 이상을 건물 짓기 위한 비용으로 비축해두는 대학, 취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라고 요구하면서도 그 대가를 지불하기는커녕 모든 비용마저 학생 개인에게 떠넘기는 상황, 그러나 아무리 좋은 스펙을 쌓아도 졸업자의 반 이상이 취업할 수 없게 된 사태, 그 와중에도 비리와 횡포의 무덤 속에 잠든 탐욕의 좀비를 다시 불러내는 ‘마술사’들, 이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풍자적인 농담이 아니라면 끔찍한 ‘지옥도’라 해야 할 것 같다.

학교 소유자나 국가 관리들이 이를 지옥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그거야 어차피 그러려니 하자. 그러나 훌륭한 노동자가 되는 데, 좋은 스펙 쌓기에 정신이 팔린 학생들 자신마저 이것이 벗어나야 할 지옥임을 잊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지옥임을 잊고 있는 한, 벗어날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상지대 교수나 학생들을, 또 미친 경쟁의 스펙 쌓기를 포기한 김예슬 같은 학생을, 또한 국가 관리의 위협에도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와 학생들에게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희망을 본다.

글•이진경
연구자들의 코뮌인 ‘수유너머N’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산업대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역사의 공간> <외부, 사유의 정치학> <미-래의 맑스주의> <노마디즘>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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