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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와 부르디외의 만남, 그리고 지성적 저항
귄터 그라스와 부르디외의 만남, 그리고 지성적 저항
  • 피에르 랭베르
  • 승인 2010.09.0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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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 작가 귄터 그라스는 뤼베크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맞이했다. 이들은 사회 및 지식인 사회의 현실을 함께 진단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대담은 이내 활기를 띠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재미가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대 자체가 정말 재미없잖아요. 도대체 웃을거리가 없는 거죠.”(부르디외)
“저도 우리가 재미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문학적 수단이 유발하는 끔찍한 웃음은 우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그라스)
 
그라스와 부르디외의 대화

가르강튀아의 모험이나 프랑수아 라블레의 기지에 친숙한 그라스가 냉소적인 지성의 저항적 미덕을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끔찍한 웃음’이란 장사꾼들이 제공하는 오락이나, 같은 부류끼리 공모적 신호로 주고받는 시니컬한 킥킥거림이나, 권력자들의 명성을 무너뜨림으로써 나름의 명성을 쌓는 비평적 웃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유구한 전통에서 비롯된 고삐 풀린 웃음이다.

▲ <두 인물의 창작>, 1961- 가스통 세삭
억압받는 이들에게 저항의 수단을 제공하기 위해 웃음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민중적 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웃음이 터지면서 하나의 총체적 세계관을 배출해야 하며, 끝으로 사회질서와 전복적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 러시아의 문학역사가 미하일 바흐친은 1960년대 중반에 펴낸 유명한 논문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1)에서 바로 이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 희극문화를 분석했다. 이 문화는 중세 유럽 전역에서 풍성하게 발달했다. 신체를 지배하던 봉건세력도, 정신을 장악하던 교회도 집단적 환희의 발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카니발, 샤리바리(무리지어 냄비 등을 이용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모욕을 주거나 비난을 하던 풍습), 연회, 고대 로마 사투르누스 축제에서 유래한 익살스러운 의식, 가톨릭 예식을 풍자한 행렬 등이 군중을 규합했다. 거인과 난쟁이, 괴물과 어릿광대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농경생활(포도 수확, 추수)의 리듬과 계절 변화, 사순절 이전과 이후를 알리는 표시였다.

광인 축제, 당나귀 축제, 부활절 웃음 등 교회와 관련 있는 또 다른 해학적 행사에는 성직자들도 참여했다. 광인 축제에서는 여성으로 변장한 사제들이 음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부사제들이 제단에 놓인 돼지고기 순대를 게걸스레 먹는 가운데 ‘광인들의 교황’을 선출했다. 당나귀 축제에서는 신부가 당나귀를 앞에 두고 ‘당나귀 미사’를 거행하고는 ‘히힝’하는 울음소리를 세 번 내면 신도들도 기존의 ‘아멘’을 대신해 이를 따라하며 화답함으로써 예식을 마쳤다. 부활절 웃음에서는 고위 성직자가 농담과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면서 금식으로 지친 신도들에게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바흐친 “축제는 제2의 세계와 삶”

공식행사와 별도로 용인되던 이런 행사들을 모두 합하면 연중 개최 기간이 몇 주에 달했으며, 대도시에서는 석 달에 이르기도 했다. 이를 일종의 안전판, 배출구라고 볼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다. 바흐친의 설명에 따르면 “이 행사들은 공식적인 세계 옆에 제2의 세계, 제2의 삶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중세인은 여기에 상당한 규모로 참여하면서 정해진 날짜의 리듬에 따라 살아갔고, 이것은 이중적인 세계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는 권력의 내부적 전복이 아니다. 체제가 뒤집힐 여지가 안 보이는 방향으로 경제·사회 세력이 발전하는 역사적 단계에서 일시적으로 행하는 유토피아의 연출이다.

이런 또 다른 세계는 중세 희극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카니발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광장은 그 무대였다. 현대 도로와는 달리 중세 광장에는 언제든 잠재적인 관중이 있었다. 즉 ‘그곳에 이미 있는 세계’(2)였다. 학자, 무식한 자, 농민, 도시민, 조합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카니발에 동참했다. 카니발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카니발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했다. 또한 “축제 기간 내내 오로지 카니발 고유의 법, 즉 자유의 법에 따라서 살았다”.

현재를 비웃고 다산과 풍요 예고

카니발의 웃음은 제도를 조롱하고 지배자들을 놀리는 동시에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탄생시켰다. 축제 기간에는 온갖 계층과 부류의 참여자 간에 사회적·위계적 장벽들이 사라지고, 대신 평등하고 자유로운 접촉을 했다. 이처럼 유례없는 관계에 상응해 저속한 표현과 욕설을 포함하는 새로운 구어도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은 신체, 음식, 음료, 성(性)에 대한 과장된 표상체계를 만들어냈다. 공식적 축제들이 과거를 기림으로써 현재의 질서를 확고히 한다면, 카니발은 현재를 비웃고 다산과 풍요의 미래를 예고했다.

민중적 축제들이 담고 있는 세계관은 전복의 논리를 따른다. 사람들은 공식적 규범과 대척점에 선 신체적·정신적 특징을 지닌 익살스러운 영웅들의 서사시를 노래하고, 남자가 여자로 변장하기도 하고, 옷의 앞뒤를 돌려 입기도 한다. 지배적 질서에서 상부(지성·하늘·근엄함·공식성·엄격함)를 암시하는 모든 것은 바흐친이 “물질적·육체적 하부”라고 명명한 것을 향해, 말 그대로 ‘궁둥이를 머리 위로 한 채’ 고꾸라진다. 하부란 바로 내장(內臟)·성(性)·대지를 일컬으며, 제거·재생산·성장의 기능을 담당한다. 대뇌(大腦)의 상부를 복부(腹部)로, 땅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지배적 범주들을 매장하는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위한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카니발의 웃음은 양면적이다. 즉 유쾌하고 기쁨이 충만하면서도 조소적이고 냉소적이며,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하고, 매장하는 동시에 되살린다.

카니발이 특히 겨냥하는 전복 대상은 근엄한 정신이다. 이 정신은 중세시대의 공식적 문화 전반에 스며 있었다. 이로써 (민중에게) 금욕, 속죄, 고통, 신의 징벌에 대한 공포를 권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장중하게 표현되었다. “근엄한 톤은 진실과 선(善)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형태처럼, 대체로 중요하고 막대한 그 모든 것인 양 자리잡았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대학, 기업주, 정치인들은 근엄함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자연적인 현상은 결코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인과 철학자들은 폭소를 즐겼다. 소크라테스는 웃음을 교육적 도구로,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적 무기로 삼았다. 중세 권력기관은 ‘고양된’ 모든 정신적 표현에서 웃음을 몰아내버렸다. 이런 움직임은 ‘예수도 웃었을까?’라는 해묵은 신학적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나타난다.(3)

근엄한 상부를 하부의 언어로 전복

카니발의 세계관은 근엄한 ‘상부’를 ‘하부’의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신에 대한 공포와 우주적 재앙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다. “근엄함은 억압하고 공포를 조성하고 결박했으며, 속이고 에둘렀다. 근엄함은 또한 구두쇠였고 수척했다. 축제 동안 광장의 사람들은 풍성하게 차려진 상 앞에서 근엄한 톤을 마치 가면처럼 벗어던졌고, 그러자 또 다른 진실이 들려왔다.” 바로 해학적이고 자유로운, ‘뒤집어진 세상’의 진실이었다.

이처럼 두려움에 대해 승리를 거두면 정신도 자유로워진다. 민중적 희극 형식은 근엄함의 매듭을 풀어냄으로써 인간의 의식과 사고, 상상력을 해방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열리게 한다. 권력의 상징을 일시적으로 뒤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실질적으로 전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새로운 격변을 위해 파업은 카니발을 대신해 ‘전혀 다른 세계, 또 다른 세계 질서, 또 다른 삶의 구조’에 대한 전망을 구체화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작업장 구실을 한다.

파업, 현대적 카니발

17세기 중반 유럽에서 민중 희극문화는 광장에 대한 억압과 함께 힘을 소진해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긍정적인 거점을 잃어버린 것이다. 양면성을 빼앗긴 카니발은 한낱 오락거리로, 과장은 풍자로, 끌어내리기는 단순한 부정으로 축소됐다.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사실주의는 퇴화하기에 앞서 이미 고전적 문학 형식을 풍요롭게 탄생시켰다. 라블레, 윌리엄 셰익스피어, 미겔 데 세르반테스 등이 바로 ‘카니발화’한 작가들이다.

바흐친은 “지난 3세기에 걸친 모든 사실주의 문학 영역에는 그로테스크한 사실주의의 잔해가 흩뿌려져 있다”고 말한다. 빅토르 위고가 <파리의 노트르담>의 앞부분에서 묘사한 광인들의 축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 푼짜리 오페라>,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 그런 경우다. 웃음이 우리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다. 시위도 민중이 광장을 점유하고 가면, 풍자, 희극적 슬로건으로 권력을 비웃는다는 맥락에서 카니발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파괴적인 동시에 혁신적인 냉소적 웃음이 더 이상 새 시대를 예고하는 나팔을 불지 못한다고 누가 말했는가?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텔레비전의 종말>(2007) 등이 있다.

<각주>
(1) Mikha?l Bakhtine,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L’Œuvre de François Rabelais et la culture populaire au Moyen Age et sous la Renaissance), Gallimard, <Tel>, Paris, 1982(1965). 별도의 주석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인용문은 이 책에서 비롯됐다.
(2) André Belleau, ‘카니발은 아직 죽지 않았는가?’ (Carnavalesque pas mort?), <Etudes françaises>, vol.20, n°1, 1984, p.40.
(3) Jacques Le Goff, ‘중세의 웃음’(Rire au Moyen Age), <Les Cahiers du Centre de recherches historiques>, n°3, 1989를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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