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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의 식탐 굶주리는 세계
투기자본의 식탐 굶주리는 세계
  • 마르틴 뷜라르
  • 승인 2010.10.0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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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역사상 최초로, 매일 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드는 인구가 10억 명을 돌파했다.” 이 우울한 진단은 어느 인권운동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니다. 이 말을 한 이는 다름 아닌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다. 그는 지금부터 2015년까지 기아를 뿌리 뽑겠다는 새천년개발목표가 사실상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1)고 지적했다. 지난 10년 동안, 빈곤과 영양실조는 눈에 띄게 줄어드는가 싶더니만, 2008년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세계은행 전문가들은 올해에만 약 6400만 명이 추가로 극빈곤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일과 2일, 식량난으로 발생한 모잠비크 소요 사태처럼, (기분 나쁜) 기억의 창고로 영원히 추방했다고 생각한 이미지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여러 개도국의 식량안보는 여전히 시급한 문제로 남아 있다”는 다소 에두른 표현으로 기아의 현실을 축소해버린다.

이렇게 선진국과 후진국 간 식량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로 자연재해를 꼽을 수 있다. 인도에서는 열대계절풍 몬순이 몰고 온 폭우가, 파키스탄에서는 홍수가 쌀과 차 경작지를 모조리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농작물 가격이 몇 달 새 3분의 1 이상 치솟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러시아에서는 대형 산림 화재로 밀 경작지가 황폐화하면서 밀 수확이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파종에도 차질을 빚어 이듬해 추수까지 문제라고 한다.

그럼에도 현행 곡물가 급등은 자연재해보다는 투기로 인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 중앙은행에서 (거의) 공짜로 제공하다시피 한 대규모 유동자금을 보유한 투자기관들은 요즘 새로운 먹잇감으로 원자재를 노리고 있다. 과거 부동산에 몰렸던 어설픈 금융 투자가들이 이제는 농산물이나 (비철금속을 비롯한) 원자재 쪽으로 방향키를 돌린 것이다.

실례로, 지난 9월 중순 영국의 유명 헤지펀드 아마자로는 유럽 전체 비축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카카오를 싹쓸이했다. 그로 인해 며칠 만에 t당 코코아 콩의 가격이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뿐만 아니라 코코아 파동의 여파는 밀, 쌀, 대두 등으로 줄줄이 확산됐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일각에서는 규제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이미 서브프라임 사태 때 규제의 경종이 울린 바 있지만, 위기 이후 바뀐 것은 없었다. 더욱이 은행의 탐욕스러운 투자욕을 저지하기 위해 마련된 일부 규정(일명 ‘바젤3’)마저 오히려 금융계에서 환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유력 경제 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은 단호한 어조로 “은행 투자가들은 바젤3 협약을 경애한다”(2010년 9월 13일)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은행 투자가들은 계속 여기저기 투자처를 헤집고 다닐 것이다.

곡물가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개도국이다.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압력에 못 이겨 내수용 경작을 포기하고 농산물 수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UNCTAD는 보고서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위해서는 내수시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또 “수출 주도의 개발 패러다임을 재검토”할 것을 호소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그저 마법의 주문이나 외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희망의 환상은 몰라도, 그것만으로 지구를 먹여살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글•마르틴 뷜라르 Martine Bular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로버트 졸릭, ‘빈곤을 퇴치하는 것은 성장이다’, <르몽드>, 2010년 9월 16일자.
(2) 이하 인용문은 ‘2010년 무역개발보고서’(제네바, 2010년 9월 14일)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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