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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의 별' 조양호, 70년 인생 빛과 그림자  
'항공의 별' 조양호, 70년 인생 빛과 그림자  
  • 김진양 기자
  • 승인 2019.04.08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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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숙환으로 미국서 별세
글로벌 대한항공 이끈 주역…'재벌 갑질' 대명사 오명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70년 인생의 공과를 뒤로하고 평생 사랑하고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갔다. 8일 숙환으로 별세한 조 회장은 '수송보국' 일념으로 오늘날의 글로벌 대한항공을 일군 주역이다. 한국의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위상을 제고하는 등 국내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도 해왔다. 동시에 그는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비리와 횡령 혐의 등으로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났다. 이 여파로 최근에는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하는 등 명예롭지 못한 인생의 말년을 보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탁월한 '선견지명'…대한항공 50년 이끌어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를 166대까지 늘렸다. 일본 3개 도시 만을 위항하던 국제선 노선도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수는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이 같은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지난달 열린 대한항공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임직원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지난달 4일 열린 대한항공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임직원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한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한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가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됐다.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 자리에 앉은 것을 시작으로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차례로 올랐다. 그의 재직기간 중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은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났다. 

조 회장이 이끄는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은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그 때마다 그는 냉철한 판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는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고, 이듬해 외환 위기가 정점일 때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이라크 전쟁, 중증호흡기증후군(SARS), 9·11 테러 등의 후폭풍으로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2003년에는 이 때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또한 2000년에는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해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에도 맞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000년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다. 사진/대한항공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000년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다. 사진/대한항공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FSC)와 저비용 항공사(LCC) 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트렌드에도 유연하게 대응했다.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한 것.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는 확신에서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한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 항공산업 발전에도 헌신

조 회장은 한국의 항공산업 위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특히 그는 '항공업계의 UN'이라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 한국 항공산업 발언권을 높여왔다. 그는 1996년부터 IATA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아왔다. 

이는 곧 전 세계 항공산업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IATA에서의 그의 위상은 올해 IATA 연차총회를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지난 2017년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조인트벤처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대한항공
지난 2017년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은 조인트벤처 협약을 체결했다. 사진/대한항공

조 회장은 또 한국 항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고심했다. 2010년대 미국 항공사들과 일본 항공사들의 잇따른 조인트 벤처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중요한 수익창출 기반인 환승 경쟁력이 떨어지자, 조 회장은 델타항공과의 조인트 벤처 추진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런 해법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과 함께 시너지를 내 한국의 환승 경쟁력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이 외에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국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을, 2015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 몽골 국가 발전 뿐 아니라 한·몽골 관계 강화에도 기여한 공이 컸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조 회장은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10개월간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으로 지구 16바퀴에 해당하는 약 64만㎞를 이동했다. 이 동안 IOC 위원 110명 중 100명 정도를 만나 평창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후 조 회장은 평창올림픽 유치 공로로 2011년 한국언론인 연합회 주최로 열린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에서 '최고 대상'을, 2012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무궁화장을 받았다. 

 

한진해운 해체·재벌 갑질…빛바랜 업적

조 회장의 경영 활동은 언제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글로벌 해운업계 불황의 여파로 주력 계열사 중 하나였던 한진해운이 공중분해됐고, 자녀들의 '갑질 파문'이 총수 일가 전체의 일탈로 비화돼 '재벌 총수 일가 전횡'의 대명사라는 오명도 썼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진해운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겨영인들의 잇따른 오판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이에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그는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해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르고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를 출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은 채권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결국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육·해·공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의 한 축이 무너졌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부당한 외압으로 물러난 것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올림픽 유치 활동에 큰 역할을 했음에도 지난 2016년 5월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자리에서 내려온 것. 이후에도 그는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해 서울남부지검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해 둘째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밝혀진 총수 일가의 일탈과 전횡은 그의 씻을 수 없는 얼룩이 됐다. 지난 2014년 말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불거진 조 전 전무의 사건은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이후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운전기사, 가정부 등 상습 폭행,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의 해외명품 밀수입,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인하대 부정편입학 의혹 등이 연이어 불거졌고, 조 회장 본인도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처지가 됐다. 

이는 결국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된 것. 대한항공 측은 "사내이사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애써 경계했으나,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CEO 등극 20년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이틀 후 열린 한진칼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자격 강화안은 폐기돼며 두 번째 위기는 모면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련의 상황들이 그의 병세를 악화시킨 것으로 주변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재계 "한국 사회 큰 손실" 애도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에 재계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 항공·물류산업의 선구자이자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조 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조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통해 황무지에 불과하던 항공·물류산업을 일으켜 세계적 반열에 올려놨다"며 "조 회장 덕분에 한국은 우수한 항공·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다지고 역동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 그의 생전 업적을 평가했다.  

이들은 또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장, 전경련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국제 교류를 증진하고 우호관계를 강화해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며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조 회장의 별세는 재계를 넘어 한국 사회에 큰 손실"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조 회장의 별세 소식에 경영계는 큰 충격을 느낀다"며 애도 성명을 냈다. 조 회장은 지난 2004년부터 경총 부회장직을 수행해 왔다. 

경총은 "조 회장은 지난 20년간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을 이끌어 오면서 대한항공을 단단한 글로벌 항공사로 키우셨다"며 "한국 항공산업과 경제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국가적 행사에도 공로가 많았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어 "고인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헌신을 기려나가겠다"며 "대한항공이 흔들림 없이 세계적 항공사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조 회장은 평생 국내 항공·물류산업의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임직원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 역시 "고 조양호 회장은 항공 및 물류산업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 무역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 왔다"며 무역업계를 대표해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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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jy.kim0202@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