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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 지배구조 해부)①삼성, '금산분리'가 난제 중의 난제
(재벌그룹 지배구조 해부)①삼성, '금산분리'가 난제 중의 난제
  • 김진양 기자
  • 승인 2019.05.07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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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완전 해소...이재용 중심구조로 단순화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등 처리방향 주목

[편집자주] 지난 2017년 6월, '재벌 저격수'라 불리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후 최우선 과제로 '재벌 개혁'을 내세웠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 지주회사 전환, 일감몰아주기 근절 등 기업들의 선제적인 재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다. 그 이후 삼성, 롯데, 대림 등 적지 않은 기업들이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등을 개선하는 조치들을 잇따라 내놨다. 김상조 위원장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 변화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기준 공시대상기업집단 순환출자 고리 수는 41개(6개 집단)로 2017년 282개(10개 집단)에서 대폭 줄었다. 순환출자 고리는 줄어들었지만, 최근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사태에서 보듯이 재벌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아직은 유형무형의 변화가 진행중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한국 경제의 중심에 서 있는 주요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현황을 분석하고 향후 과제를 짚어본다. 

 

지난해 4월 삼성SDI는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 404만2758주(2.11%)를 전량 매각하며 그룹 지배구조 개선에 신호탄을 쐈다.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지목된 순환출자고리를 끊어내는 작업이 시작됐음을  알린 것이다. 순환출자 해소로 큰 부담은 덜어냈지만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으로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금산분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도 장기적으로는 처분해야 한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당시 삼성바이오의 기업 가치가 부풀려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는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 

 

7개 순환출자고리 완전 해소

2018년 4월10일 삼성SDI는 삼성물산 주식 전량을 장 마감 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했다. 주당 거래가격은 13만8500원으로, 당일 종가(14만4000원) 대비 3.8% 할인된 금액이다. 총 거래규모는 5599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등으로 이어지는 3개의 순환출자고리가 끊어졌다. 

 

자료/한국신용평가
자료/한국신용평가

삼성SDI의 삼성물산 지분 매각은 공정위의 처분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2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신규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됐다"며 "삼성SDI가 갖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 전부를 6개월 이내에 처분하라"고 통보했다. 2015년 양사 합병 당시 순환출자 강화로 봤던 판단을 번복한 결정이었다. 공정위가 제시한 데드라인까지 4개월 남짓한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삼성은 조기에 문제를 매듭지었다. 

같은 해 9월20일 삼성전기와 삼성화재도 각각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2.61%)와 261만7000여주(1.37%)를 처분했다. 삼성SDI와 마찬가지로 장 마감 후 블록딜 방식을 택했다. 이로써 지난 2013년 80여개에 달하던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고리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오래도록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순환출자 단절이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삼성의 순환출자고리 해소는 정부 방침을 따르겠다는 큰 틀에서 진행됐지만, 이 과정에서 1조원을 훌쩍 상회하는 삼성물산 지분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아닌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됐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이 지분들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에 큰 문제가 없다는 점도 고려가 됐겠지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되며 추락한 그룹 이미지 쇄신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 부회장 자신도 일련의 재판들을 거치며 "회사의 리더가 되려면 사업에 대한 경영능력으로 인정받아야지, 지분 몇 퍼센트를 갖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17.08%)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32.98%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5.01%,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갖고 있어 사실상 지주사의 위치에 있다.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를 뼈대로 하는 지배체제가 형성된 가운데 과거에 비해 한결 단순해졌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처리가 핵심

순환출자고리 문제를 해결한 후의 핵심관건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처리 문제다. 삼성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주시하고 있는 김상조 위원장도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는 삼성생명이 고객의 돈을 이용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열사를 이용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현행 지배구조는 중장기적으로는 해소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자료/KTB투자증권
자료/KTB투자증권

삼성은 현재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정한 '10%룰'을 맞추는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해 5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각각 0.36%, 0.06%의 지분을 매각한 것 역시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에 따른 지분율 상승을 막기 위함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에 대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율(보통주 기준)은 각각 8.51%, 1.49%다. 

하지만 금융계열사들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자산 평가 기준을 취득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보험업법 개정안과 금융그룹이 비금융계열사 발행 주식을 5% 이상 소유하는 경우 초과분을 5년 이내에 매각하는 내용의 금융그룹 감독에 관한 법안 등이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최소 5%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데, 7일 종가(4만4850원)로만 환산해도 13조원이 넘는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 

이 중 일부를 삼성물산이 사들이는 방안이 시장에서 유력하게 거론되고는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삼성전자의 지분 가치가 삼성물산 자산(18년 말 개별 기준 33조8800억원)의 절반을 넘어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강제전환되면 현행 지주사법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20% 이상으로 늘려야 하고, 공정위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방안이 통과될 경우 이 비율은 30%이상으로 늘어난다. 삼성물산이 서초사옥을 매각하는 등 현금 자산 보유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솔로몬의 지혜'를 요구할 만큼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이재용 상고심·삼바 수사 '주목'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활발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후속 작업이 이뤄진다면 삼성물산이 중심에 있는 구도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가 될 지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고질병'으로 지적됐던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마친 만큼 나머지 과제들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할 것이란 시각이 다수다. 금융부문만 우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삼성 측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이 부회장의 상고심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 수사가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늦추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돼야만 새로운 대안을 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위원장 역시 지난 3월 유럽 방문 중 가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국정농단 사태에 더해 삼성바이오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지연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7일에도 검찰은 삼성바이오 보안담당 직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송도 공장을 압수수색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태에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관여한 증거들을 찾기 위함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 이후에 이뤄져댜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삼성이 국정농단 사태 등에 연루되면서 지배구조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한 부분도 없지 않다. 총수 공백 사태를 겪으면서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계열사별 독립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경영과 감시의 독립도 추진중이다.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삼성전자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해 이사회의 책임과 독립성을 강화했다. 또한 외국 국적과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사외이사후보 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기도 했다. 삼성물산도 지난해 필립코쉐 전 제너럴일렉트릭 전무를 외국인 사외이사로 처음 영입하는 등 이사회 구성의 변화를 꾀했다. 

삼성이 스스로 추진해온 일련의 변화와 현재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의 결말과 관계없이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디. 재판이나 수사에 따라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에 유형무형의 타격이 일부 있겠지만, 지분구도 자체를 흔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소의 이미지 손상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은 앞으로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가운데 일부 손질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적절한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을 수 없고, 삼성물산이 보유중인 삼성생명 지분의 처리도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중간금융지주회사 허용 필요성이 과거 한때 제기되기도 했지만, 문재인정부 들어 잠잠해졌다. 지주회사 전환 여부도 향후 관심사이다.  삼성은 아직까지는 지주회사 전환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여부와 관계없이 지금 삼성에게 더 시급한 것은 정부당국이나 시민단체 및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소통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난달 열린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는 일부 기관에서 반대하는 인물을 끝내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그런 소통을 계속하는 가운데 국내외 투자가와 한국 경제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향후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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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양 기자 jy.kim0202@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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