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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상징'에서 'M&A 큰손'으로
'먹튀 상징'에서 'M&A 큰손'으로
  • 정초원 기자
  • 승인 2019.05.10 1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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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급부상...롯데 금융 계열사 인수전서 '존재감'
대주주 적격성 승인 등 과제는 남아
사진/뉴스1
사진/뉴스1

국내 토종 사모펀드(PEF)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으로 존재감을 떨치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권 알짜 매물로 떠오른 롯데 금융 계열사의 인수전에서 사모펀드가 승기를 잡아 금융권의 이목을 끌었다. 사모펀드가 더이상 자본시장의 '보조 플레이어'가 아닌 1조원대 빅딜의 '주역'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먹튀' 이미지 컸던 사모펀드…롯데카드 딜과 어떻게 다를까?

그동안 국내에서는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남긴 '먹튀(먹고 튀다)'의 잔상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지난 2003년 매물로 나온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00억원에 인수했다가 3년 만에 영국계 은행인 HSBC에 매각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국내 금융권에서는 해외 투기자본이 국내 은행을 헐값에 샀다가 시세차익을 올리고 빠져나가려 한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이른바 '먹튀' 논란이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 론스타가 국내 은행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도록 허용한 것부터가 정부의 실책이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결과적으로 외한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던 계획은 금융당국의 제동에 걸려 실행되지 못했다. 론스타는 우여곡절 끝에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 지분을 4조원에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지만, 이 사태는 국내에서 사모펀드가 투기세력으로 인식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직까지도 '사모펀드들은 단기 차익에만 골몰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완전히 지워졌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실력있는 토종 사모펀드가 국내 시장에서 덩치를 키우면서,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모험자본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평가가 부쩍 늘었다. 최근 롯데카드의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앤컴퍼니도 단기 차익보다는 장기 투자에 방점을 찍는 사모펀드로 분류된다. 재무적투자자의 특성상 기업 몸값을 높여 추후 M&A 시장에 재매각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생존력을 높이는 차원에선 나쁘지 않은 딜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일반적인 사모펀드들을 론스타와 같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사모펀드가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활약해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사모펀드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조처를 하고, 추후 시장에 다시 매물로 내놓는 것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1~2조원 규모에 달하는 대형 M&A일수록 사모펀드의 적절한 투자가 오히려 단비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성 교수는 "인수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레버리지(수익 증대를 위해 부채를 끌어다가 투자하는 방식)가 높아지면 금융 안정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 부분을 금융당국이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노조 반대 등 과제 산적

롯데카드 내부에서는 금융그룹이 아닌 사모펀드에 인수되는 것을 다소 불안하게 느끼고 있다. 롯데 측은 한앤컴퍼니와의 거래 과정에서 '고용 보장'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설명했지만, 이 약속이 꼭 지켜지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MBK파트너스는 오렌지라이프(당시 ING생명)를 인수하면서 '3년 고용 보장'을 약속했지만, 이 기간을 채우기 전인 1년만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했던 사례가 있다. 김동억 롯데카드 노조위원장은 "사모펀드의 본질을 생각하면 직원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도 아닌데 이번 매각으로 조직 개편이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롯데카드 노조는 한앤컴퍼니로의 매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이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앤컴퍼니 입장에서도 롯데카드 인수까지 남은 과제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우선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는 큰 산이 남아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매각 조건을 상세히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해, 미리 결과를 예상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앞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경우 지난 2013년 비은행금융사인 오렌지라이프(당시 ING생명)를 인수할 당시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한 바 있다.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때 한앤컴퍼니가 롯데카드를 인수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한앤컴퍼니 최고경영자(CEO)인 한상원 대표가 최근 탈세 논란에 휩싸인 것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KT 새노조는 지난 3월 한 대표를 비롯해 황창규 KT 회장과 김인회 KT 사장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 배임, 조세범 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KT 새노조는 "한앤컴퍼니는 온라인 광고 대행사인 엔서치마케팅의 회계장부상 무형자산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시가보다 3배 많은 600억원에 KT에 팔았다"고 주장한다. 한 대표가 KT로부터 증여받은 차익에 대한 세금을 탈세했다는 게 노조의 지적이다. 

아직까지는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향후 검찰 조사 추이에 따라 금융당국 심사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산업자본의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할 때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라 판단하는데, 이 법은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 공정거래법, 조세범 처벌법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았다면 대주주 결격 사유로 본다. 한 대표의 경우 대주주와 동일인으로 분류돼, 대주주 자격 심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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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원 기자 chowon616@ilemonde.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