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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지상주의, 외계인과 인간
성장지상주의, 외계인과 인간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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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지구인을 납치한 후, 인간과의 이종교배로 혼혈종을 만들고, 다시 인간과의 교배를 통해 좀 더 인간에 가까운 2차 혼혈종을 탄생시켜 비밀리에 인간 사회에 침투해왔다”고 밝힌 옥스퍼드대 지영해 교수의 주장은, 외신들의 화제성 뉴스로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의미심장하다. 더욱이 “외계인의 출현 시기는 특히 지구가 기후변화와 핵무기 등 주요 문제에 직면하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고 말한 대목은 예지자의 ‘말씀’ 같은 묘한 느낌마저 든다.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반(反) 인류애적, 반 공동체적 어법과 행동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들을 외계인이나 외계인 혼혈종이라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지 교수의 주장은 외계인에게 납치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직접 면담한 실증적 결과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지구와 수백, 수천 광년이나 떨어진 생명체들이 이곳에 오려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타임머신을 타야 한다. 타임머신을 움직이기 위해선 속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이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자들은 타임머신의 가능성을 질량이론, 중력이론, 블랙홀이론, 상대성 이론 등 다양한 이론을 동원해 탐색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인(물론, 그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이 어떻게 지구까지 오게 됐는지 속 시원히 밝힌 적이 없다. 

『미래의 물리학』의 저자인 미치오 카쿠는 시간에 대한 3가지 오해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시간이 어디에서든 똑같다고 믿지만, 시간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으며 장소마다 다른 속도로 지나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흔히 시간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고 믿지만, 중력이 작은 우주 공간에서는 지구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3차원에서 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뤄진 4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 여행자가 되려면, 시간을 타임머신 같은 기계적 의미가 아닌 차원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카쿠의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지 교수의 주장대로 핵무기와 기후환경의 문제는 인간 영역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불거진 게 아니다. 외계인이나 외계인 혼혈종이 인간파괴를 위해 일으킨 속도경쟁에서 비롯된 재앙인 셈이다. 

<르디플로> 7월호에서는 마치 외계인의 지구공략처럼 무서운 속도로 기후환경을 망가뜨리는 성장지상주의와 민영화의 현실을 진단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의 바람직한 공존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르디플로>는 또한 국가자산의 민영화가 성장 속도를 앞세운 소수의 몇몇 ‘외계인’들이 독식하고, 국가가 아닌 기업이 공동체를 이끌어감에 따라 공권력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노조가 권력과 야합해 노동자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다.   

시간과 속도를 둘러싼 싸움에서 ‘외계인’에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인간의 ‘4차원 공간’에서 중력을 받는 몸짓으로 천천히 시간의 흐름을 탐닉하는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숲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며 윤동주의 ‘서시’를 읊어보는 것도, 연해주의 넓은 평야를 그냥 달려보는 것도, 또는 냉방이 잘된 도서관에서 <르디플로>를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도 ‘인간의 시간’을 되찾는 일일 것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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