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언제까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언제까지?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19.10.31 15: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의 EC(유럽공동체) 가입은 유럽연합이 꾸준히 회원국을 확대하는 서막이 됐다. 하지만 이후 ‘확대’라는 단어에 적합한 대외정책은 찾아보기 더 어려워졌다. 때때로 ‘플러스는 곧 마이너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확실한 결론 대신 장황한 협의만 이어갔을 뿐이고, 권력이 확대되기는커녕 도리어 존재감만 약화됐다. 현재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대부분 미국의 제국주의 모험에 동참한 국가들(현 회원국 중 16개국이 이라크 전쟁에 공헌했다)로 이뤄져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내정간섭까지 서슴지 않는다(그러니 베네수엘라 야당을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리라). 

트럼프 행정부의 변덕에 대해서도 겉으로는 반기를 드는 시늉을 하지만, 정작 미국이 제재카드를 휘두르며 위협해오면(이란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대한 경제제재)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조용히 대열로 돌아간다. 사실상 유럽은 회원국 수가 늘기 전, 중동에서 오히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과거 샤를르 드골은 영국이 구대륙에 잠입한 미국의 트로이 목마가 될 것이라며 영국의 EC 가입을 반대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유럽연합은 미국의 뒷마당이 된 지 오래이므로.

국방 분야에서 미국의 지배는 한층 더 치욕스럽다. 냉전 중 창설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미국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백악관의 허락만 있으면, NATO의 한 회원국이 또 다른 회원국을 마음대로 식민지로 삼거나(터키는 45년째 키프로스 일부를 점령하고 있다), 이웃 나라를 자국의 ‘안전지대’로 취급하는 등의 일이(터키는 쿠르드가 주축이 된 부대들을 몰아내고 국경을 ‘안전지대’로 만들어 시리아 난민이 귀국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주장한다-역주)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NATO 회원국 가운데 제2위 군사력을 자랑하는 터키군은 쿠르드의 자치·독립을 막기 위해 시리아 북부를 침공했다. 

미 정부는 터키의 시리아 침공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사실상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미국을 위해 러시아의 일부 해상국경을 감시해주고, 미국산 무기의 60%를 구매해주며, 미국의 핵탄두를 다량으로 배치하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NATO 사무총장도 마찬가지로, 터키의 시리아 침공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의 토니 블레어’라는 의미심장한 별명으로 불리는 스톨텐베르크 총장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터키는 공동의 적인 이슬람국가조직(IS)을 상대로 거둔 우리의 승리가 퇴색되지 않도록 여타 동맹국들과 공조 하에 매우 신중하게 행동하고 있다.”

NATO를 집행자로 내세운 미국은 2003년 날조된 정보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해 현 중동의 혼돈을 초래했다. 그뿐만 아니라 리비아에서도 전쟁을 일으켰으며, 심지어 이번에는 독자적으로 2014년 7월 체결된 이란과의 핵협정을 파기하기까지 했다(이란과의 핵 협정 타결은 최근 10여 년간 미국이 보여준 가장 현명한 순간으로 기록됐음에도 말이다). 지난 10월 트럼프는 현지에 주둔 중인 NATO 소속 유럽 ‘동맹국’과는 일절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쿠르드족을 터키군의 수중에 내주면서 트위터상에 너무나도 솔직한 메시지로 충격을 안겼다. “난 그들이 알아서 잘 해내길 바란다. 우린 1만 1,000km나 떨어져 있다!” 

오로지 자국의 이익밖에 모르는 이 변덕쟁이 봉건군주를 지금처럼 멋대로 날뛰도록 놔둔다면, 결국엔 유럽이 미국의 일개 속국으로 전락했음을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고 말 것이다. 유럽이 현 상황을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NATO를 떠나야 한다.(1) 

 

 

글·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Régis Debray, ‘La France doit quitter l'OTAN’(한국어판 제목: 나는 왜 프랑스 나토 복귀를 반대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3월호.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