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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을 향한 그들의 기록
‘하고 싶은 것’을 향한 그들의 기록
  • 송연주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29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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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언니전지현과 나>, <요요현상>

2020년 연말, 어김없이 이듬해의 소비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대를 규정하는 담론에 더해 이제는 ‘자본주의 키즈’라는 말까지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런 정의를 불편하게 바라보며 세대론과 청년팔이를 비판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보이는 ‘재현 거부’, 즉 ‘우리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말라!’라는 태도에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먹고 살 걱정에 골몰하는 청년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기성세대들은 결국 청년 세대에게 거짓 위로와 거짓 공감을 전하는 것이라며 냉소하는 청년들이 있다는 것이다.(1)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에 태어난 감독들이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와 <요요현상>의 개봉은 반갑다.

 

<내언니전지현과 나> 포스터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2019년 제작되어 2020년 12월 3일 극장 개봉했다. 박윤진 감독은 ‘내언니전지현’이라는 일랜시아 게임 속 자신의 캐릭터 이름과 실제 감독 자신인 ‘나’를 영화의 제목으로 나란히 세우고 영화에 직접 개입한다. 1999년 넥슨에서 

출시된 MMORPG 게임 일랜시아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얻었지만, 넥슨이 2008년 업데이트를 중지한 이후 12년 동안 방치됐다. 박윤진 감독은 ‘내언니전지현’이자 ‘나’라는 존재로 자신이 길드 마스터로 있는 ‘마님은돌쇠만쌀줘’의 길드원들을 인터뷰한다. 넥슨 측의 관리자가 부재해 유저들의 문의에도 답조차 없는 게임, 매크로는 필수이고, 버그까지 난무하는 게임. 그걸 아직도 하고 있는 1990년대생 길드원들을, 길드 마스터인 같은 세대 감독이 화면에 담는다. 

감독은 감독이기 이전에 게임으로 길드원들과 관계를 맺은 상태다. 영화에서 오프라인으로 길드원들과 실제로 만나 대화하는 장면과, 게임의 채팅 대화창을 번갈아 보여준다. 길드원들은 ‘내언니전지현’과 다큐멘터리 감독 박윤진을 동시에 대하는 것이 되고,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속내를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는다. 질문 또한 ‘내언니전지현’의 질문이자, 감독 박윤진의 질문이 된다. 영화 전반부는 길드원들이 ‘넥슨으로부터 버림받은 일랜시아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라면, 영화 후반부는 길드원들과 ‘내언니전지현’인 감독 자신이 ‘일랜시아를 지키려 행동’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일랜시아는 길드원들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와 현재의 대리만족을 동시에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자유도가 높고, 공들인 시간과 결과가 비례하고, 선택과 변경이 언제든 가능하며, 레벨보다 캐릭터의 능력이 중요하고, 눈앞에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 곳이다. 과도한 과금정책이 없으며 경쟁과 보상 구조가 약해서 다른 게임에 비해 나름 평등한 세계다. 길드원들은 현실에서 불공정한 상황을 마주하고,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는 일들을 겪는다. 

꿈, 취업, 결혼 등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현실에서 감내하며 살아가지만 일랜시아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편하게 보일 수 있고, 서로 진심으로 위로하며 힐링하고, 작은 성취이지만 자존감도 얻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일랜시아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인간적인 관계도 지속하기를 원한다. 흔히들 생각하듯 가상 세계에서의 만남이기에 이들이 소통하는 정체성 역시 가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가상 세계에서도 실제 세계와 같은 모습으로 만나 서로 연대했다. 이들 세대가 일랜시아를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영화에 등장하는 넥슨 전 개발총괄 담당은 게임 산업이 경쟁을 돈으로 팔면서 재앙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유저들을 영원한 쳇바퀴에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경쟁과 자본으로부터 멀어져 사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게임 일랜시아는 자연스럽게 넥슨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고, 비록 관리를 받지는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일랜시아가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일랜시아에도 고급 매크로 소유자가 많아지면서 유저들이 다수 이탈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누군가는 아이템을 획득하고, 누군가는 아이템 발굴에 실패하고, 누구는 손으로 사냥을 하고,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사냥이 되는 게임세상은 현실의 불공정한 세상을 그대로 비춰준다. ‘밸런스가 무너지는 곳에서 더 이상은 살기 어렵다’는 각성이 일면서 넥슨의 관리가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관리자가 개입하면 편하게 썼던 매크로를 돌리지 못할까 봐 갈등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갈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명 ‘팅 버그’ 사건으로 일랜시아의 관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낀 ‘내언니전지현’은 길드원들과 함께 넥슨을 직접 찾아가 변화를 만들

기 위해 행동한다. 이 영화의 강력한 울림은 여기서 나온다. ‘내언니전지현’은 일랜시아 초기 개발자에게 선물로 액자를 전한다. 개발자의 설정대로 움직이는 NPC를 모아 넣은 액자였다. 20년 전 개발자로서 열정을 바쳐 만든 세상이지만, 어느새 잊고 지낸 일랜시아를 다시 보는 그의 표정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일랜시아라는 세상에서의 관계성을 오프라인으로 연결시켰다. 인간관계부터 일랜시아를 향한 노력까지. 오프라인 대면 모임과 게임 화면이 동일한 세계로 느껴지고, 비록 각자의 방에서 모니터가 꺼지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향한 이들의 연대는 계속되리라. 이렇듯 영화는 감독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일랜시아 유저들의 이야기이고, 감독의 주관적 시선과 길드원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이 공존한다. 결국,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성을 확보한 감독의 시선이 보편적 울림을 끌어낸다.

 

<요요현상> 포스터

<요요현상>은 2019년 제작하고 2021년 1월 14일 극장 개봉했다. 1980년대 중후반생들인 공연예술팀 ‘요요현상’의 다섯 멤버 문현웅, 곽동건, 윤종기, 이동훈, 이대열이 7년 동안 각자의 인생에서 ‘요요’를 어떻게 해나가는지를 1986년생 고두현 감독이 카메라에 담았다. 고두현 감독은 출연자 곽동건의 친구이지만, 최대한 영화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존재한다. 연대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와 달리, 이 영화는 등장인물 각자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선택하고, 또 추구하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요요’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1990년대 초반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와 환타의 요요 광고로 시작한다. 요요는 경연대회가 있고, 챔피언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있다. 고난도 기술을 쓰는 참가자에게 감탄하고 그 기술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며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윤종기를 제외한 네 맴버가 2011년 참가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윤종기 홀로 참여한 텔레비전 경연 프로그램 <코갓텔>은 그들이 요요를 통해 빛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생업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이들의 현재는 달라진다. 요요를 개인 사업으로 키우는 멤버, 재능의 한계를 깨닫고 취업을 선택하며 요요를 내려놓는 멤버, 취업했지만 여전히 요요를 하고 싶어서 일과 요요를 병행하는 멤버, 그리고 요요를 직업으로 선택해 요요 공연만을 하는 멤버, 다른 공연예술과 요요를 함께하려는 멤버까지 다섯 사람은 서로 다른 삶을 산다. 

이들 중 딜레마가 가장 큰 인물은, 취업 후에도 요요 공연에 대한 열망만은 간직하고 있는 멤버다. 그는 직장인의 바쁜 삶 속에서 요요를 할 수 없기에, 꿈에서나마 요요 거리공연을 한다. 

요요만 해서 먹고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카모플라쥬 패턴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출근하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에게서는 요요만 하고 살아가는 친구에 대한 질투도 어린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요요’가 있지 않나요? 영화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면, 요요는 ‘하고 싶은 것’을 의미한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선택, ‘하고 싶은 것’이 ‘일’이 됐을 때 느끼는 부담감과 스트레스, ‘하고 싶은 것’이 ‘일’이 됐지만 그 일로는 돈을 벌지 못하는 안타까움, ‘하고 싶은 것’을 지키며 목표를 이룬 삶, ‘하고 싶은 것’과 ‘일’을 병행하며 균형을 찾는 삶, ‘일’하느라 ‘하고 싶은 것’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는 삶까지. 감독은 그렇게 요요를 ‘하고 싶어 하는’ 다섯 멤버의 변화를 카메라 뒤 관찰자의 시선으로 따뜻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선택’에 대해 말한다.

<내언니전지현과 나>와 <요요현상>은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자기 세대의 모습과 자본주의 하에서 그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을 진중하게 담은 기록이다. 이를 통해 ‘세대’의 구별 짓기를 내려놓고, 그들이 왜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지 볼 수 있는, 나름대로 가치 있는 영화다.  

 

 

글‧송연주

세종대와 정화예대에서 영화와 대중예술을 강의하고, 역사 영화의 미드포인트를 연구했다. 


(1) 김주환. (2020). 숙명적 비극의 시대, 청년들의 절대적 고통 감정과 희생자-신 되기의 탈정치. 사회와이론, (36), 4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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