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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현대사를 끌어안은 시인 이산하 : 침묵을 거부하는 용기와 『악의 평범성』
[김시아의 문화톡톡] 현대사를 끌어안은 시인 이산하 : 침묵을 거부하는 용기와 『악의 평범성』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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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 물었다. 그 담대한 용기가 어디서 나오냐고? 시인은 어릴 적 저수지에 빠져서 죽을뻔한 이야기를 들려준 후, 가진 게 없어서 용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물고문당한 이야기를 했고, 물에 관한 트라우마를 이야기 했다.

3월 1일, 김이듬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 이듬에서 ‘일파만파’ 낭독회를 가졌다. 22년 만에 세 번째 시집 『악의 평범성』을 출간한 이산하 시인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참석자들 중 유난히 시인들이 많았다. 그래선지 이산하 시인은 시인들의 시인으로 보였다. 평범하지 않은 제목 ‘악의 평범성’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에서 열린 유대인 대학살을 집행한 나치 전범 아이히만 재판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적인 개념을 차용했다. 시인은 유대인도 아닌데 왜 홀로코스트 1.5세대처럼 시를 쓸까? 홀로코스트 1세대 프리모 레비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번역 출간한 영향일까? 아니 그것은 제주도 4.3항쟁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일산 책방 이듬에서 독자들과 낭독회를 하고 있는 이산하 시인 (2021.3.1)
일산 책방 이듬에서 독자들과 낭독회를 하고 있는 이산하 시인 (2021.3.1)

이산하 시인은 1987년 3월에 제주도 4·3사건을 다룬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녹두 서평』 창간호에 발표하면서 지명수배를 받고 구속된다. 서사시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다. 검열과 자기검열의 나라에서 당돌하게 서사시가 학살의 역사를 폭로한 것이다.

‘제주 4·3’을 다룬 그림책 『나무 도장』을 펴낸 권윤덕 작가는 2013년 당시만 해도 그의 작업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반세기가 지나도 4·3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빨갱이로 몰던 시절이 있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데 책을 준비하면서 국가 정보기관보다 더 무서웠던 게 귀신이었다고 한다. 제주 곳곳이 학살터였기에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취재를 할 때 점점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나의 작은 화판』, 2020 : 271~273)

1947년 봄. 삼일절 기념 가두시위에서 한 어린이가 기마 경관이 탄 말에 치이는데 이를 항의하는 군중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여섯 명이 죽고 여덟 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도청과 행정기관, 학교와 우체국 직원 등 4만여 명이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미군정은 제주도 도민의 2/3를 좌익 또는 동조자로 규정한다. 이어 1948년 미군정에 의해 불법화된 남로당과 민주주의 민족전선은 전국적 파업을 주도하고 일부는 경찰과 출동하며(2·7사건), 제주 4·3 항쟁, 여수·순천 항쟁으로 이어진다. 제주 4·3 아카이브에 따르면 인명피해가 2만5천~3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 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서시> 중에서, 『한라산』)

 

학살의 장소인지도 모른 채,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도 여행에서 나는 웃고 떠든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학살의 장소를 기억하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애도한 시인은 시를 써서 보안법을 위반한 자로 몰리고 구속되었다가, 수잔 손탁의 구명운동 덕분에 풀려난다.

시인은 제주도가 존재하는 게 기적이라고 말한다.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썼던 방법이 유대인이 유대인을 죽이도록 했는데 그 똑같은 방법으로 제주도에서 제주도민이 제주도민을 죽이도록 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치 부역자들이 미국 CIA로 이동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미군정이 통치할 때 똑같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수법들로 민간이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스실 없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제주 4·3학살의 서사시 「한라산」을 ‘폭탄’이라고 불렀다.

내가 최종원고를 친구 신형식 편집장한테 넘길 때

서로 농담처럼 주고받았던 얘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야, 이 폭탄 내 모가지 걸고 만든 거니 잘 지켜라.”

“야, 그거 터지면 내 모가지라고 붙어 있겠나. 그라고.....”

“그라고..... 뭐?”

“종철이도 죽었다.....”

“.....”

친구의 말에 숨이 탁 막히며 고개가 꺾였다.

2주 전 물고문으로 죽은 박종철은 우리의 고교 후배였다.

( 「폭탄」 중에서,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인은 다음에 올 고통을 생각하며 물고문을 견디었다고 한다. 후배 박종철의 죽음과 무고하게 학살당한 제주도민을 애도하며 비인간적인 고문을 견뎠으리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학살의 역사를 배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비인간적인 민간인 학살을 명령하고 침묵을 강요했다. 부끄러운 침묵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악’을 먹고 자란다. 2020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의 악이 얼마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 증명해 주었다.

아픈 역사 속에서 시인의 언어에서 '희망'이란 단어는 없다. 그러나 위로는 있다.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그 꽃들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의 모든 꽃은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 「나에게 묻는다」 중에서, 『악의 평범성』)

 

시집 『악의 평범성』은 비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고해성사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은 어릴 적 달걀을 몰래 먹은 댓가로 ‘알을 낳지 못하는 닭’으로 누명 쓴 닭이 죽어 삼계탕이 된 것을 목격한 이후, 물에 빠진 닭을 먹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산하 시인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청년의 모습이다. “늘 의심하라!”라고 당부하는 시인은 ‘내 영혼이 얼마나 낡았는가?’ 늘 되돌아보라고 조언한다. 가진 것이 없어 용감한 시인은 가진 것이 없어 고마운 사람들을 시에서 호명한다. “시 한 줄로나마 깊이 새겨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 죽기 전에 수배 4년 동안 숨겨 준 은인 119명을 「버킷리스트」에서 부른다. 고마워 울며 부른다.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의 이해’를 가르치며 그림책 <아델라이드>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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