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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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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7.30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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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중국이 된 서구 국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방역 규제보다 코로나 백신의 효용성(이론의 여지없이 명백하다) 홍보에 주력할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반대 결정을 내렸다. 틈만 나면 ‘반자유주의’를 열렬히 비판해온 마크롱 대통령, 정작 시민의 자유를 만만한 ‘조절변수’로 취급하고 있다.

마크롱은 시급한 현안(의료·안전·전쟁) 해결을 위해서라면 시민의 자유를 언제나 제쳐둬도 무방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염 위험이 없음을 보증하는 신원증명서 없이는 기차를 타지도, 테라스에서 음식을 주문하지도, 영화관에 출입하지도 못하는 별세상으로 진입했다. 물론 별세상은 다른 곳에도 이미 존재한다. 바로 중국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보안요원들이 열화상카메라가 장착된 헬멧과 연결된 증강현실 안경을 끼고, 군중 속에서 열이 나는 사람들을 잡아내고 있다.(1) 과연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일까?

여하튼 우리는 순식간에 디지털 세상이 우리의 일상을 침투해, 우리의 내밀한 사생활과 직장생활, 사람들과의 교류, 정치적 성향 등을 모조리 추적하도록 기꺼이 허용하고 있다. 휴대폰 해킹 한 번에 내 정보가 나를 겨눌 수도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에드워드 스노든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핵무기로부터 안전을 지킬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생화학무기로부터는요? 세상에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산업과 분야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분야들이 지나치게 번성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정작 마크롱 대통령은 서둘러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모든 대면 서비스를, 온갖 행정사이트·로봇·음성메시지·QR코드·어플리케이션의 밀림으로 대체하며 정반대 현실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티켓 예약이나 온라인 주문을 원하는 사람은 신용카드와 동시에 휴대폰 번호, 심지어 신원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 저 머나먼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는 익명의 시민으로서 자유롭게 기차를 타거나, 카메라에 찍힐 위험 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거닐거나, 출입 흔적을 남길 위험이 없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이미 유아 납치나 테러 공격, 전염병, 더 나아가 전쟁이 존재했다.

선제적 예방조치에는 결국 한계가 없을는지 모른다. 가령 식당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은 과연 안전할까? 혹 그가 중동을 여행하거나, 광적인 교리에 감화되거나, 금지된 집회에 참여하거나, 아나키즘 서점을 번질나게 드나드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 물론 식사 도중 폭탄이 터지거나, 기관총 세례를 받거나, 얼굴을 가격당할 위험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 머지않아 모든 통행자가 경찰의 허가를 얻거나 전과가 깨끗함을 보증하는 ‘시민 증명서’를 일일이 제시해야만 하는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증명서를 제시한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시민 자유 박물관에 입장해 평화롭게 실내를 누빌 수 있으리라. 어느새 ‘프랑스공화국의 잃어버린 영토’가 돼버린 시민 자유의 역사를 관람하기 위해.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Félix Tréguer, ‘Urgence sanitaire, réponse sécuritaire 기술만능주의는 만병통치약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2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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