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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K-드라마가 꿈꾸는 K-정치(Politics) - <고요의 바다>를 중심으로
[김민정의 문화톡톡] K-드라마가 꿈꾸는 K-정치(Politics) - <고요의 바다>를 중심으로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2.07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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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요의 바다 포스터
드라마 고요의 바다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물 부족에 시달리게 된 지구인들이 물을 대신할 월수를 찾아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로 떠났다가 겪게 되는 일들을 다룬 SF드라마다. 전 세계 물 부족 현상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지구 위기라는 설정 자체만 두고 봤을 때 미국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를 포함한 영미권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것이어서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고요의 바다>에서 주목할 것은 세계 공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우린 다음 세대에게 뭘 줄 수 있을까.” 연구기지로 떠난 한국인 대원이 내뱉는 이 대사는 이제 한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 속의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고요의 바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헐리우드식 영웅 서사와는 다른 K-정치론을 제시한다. 같은 문제 상황이라도 그것에 대처하는 태도가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는 완전히 다르다.

 

수직적 수혜에서 수평적 공유로

 

<고요의 바다>에서 한국은 월수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달에 있는 연구기지로 정예 요원을 파견한다. 극 중 월수는 전 세계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키로 등장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위험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월수는 약간의 월수를 가지고 엄청난 물을 생산해낼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인간과 접촉해서 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때까지 증식한다는 것이다. , 월수는 인간의 몸을 숙주 삼아 증식하는 물이다.

월수의 양면성을 알게 된 드라마 속 한국인 대원들은 고민에 빠진다. 월수를 확보하면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고, 그 힘을 담보 삼아 한국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평등한 관계의 공유나 나눔이 아니라 수직적 수혜의 형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한국 드라마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고요의 바다>에서 한국인 대원들은 월수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달에 있는 연구기지에 파견되는데, 그 연구기지의 이름이 바로 발해. 2075년의 미래 한국인은 왜 지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발해로 떠난 것일까. 발해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지점을 차지한다. 한국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며 줄곧 하나의 국가 정체성을 통해 결속력을 다져왔다. 이에 반해 발해는 고려인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힘을 합해 세운 다민족국가다. 여러 민족이 가진 장점을 모두 흡수하여 문화적으로 매우 풍요로웠다고 전해진다.

<고요의 바다>에서 연구기지에 파견된 한국인 대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월수 샘플을 확보하지만 한국이 아닌 국제 우주연구소로 발길을 돌린다. 철저한 중립 지역에서 연구해야만 누군가 월수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간주하고 상호 존중과 협력을 통해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가 간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인류 전체는 생사를 함께 논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초국경 공생사회로 나아가는 글로벌 시대에서 발해는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오늘날의 다문화사회와 세계시민 의식에 기반한 미래사회를 지탱해주는 희망의 증거로서 작동한다.

 

성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고요의 바다>는 세계를 대표해 지구를 구원하는 헐리우드 히어로들과 다른 행보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영웅 출현을 예고한다. 주인공의 국적을 단순히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꾼 것만이 아니다. 을에서 갑으로 권력의 단순한 이동은 갑과 을로 구성된 불합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해체하여 억압과 핍박의 악순환을 끊고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또 하나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또 다른 을로 소외시키지 않고 모두가 중심이 되고 갑이 되는 세상, 그리하여 갑과 을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각자 독립적인 의식과 목소리를 지닌 주체가 되는 다성성(多聲性)의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고요의 바다>에서 다성성은 목적이 아닌 과정이라는 점이다. 극 중 월수 샘플 확보를 위해 발해 연구기지에 파견된 한국인 대원들은 과거 이곳에서 인간이 월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당시 파견된 연구원들이 집단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또한 뒤늦게 밝혀진다. <고요의 바다>는 월수 샘플 확보 이후에 펼쳐질 스펙터클한 영웅담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을 역으로 찬찬히 되짚으며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 여부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동안 헐리우드 영화와 영미권 드라마는 전지전능한 해결사 히어로를 등장시켜 결과 중심의 영웅 서사를 선보였다. 하지만 <고요의 바다>K-드라마 특유의 비판의식을 내세워 과정 중심의 성장 서사를 전개해나간다.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장의 계기가 다른 국가와의 경쟁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적 갈등, 즉 내 안의 자아 성찰과 자기비판이라는 점이다.

잔혹한 생체실험과 폭력적 사건 은폐는 기득권을 가진 사회지도층에 의한 문제 상황이다. 하지만 그들을 사회지도층으로 규정한 것은 갑과 을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의 분류법에 따른 것이다. 물 부족이 세계 공통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계급상 갑이기 이전에 세계 속 한국인으로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한다. , 문제 인물은 또 하나의 나 자신이다. 문제의 시작은 바로 라는 인식의 단계까지 <고요의 바다>는 집요하게 끌고간다.

 

세상의 변화에서 나의 변화로

 

안으로 향하는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과 함께 <고요의 바다>로부터 시작되는 자정(自淨)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극 중 연구기지에 파견된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 박사(배두나 분)는 발해 연구기지 책임연구원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탐사 요원으로 발탁된다. 금지된 생체실험을 진행한 언니의 과오를 폭로하지 못할 거라는 상부의 판단에 의한 것인데, 이 모든 예상을 뒤집으며 송지안 박사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것을 바로잡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한윤재 탐사 대장(공유 분)도 마찬가지다. 그는 등급에 따라 일상생활의 모든 레벨이 결정되는 계급사회에서 딸의 치료를 위해 월수 확보 미션에 참여한다. 딸을 향한 그의 애절한 마음은 월수의 한국행을 압박하는 상부에 의해 악용되는데, 그럼에도 그는 월수 샘플을 한국이 아닌 국제 우주연구소로 가져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한다.

극 중 송지안 박사와 한윤재 대장은 자매애와 부성애 즉, 그동안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가족애를 통해 드라마 초반 갈등 상황을 감정적으로 해소하고 봉합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처럼 그려진다. 특히 그들의 가슴 아픈 가족사는 연구기지 안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은폐하려는 한국의 사회지도층에 의해 유독 강조된다. 이러한 두 사람의 전사(前史)는 최근 K-드라마의 특장점으로 주목받는 ‘K-신파와 연결되어 그들의 공적 선택을 사적 영역으로 끌고 와 정서적 면죄부를 부여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가족이 아닌 인류, 가족애가 아닌 인류애를 선택한다.

휴머니즘과 신파는 정서적인 감흥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그 결과의 영향력이 사적인가 공적인가에 따라 상반된 성향을 띈다. 무엇보다 <고요의 바다>에 나타난 휴머니즘은 자기비판의 결과로서 도출된 공공성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영웅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된 헐리우드식 휴머니즘과 차별된다. 두 사람의 선택은 세상의 변화는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전 지구적인 반성문인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출사표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영역에서 뜨거운 심장으로 세상을 바꾸던 다크 히어로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비전을 구상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그 새로운 반환점을 한국 드라마 안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요의 바다>K-드라마가 꿈꾸는 K-정치(Politics)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담아낸 웰메이드 작품이다.

 

다성성의 세계로의 긴 여정

 

<고요의 바다>는 넷플릭스 공개 당시 달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한국 최초의 SF 드라마라는 타이틀 덕분에 큰 화제를 모으며 넷플릭스 세계 랭킹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외신들이 한국의 실패작이라는 혹평을 연이어 쏟아내며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국내에서는 느린 전개에 대한 불만과 함께 <오징어 게임>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에 대한 비교가 유독 많았다.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성공 이후 모든 기준점이 <오징어 게임>이 되었다. 과연 <오징어 게임>은 좋은 드라마일까. 만약 좋은 드라마라면 왜 그런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에 관한 하나의 인식 틀로서 공통의 드라마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드라마론을 갖고 자기만의 시선으로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드라마론이 있고 백 개의 드라마 향유 방식이 존재하는 것, 그렇게 서로 다름이 존중받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다성적 세계가 드라마 안팎으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의 모습이다

<오징어 게임>이 심플한 이야기의 힘으로 빠른 전개를 특장점으로 내세운다면 <고요의 바다>는 그와 대척점에서 정교한 사유와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느림의 미학을 설파한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K-드라마가 갑과 을의 수직적 세계관 안에서 을의 혁명을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꾼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빈부 격차 심화와 계급 갈등 악화와 맞물려 전 세계적인 공감과 호응을 끌어내며 한국 드라마를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세계 정치 지형에서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차지한 위치와 맞물려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고요의 바다>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 정상에 오른, 성공 그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을에 의한 세계 전복이 이루어진 그 새로운 세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세계 변혁에 성공한 은 과연 어떤 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갑과 을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고요의 바다>는 서사 전략의 일환으로 느림을 선택함으로써 드라마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다성성의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꼼꼼하게 성찰하길 요구한다.

<고요의 바다>의 목표는 빠른 문제해결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그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데 있다. 시즌 2가 제작되어야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이후 K-드라마가 다루어야 할 주제는 더 이상 그 이전과 동일할 수 없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느림의 태도 또한 필요하다.

 

 

글·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2020) 드라마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논픽션<한현민의 블랙스웨그>(2018), 소설집 <홍보용 소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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