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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헤어질 결심>: 사랑의 부조리, 그 완성의 가도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헤어질 결심>: 사랑의 부조리, 그 완성의 가도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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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작품을 연이어 감상하다보면 몇 가지 특징을 알아챌 수 있다. ‘바다’에서 끝이 나고 신체 어딘가가(특히 손이나 손가락이 부러지거나 잘린다는 것) 절단된다는 것. 이것이 그의 영화 전부를 해석할 수 있는 코드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조건을 기반으로 은유의 범위가 정해진다고 볼 수는 있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잘린다는 것은 오대수의 혀가 잘리는 것과 호응관계를 이룬다거나 바다의 수평선은 허허벌판의 연장선이라고 말하는 것 등이 그 예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그의 영화를 ‘부조리’라고 정의내리는 많은 글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부인할 수 없게 된 이른바 그가 창조한 부조리의 끝에서 우리는 왜 바다의 풍경과 신체 가학을 마주하게 되는가?

 

이유를 찾기에 앞서 일단 <헤어질 결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차이점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자. 그 변화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 건 바다와 손가락이 허공과 눈으로 전이되었다는 것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마지막은 바다의 풍경이 자리하지만 몸 어딘가가 절단되는 광경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눈 특히 죽은 자의 눈과 그 눈이 보는 허공이 차지한다. 더군다나 잔잔함이 강조되었던 바다에서 끊임없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전환된 것은 잔잔한 바다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죽은 자의 눈이 보고 있는 불가능한 광경이 대표하는 부조리의 문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박찬욱이 감독을 맡은 열한 번째 극영화인 <헤어질 결심>에서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의 진실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져버리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진실은 허무하게도 ‘사랑’이다. 그래서 마치 순애보를 향한 감독의 순수함이 불현 듯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사랑은 사랑이 놓여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의 찬탈로써 발휘된다. 이른바 수상한 이방인인 서래(탕웨이)가 해준(박해일)의 사랑을 점유하기 위해 정안(이정현)의 자리를 뺏으려는 서사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해준의 입장에서 서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중년의 공허한 빈자리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안착한 이방인이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급기야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알아보다 못해 처음에는 어색하게 들렸던 ‘마침내’라는 어감을 결정적으로 살려내기에 이른다. 기다림에 끝에 마주하게 된 내가 원하던 사람이 마침내...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의 과정 속에서 서래는 해준을 부지불식간에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만든다. 영화 중반에 이르면 서래의 이 노력은 두 가지 층위에서 설명될 수 있게 되는데, 하나는 자기은폐고 다른 하나는 소유욕이다. 해준의 집요한 수사 덕분에 오히려 서래는 그간 쌓아놓은 자신의 허무를 자각한다, 마침내. 그 허무는 남편 살해의 동기를 숨기려 할 때(자기은폐) 그리고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라고 녹음할 때(소유욕) 강화된다. 그런 서래의 곁에는 알게 모르게 항상 해준이 있었다. 그리고 앞의 의미를 합쳐 마침내 서래는 바닷가 해변을 파고 들어가 몸을 숨긴 이후부터 해준의 심장을 영원히 찬탈한다. 해준은 서래를 집요하게 찾아내려 할 것이고 그의 마음은 늘 서래를 향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준은 서래의 남자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서래가 자기를 은폐하는 순간이 서래가 해준을 소유하게 되는 순간이 된다. 그러므로 해준은 서래를 위해서라도 사라진 그녀를 발견하지 말아야 하지만 동시에 서래는 해준에게 만큼은 영원히 찾아내어야 할 목적이 된다.

 

이제 앞서 말한 잔잔한 바다와 신체 절단으로 돌아가 보자. 서래는 해준이 아니라 해준의 사랑(심장)을 원한다. 거기에 어떤 논리적 수식이 붙기는 어렵다. 그 사랑의 찰나는 ‘마침내’라는 그 말 한마디로 오로지 설명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바다는 서래에게 자기은폐의 영원한 장소가 된다. 그러면 끝없이 파도치는 바다의 등장이 설명된다. 서래를 발견하지 못하게 만드는 미지의 마력인 파도는 자기은폐를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이제 신체 절단. 은유적이기는 하지만 서래는 해준의 심장을 원한다고 했다. 심장을 얻기 위해서 서래는 해준의 심장 그 자체가 되어야만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해준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기를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서래는 자신이 영원히 사라지면 간단하게 해결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렇게 서래는 해준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 이것은 해변 가에 자신을 묻어버리는 일로 실현되고 동시에 신체 절단을 은유한다.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서래의 자기은폐는 그렇게 해준의 심장과 일치되는 계기가 된다. 신체 절단은 혀에서 손가락으로, 이제는 기어이 심장으로 그렇게 옮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은폐(바다)와 신체 절단(생매장)이 부조리한 세계를 시적 세계(순애보적 사랑)로 표현하는데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과의 만남 이전부터 모든 일의 목적을 시적인 세계와는 상이하게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치밀한 살해계획) 박찬욱 감독은 서래를 통해 시적인 영상 경험(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사랑)을 이성적 논리(범죄의 해결 과정)로 이해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헤어질 결심>은 ‘사랑은 은폐다.’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사랑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 은폐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 거기에 남는 것은 마침내 이르게 되는 서로의 선택뿐이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서래의 이 말은 언뜻 순박하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마침내 마주한 사랑 앞에서 내 스스로 결심한 은폐의 선택을 책임지려는 의지의 문장이다. 그래. 헤어질 결심으로 서래는 마침내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부조리는 완성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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