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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한 약간의 변명
그를 위한 약간의 변명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11.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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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갓 방송쟁이들이 감히 그에게 시건방을 떨다니? 

조선시대로 치면 그는 왕이 아닌가? 더욱이 하늘의 이치를 통달했다는 천공이 점지한 왕이 바로 그 아닌가? 온갖 정치 잡배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것은 천공의 조언대로 스스로 왕의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제 그는 그가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왕 같은 존재다. 그가 뉴욕에서 바이든을 만난 뒤 무슨 욕설을 하든 뭐가 문제인가? 대국의 노인 대통령을 만나 답답했던 마음을 풀려고, 측근들에게 무심결에 내뱉은 비속어를 자막까지 넣어 방송한 MBC의 무도함은 그로서는 차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MBC 기자는 ‘가짜뉴스’로 동맹 관계를 이간질하려고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고, 탑승 배제는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이었다! 언론학자들은 대통령이 먼저 ‘가짜뉴스’라는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해 비판 보도를 막으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나, 이는 그의 절대 권위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언론이 아무리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가 ‘가짜’라고 말하면 언론중재위나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가짜’인 것이다. MBC 기자 같은 비판적 기자들이 “이 새끼들/바이든/쪽팔려서” 보도가 오보, 즉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실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이는 감히 존엄한 권력에 대한 철부지 같은 생트집일 뿐이다. 그가 말하면 그게 곧 진실이고 사실인 것을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언론학자들은 MBC의 “악의적인 행태”에 대해, 사실이 틀렸더라도 공적 목적인 언론 보도가 악의성이 없으면 처벌받지 않으며, 선진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그의 한결같은 품성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한평생 검(檢)에 의지해 살아온 그에게 감히 ‘명예훼손’이라니? 도무지 용납이 안될 일이다! 

그건 그렇고, 그가 말한 “동맹 관계를 이간질했다”라는 표현이 과하다고? 과거 정권에 느슨해진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미국식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많이 역설해왔는데, MBC는 고약하게도 그런 그의 충정을 무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결론적으로 MBC의 보도는 그에 대한 도전이자, 미국과 맺은 혈맹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악질 행위나 다름없다. 공영방송이 오로지 국가만을 위한 그의 충정을 “악의적으로” 왜곡하다니, 이건 ‘쪽 팔린’ 일일 것이다. 그런 방송을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대통령 전용기에 배제한 그에 대해 언론학자들이 언론 보도 피해에 대한 법적 조치를 밟지 않고 작위적인 판단으로 언론자유를 명시한 헌법을 위배했다고 지적하다니, 이는 그의 권력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책상물림 서생들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가 곧 법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새파란 MBC 기자가 그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가 악의적이냐”라고 항의하다니, 무엄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슬리퍼권에 사는 게 유행이라지만, 슬리퍼를 신고서 그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지금까지 그의 도어스테핑에서나, 회견 시에 그에게 알량한 기자정신을 발휘해 감히 뭘 캐묻는 기자들은 없었다. 그의 장모의 은행 잔고 위조, 불법 대출 및 투기, 그의 아내의 논문 표절, 도이치 모터스 주가 조작, 그리고 그와 그의 아내에 대한 천공 도사의 밀착 관련설 등에 대해 파고드는 건방진 기자는 없었다. 예의를 갖춰 멋지게 차려입은 기자들은 그가 말하는 대로 꼬박꼬박 ‘받아쓰기’를 열심히 해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대의를 잘 살려주지 않았던가?

MBC의 무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박사 논문이라는 게 지도교수와 심사위원, 당사자 등 기껏 4~5명이 은밀하게 통과 여부를 결정하고, 실제로 수많은 논문들이 남의 걸 베끼고, 베낀 걸 또 베끼지 않는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논문다운 논문을 쓴 교수가 몇 명이나 될까? 더욱이 그의 아내가 쓴 ‘박사 논문’을 대학 측에서 ‘별문제 없다’라고 판정했는데도 그를 반대하는 교수들이 현미경으로 이 잡듯이 논문을 뒤지고, MBC가 이를 까발린 것은 결코 ‘국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가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은, 국민을 진짜 사랑하는 그로서는 고뇌에 찬 우국의 결단으로 보인다. 바로 5공때라면 당장에 안가로 끌고 가서,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물고문과 통닭 고문을 했겠지만, 그래도 그는 참을성 있게 대응했다. 

사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자가 아닌가? 오로지 현란한 검(檢) 춤으로 이 자리에 오른 그는 검을 모르면서 감히 검 개혁에 나선 법무장관을 거의 멸문(滅門)시켰고, 자신의 수하였던 일개 검사를 법무장관으로 끌어올려 역시 소문대로 절대 권위의 위력을 보여줬다. 처음엔 반대였다가, 뒤늦게나마 ‘참사 국정조사’를 기꺼이 받겠다고 자세를 바꾼 것은 국민 70%가 찬성하는 압도적 여론을 따른 것으로, 이는 그가 늘 강조하는 ‘국민과의 소통’ 정신에 따른 것이다. 

비록 지지율이 아직 20%대이지만, 대장동의 핵심인사들이 줄줄이 증언을 완전히 뒤집어 최고 정적이자 야당 총수인 이재명에 불리한 발언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 그에게 희소식이 들릴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검사 출신인 그를 보좌하는 대통령실은 물론이고 각 부처와 국가정보원, 심지어 금융감독원까지 그와 친한 검사들로 등용한 것은 평생 검사동일체를 몸소 실천해온 그 나름의 깊은 이유에서다. 그의 처와 장모의 스캔들을 비롯, 그의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대장동 세력과 법조인들의 유착 의혹을 수사한다고? 유검무죄, 무검유죄이지 않을까? 억울하면 출세해라, 검사하라는 말도 있잖은가? 오늘도 TV 뉴스에는 젠틀한 기자들이 행여 대통령 전용기에서 배제될까 싶어 받아쓰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몇 달 전 도어스테핑 때 “대통령님, 힘내세요!”라고 외친 이들도 있지 않을까. 그런 ‘예의 바른’ 기자들이 그의 눈에 들면, 정치인이나 대변인으로 발탁되는 거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2월호에는 ‘먼 나라 이야기’지만, 검찰 공화국으로 지탄받는 우리의 실정을 연상케 하는 ‘프랑스 검사의 자의적 결정’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2022년은 그가 권좌에 있어 무엇보다도 다사다난했다. 2023년에는 그와 더불어, 모두가 행복하길 기원한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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