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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맨 인 블랙>, 인간이 인간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맨 인 블랙>, 인간이 인간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1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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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말로 하는 설명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영화를 만날 때가 있다. 올해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프런티어 대상을 받은 왕빙의 <맨 인 블랙(黑衣人)>이 그런 영화다.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고 피비린내 나는 이 영화를 어떤 말로 이야기해야 할까?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손꼽히는 왕빙은 <맨 인 블랙>을 2022년 5월 27일, 프랑스 파리 10구 샤펠가 37번지에 있는 극장 떼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에서 단 하루 만에 촬영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2017년 10월 24일 이후,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87살의 중국 작곡가 왕시린(王西麟)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16분 정도가 될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이라면 주인공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렵다.

영화는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백발의 노인이 힘겹게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는 무대 한 가운데에 도착한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허리를 90도 각도로 꺾고 두 팔을 뒤로 쭉 뻗고 다리를 구부린다. 그 불편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지 못한 그는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면 누군가 위협이라도 한 것처럼, 힘겹게 다시 일어나 그 동작을 반복한다. 동작과 동작 사이에 그는 절규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는 교향곡이 울려 퍼지기도 한다. 13분 동안 이어지는 이 퍼포먼스는 그의 울부짖는듯한 눈물로 막을 내린다. 그런 다음 그가 극장 의자에 앉아있을 때 다시 교향곡이 들려온다. 다음 장면에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짐작하게 된다. 3분 넘게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 비로소 그는 말하기 시작하고 관객은 이제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벌거벗은 채 카메라 앞에 선 왕시린은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 

왕시린은 1949년, 13살에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에 음악과 만나게 되었는데, 당의 정책과 마찰을 일으켜 우익분자로 몰리게 되면서 몸서리치는 수난이 시작된다. 특히 1966년에 개시된 문화혁명 동안, 그는 “생각을 멈추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평생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을 겪는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가 맨몸으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때 겪은 일의 일부로서, 일명 ‘제트기 자세’라고 하는 것이다. 우익분자의 사상개조를 위한 자리에 계급투쟁의 적으로 색출된 반동분자들은 계절에 관계 없이 벌거벗은 채 몇 시간이고 ‘제트기 자세’를 하며 ‘자아비판’을 해야만 했다. 아무리 오래 그렇게 해도 결코 용서받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끔찍한 박해는 1969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 그의 형제들은 미치거나 굶주려서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목격한 악몽 같은 장면에 대한 진술, “눈이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립니다. 피가 땅 위에서 소리 없이 흘러내리죠. 눈과 피, 모든 움직임이 침묵 속에 머뭅니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요.” 그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교향곡을 통해 들려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교향곡에 대해, “예술가로서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는 없었기에 동화를 팔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그릴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왕시린이 증언할 때, 그가 작곡한 곡들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비명을 전달하듯 때로는 목소리를 압도하며 울려 퍼진다.

그러므로 왕시린의 퍼포먼스에서 시작해 음악을 거쳐 언어로 나아간 구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펼쳐진 벌거벗은 노인의 기이한 동작,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같은 인간의 형상, 끔찍한 폭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억하고 있는 너덜너덜한 인간의 육체는 상징화할 수 없는 실재이다. 왕빙은 실재를 제시한 다음 언어보다 훨씬 추상적인 음악으로 그것을 상징화하고 나서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왕시린이 겪은 그 사건은 결코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왕시린은 자신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몸으로, 언어로 그리고 음악을 통해 전달한다
왕시린은 자신이 겪은 참혹한 경험을 몸으로, 언어로 그리고 음악을 통해 전달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관객이 보는 모든 것은 극장의 공간에서 전개된다. 따라서 왕시린은 자신이 겪은 사건을 퍼포먼스로, 노래로, 피아노 연주로, 말로, 일종의 일인극을 펼쳤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논디제틱 사운드로 왕시린이 작곡한 교향곡이 부가될 때, 그 소리는 사건을 겪었을 당시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음률이면서 증언하는 그의 또 다른 목소리로 기능한다.

“붉은색에 병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어요. 꿈에서도 당 지도자의 초상화를 본다면 부들부들 떨 거예요. 86살의 나이인데, 지금도 아내가 옆에서 자야 해요. 20대에 받았던 사상개조 과정은 내 평생 악몽을 안겨줬어요.” 아마도 음악/예술이 없었다면, 그는 스승들과 동료들처럼 미쳐버렸거나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증언을 마친 왕시린은 격렬하게 요동친 마음의 고통을 가라앉히려는 듯 뒷짐을 지고 무대에서 천천히 걷는다(아울러 관객에게도 숨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 벌거벗은 채 카메라 앞에 서기로 결정했을 때, 어쩌면 그는 그 사건을 세상에 증언할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이때 카메라는 부감으로 그의 모습을 촬영한다. 4분 이상 그를 지켜보던 카메라는 다음 장면에서 어두컴컴한 극장의 맨 위층에서부터 수직으로 하강하며 1층으로 내려온다. 그런 다음 오른편으로 패닝하며 빈 객석을 계속 훑고 지나간다. 그 끝에 왕시린이 관객처럼 앉아있고, 카메라는 움직임을 멈춘다. 카메라의 시선이 지나갔던 텅 빈 객석은 광기의 시간 속에서 살해되거나 자살하거나 미쳐버리거나, 견디기 힘든 수난을 당한 희생자들을 위한 자리이다. 왕시린은 참혹한 역사의 증인이자 목격자로서, 그들과 함께 방금 무대에서 펼쳐진 이미지와 사운드의 휘몰아쳤던 흔적을 지켜본다. 왕시린이 걷는 동안 그리고 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교향곡이 계속 울려 퍼진다. 텅 빈 객석이 아니라 유령들로 꽉 찬 그 공간에,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음악은 그들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한 줄기 위안이 되었으리라.

P.S. :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왕시린의 말처럼, 우리들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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