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건우에게는 왜 K드라마 남주의 판타지가 없는 것일까?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건우에게는 왜 K드라마 남주의 판타지가 없는 것일까?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27 1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년 11월 6일, <연합뉴스>에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기사를 소개하는, ‘르몽드 “K드라마 남주, 세련·로맨틱…새로운 남성상 재설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프랑스 남자들은 마초적이고 자기 관리도 잘 안 하고 깨끗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K드라마를 통해 접하게 된 한국 남자들은 다정하고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세심한 면모를 보인다.” 많은 프랑스 여성들이 그런 한국 남성의 이미지에 매료되어 한국 남성과 사귀고 싶어 한다.

해외의 여성들이 K드라마에서 본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금수저 또는 은수저 출신이거나 의사 또는 변호사 같은 잘 나가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인 여유뿐만 아니라 풍부한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배경에 장착한 채, 출중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여자 주인공들에게 어필한다. 그러므로 판타지가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만일 K드라마 남주에게 매혹된 외국 여성들이 K독립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유지영 감독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등장하는 건우는 K드라마 남주의 덕목을 많이 갖추고 있다. 건우는 동거 중인 소설가 재이가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돈도 열심히 벌고 집안일도 도맡아 하는 다정하고 세심한 파트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두 번째 소설을 탈고하고 늦게 일어난 재이를 위해 건우는 커피를 내리고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게다가 건우는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매우 성실한 인물이다. 여기까지는 다정하고 세심한 K드라마 남주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건우는 그들과 달리 부잣집 아들이 아니며, 학벌은 지방 대학 출신이고, 직업은 소규모 영어학원의 강사이다. 이 차이는 사실 한국 사회에서 작은 게 아니라 결정적인 차이다.

 

건우는 다정하고 세심한 연인이다
건우는 다정하고 세심한 연인이다

재이가 예상하지 못한 임신을 하자 건우는 재이와 태어날 아이를 잘 돌보려면 수입이 더 늘어야하기 때문에 영어학원 원장이 제의한 학원 분점의 원장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여기서 학원 원장이 386에서 486을 지나 586에 이른, 소위 ‘86세대’ 또는 ‘민주화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 원장은 “대학교 때 운동을 좀 했다. 졸업하고 도피하듯 유학 갔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돌아왔더니 집에서 입시학원을 내주었다. 가끔 대학 시절을 생각하지만, 생존이 우선이니까 이렇게 사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건우에게 “자네는 나와 달리 자존심도 세고 욕심도 있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니, 나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지 말고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 자네라면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너무나 따뜻하게 격려한다.

 

학원 원장은 건우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학원 원장은 건우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부드럽고 나이스하게 보이는 원장은 그러나 수습 강사의 임금을 착취하고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강사를 해고하는 악덕 기업주의 행태를 보인다. 게다가 건우에게 한 약속과는 달리 해외 유학파를 영입해 학원 분점의 원장 자리에 앉히려고 한다. 이를 눈치챈 건우가 따져 묻자 원장은 처음에는 학원 운영을 위해서라며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얼버무리고 조삼모사식으로 회유하려 한다. 건우가 넘어가지 않고 저항하자, 그의 지방대 학벌을 들먹이며 한껏 조롱하고 비웃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재이와 아이를 지키는 게 꿈”이라며 쉬지 않고 ‘노~력’ 했던 건우는 ‘586세대’의 무자비한 횡포 앞에서 결국 무너져 내린다.

이 학원 원장의 행태가 MZ세대가 바라본 ‘86세대’의 단면은 아닐까? 그들은 젊었을 때 학생 운동을 했던 경력을 내세우며 정의의 사도 같은 이미지를 각인시킨 다음, 뒤에서는 젊은 세대의 뒤통수를 치며 온갖 양아치 같은 짓을 서슴지 않는 타락한 세대가 되고 만 것일까? 건우가 원장에게 상해를 입히는 폭력 행위는 기성세대에 대한 MZ세대의 분노의 표현처럼 보인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건우의 노력은 결국 한계에 이른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건우의 노력은 결국 한계에 이른다

건우는 감옥에 가고, 재이가 면회를 온다. 건우는 재이에게 “이제 너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으니 오지 말라”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무엇이 미안한 것일까? 건우는 고작 30대 초중반 정도의 나이일 텐데, “감옥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좋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때 그는 100년 이상 산 사람처럼 완전히 소진된 상태로 매우 피로해 보인다. 아마도 극강의 나르시시스트이자 이기주의자인 재이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진 건우를 다시는 면회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아기는 재이가 이물질로 여기며 증오하다 결국 사산아가 되었기에 건우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의 방점은 여주인공 재이에게 있지만, 건우의 상황은 많은 MZ세대의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인 거 같아 더 주목하게 된다. 건우가 원하는 삶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사랑하는 이들이 건강하게 잘 살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저 소박한 삶을 꿈꾸었을 뿐인데, 금수저 또는 은수저 출신이 아니어서, 한국 사회에서 알아주는 스펙이 없어서,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제목에서 ‘피투성이 연인’은 결국 건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만일 건우가 감옥에서 나와 다시 먹고살기 위해 살아간다면, 특별한 욕망이 없는 것 같은 기홍(이정홍 감독이 연출한 <괴인>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닐까?

 

사진 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