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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팬텀 스레드>, 로맨스 게임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팬텀 스레드>, 로맨스 게임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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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진지한 영화 사이에 휴식을 취하듯 다소 가벼운 영화를 번갈아 연출해왔다. <팬텀 스레드>(2017)는 <마스터>(2012)보다는 가볍고,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 보다는 진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레이놀즈 우드콕(다니엘 데이 루이스)과 알마(빅키 크리엡스)가 ‘사랑의 감정’과 ‘관계의 주도권’을 놓고 밀고 당기는 팽팽한 게임을 펼치는 가운데, 아름다운 드레스가 제작되는 과정과 완성품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레이놀즈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레이놀즈는 유럽의 왕족과 귀족, 상류층 인사들을 고객으로 둔 영국 패션계의 거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히치콕 영화 <싸이코>(1960)의 노만 베이츠처럼, 죽은 어머니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상태다. 늘 엄마 생각을 하고, 엄마 꿈도 자주 꾸고, 엄마 냄새를 맡을 뿐만 아니라, 엄마의 머리칼을 옷의 솔기에 넣어두고 언제나 엄마의 숨결을 느낀다. 그는 “엄마가 가까이에서 부르는 것 같고 지켜보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엄마에게 바느질을 배운 그는 16살 때 거의 혼자 힘으로 어머니의 두 번째 결혼식을 위한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엄마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는데, 아들이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 속의 엄마는 이상하게도 너무나 슬퍼 보인다. 레이놀즈는 웨딩드레스를 만들면서, 새 아버지의 자리에 자신이 서 있어야 한다는 오이디푸스의 욕망을 품었던 것 같다. 그 대가로 처녀들이 웨딩드레스를 만지면 결혼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레이놀즈에게 적용되었는지 애인을 여럿 두기는 했으나 사랑한 적은 없었으며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또는 못했다). 본인은 독신으로 살 운명이라고 말하지만(속으로는 저주받았다고 믿는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결혼하는 건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레이놀즈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아들을 지켜본다
레이놀즈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언제 어디서나 아들을 지켜본다

어머니에 대한 금지된 욕망, 아들이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해 슬픈 신부가 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은 레이놀즈에게 헤어나기 어려운 죄책감을 안겨준다. 또 어찌 되었건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는 레이놀즈에게 나약한 모습을 절대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만든다. 여기에 죽은 엄마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은 죄책감을 더욱 강화한다. 엄마를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는 강박 속에서 레이놀즈는 자신의 일에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시도 쉬지 못한 채 일에 매달린다. 그는 일과 연관되지 않은 어떤 일도 하지 못하는 ‘일 중독자’로 살아간다.

어느 날, 작업에 활력을 찾으려고 시골집을 찾아가는 길에 들른 레스토랑에서, 레이놀즈는 종업원으로 일하는 알마를 만나게 된다. 레이놀즈가 데이트 신청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한 쪽지를 내미는 알마는 호시탐탐 신분 상승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레이놀즈는 누나 시릴과 함께 작업을 하는 런던의 집으로 알마를 데려온다. 시릴은 레이놀즈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서, 훌륭한 조력자이자 동업자이다. 시릴은 레이놀즈가 작업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고, 귀찮은 일들은 적당히 잘 처리해준다. 따라서 레이놀즈와 알마 그리고 시릴의 조합은 히치콕의 <레베카>(1940)를 참고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히치콕과 우드콕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히치콕의 아내 이름은 알마이다. 또 알마가 “나는 나 자신이 별로였는데, 레이놀즈의 작품 속에서의 나는 완벽하다”고 할 때,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서, 앨스터가 완벽한 여성 매들린을 만들어낸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레이놀즈는 아플 때 알마의 간호를 받아들인다
레이놀즈는 아플 때 알마의 간호를 받아들인다

<레베카>에서, 여주인공은 결혼과 함께 남편 맥심을 따라 으리으리한 저택 맨덜리에서 살게 된다. 맥심은 죽은 아내 레베카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고, 레베카를 숭배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은 여주인공을 안주인으로 인정하기는커녕 무시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힌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죽은 레베카를 물리치고 맥심의 아내 자리에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팬텀 스레드>에서, 시릴은 처음에는 댄버스의 역할을 할 것 같았는데, 점점 알마에게 호감을 보인다. 따라서 <레베카>의 여주인공이 댄버스와 대결했다면, 알마는 레이놀즈와 대결하게 된다. 그런데 레이놀즈의 아내가 아니라 엄마의 망령을 물리치게 될 때, 알마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엄마의 유령이 사라지자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청혼한다
엄마의 유령이 사라지자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청혼한다

일 중독 상태에 강한 남자여야 하는 레이놀즈는 기절할 정도로 아파야만 침대에 눕는다. 아플 때 레이놀즈는 이성의 작동이 멈추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아이 상태가 된 듯, 알마의 간호를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알마는 레이놀즈를 차지할 방법을 찾아낸다. 독버섯으로 레이놀즈를 아프게 만들고, 엄마처럼 돌보는 것이다. 그러자 언제나 레이놀즈를 지켜보고 있었던 엄마의 유령이 사라진다. 알마가 엄마의 유령이 떠난 자리를 대신할 때, 마침내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레이놀즈의 이성이 활성화되면 알마를 밀어내려 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악화된다. 결국 알마는 레이놀즈를 영원히 곁에 붙잡아두기 위해, 독버섯 요리를 만든다. 레이놀즈는 그것을 알고 먹는다. 그렇게 해야 아프다는 구실로 이성의 저항 없이 강한 남자의 면모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알마의 돌봄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알마가 레이놀즈의 아내이자 엄마가 됨으로써, 비로소 두 사람 사이에는 기나긴 안식이 찾아오게 된다.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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