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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니엘이 보는 것 <추락의 해부>
[정우성의 시네마 크리티크] 다니엘이 보는 것 <추락의 해부>
  • 정우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5.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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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의 죽음 전날에 있었던 부부간의 다툼을 녹음한 파일이 재생되고 난 후, 재판장에서는 이 파일을 둘러싼 공방이 오고 간다. 시각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폭력의 상황. 산드라(산드라 휠러)의 외도와 표절의 문제, 죽은 이가 생전에 경험했던 분노와 아들에게 느끼는 죄책감, 소설가로서의 무력감, 아내를 향한 열등감 등이 그 소재가 된다. 이때 영화는 누구의 시선인지 알 수 없는 오버 더 숄더의 시점 쇼트와 언론의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줌과 같은 형식을 오가며, 검사 측도 피고인인 산드라 측도 아닌 모호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예외적으로 부부의 자식인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의 시점 쇼트를 제외하곤 말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특별히 도드라지게 힘을 주는 스타일 없이 극적 긴장감과 안정감 있는 연출을 기반으로 한 <추락의 해부>에서 기억에 남는 쇼트 중 하나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씬에서 다니엘의 시점으로 보이는 오버 더 숄더 쇼트다. 영화 속에는 당연히 수많은 오버 더 숄더 쇼트가 등장한다. 이중 누군가의 시선인지 완전히 알 수 없는 비인칭 쇼트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점 전이나 후에 반드시 시선 주체의 얼굴 쇼트가 붙어 있다. 반면, 이 씬에서 다니엘의 오버 더 숄더에는 그의 얼굴을 비추는 역쇼트가 부재한다. 정확히는 다니엘의 오버 더 숄더 시점 쇼트에 연결된 정면 얼굴 쇼트가 씬의 마지막에는 등장하지만, 그전까지 관객으로서 이상한 쇼트라고 느낄 정도로 다니엘의 정면 얼굴 쇼트가 없는 시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시점 쇼트라고 언급했지만, 이것을 시력이 온전치 않아 청각 정보로만 판단해야 하는 다니엘의 특성을 반영한 연출이라 생각한다면, 보통의 시점 쇼트처럼 시선의 주체를 알려주는 쇼트가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씬에서 산드라의 관점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아들을 쳐다보는 시선을 연출한 것이 아니라, 볼 수 없음에도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의 시점으로 산드라를 바라보는 쇼트를 반복해서 등장시켜 존재감을 도드라지게 부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이상한 연출이 주는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면, 첫째 쇼트의 시각 구성이 인물들의 머리 틈 사이에 산드라를 배치하여 그녀가 처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둘째 시선의 대상이 되는 산드라가 시점의 주체를 종종 바라보기에, 재판을 진행하며 밝혀지는 부부간의 치부를 아들도 듣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불편한 감정을 담은 시선을 다니엘이 감지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셋째 부모의 과오와 속 마음을 듣는 아이의 심정을 표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니엘의 정면 얼굴 쇼트를 최대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이 그를 의식하게 만드는 묘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넷째 볼 수 없지만, 듣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을 연출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인물의 눈을 볼 수 있는 쇼트를 배제한 오버 더 숄더 형식을 활용했다. 다섯째 이 씬에서 하나의 중심점처럼 반복해서 등장하여, 재판 과정의 조연인 다니엘이 판사, 검사, 변호사, 산드라와 같은 존재감을 드러내게 만들며, 이 재판을 바라보는 관점의 주체는 검사 측도 산드라 측도 아닌 다니엘에게 속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즉 오버 더 숄더와 시점 주체의 얼굴이라는 쇼트/역쇼트의 관습적인 방식을 다니엘이 지닌 캐릭터의 특성에 맞춰 비틀어 만들어 낸 흥미롭고 탁월한 이 연출 방식은, <추락의 해부>에서 핵심 인물이 결국 사건 당사자인 산드라도 죽은 사뮈엘도 아닌 다니엘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앞서 묘사하고 설명했던 오버 더 숄더 쇼트와는 정반대로 다니엘의 얼굴만을 길게 보여주는 그의 첫 증언 장면에서부터 나타났던 것이었다. 쇼트/역쇼트로 이루어진 관습적이고 보편적인 연출 방식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드라진 이 장면은 다니엘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그가 답변하는 것보다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 오가는 공방으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이때 대화 주체인 검사와 변호사를 비추며 쇼트/역쇼트로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을 시선의 방향에 맞춰 트래킹으로 움직이며 길게 보여준다. 산드라나 법조인들, 증인들을 연출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니엘을 비추면서 그가 영화에서 특별한 대상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검사와 변호사 사이에서 어느 측도 아닌 상황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이후 제대로 증언하지 못하고, 시선의 대상이기만 했던 이 아이는 재판이 진행되며 시선의 주체가 되고, 마지막 재판에서는 완전히 이야기와 사건의 중심에 선다.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과 달리 <추락의 해부>는 사실과 진실, 인간의 주관성에 관해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또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중심인 장르물도 아니다. 죽은 사람을 해부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흉터들, 피와 뼈, 암 덩어리 혹은 병으로, 약물로, 시간으로 늙어가고 문드러진 내장의 모습들, 배설물들, 이제 사람이 아니라 시신일 뿐인 대상의 조각들처럼 <추락의 해부>는 평범한 삶 내부의 징그러운 핏덩이를 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것을 아내의 관점도 죽은 남편의 관점도 아닌 가장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아이의 관점에서 잔인하게 바라보게 한다. 여기서 사뮈엘을 산드라가 죽였는지, 그가 스스로 뛰어내렸는지, 사고인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영화의 핵심 감흥이 하나의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해석해서 나타나는 혼란스러움과 당혹감 같은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추락의 해부>에서 충돌하는 관점은 단순하다. 죽거나 이혼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문제도 품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부부 간의 다른 이해관계뿐이다. 대신 이러한 이해관계 충돌의 원인을 찾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사망 사건의 원인을 찾는 일보다 훨씬 복잡하다. 살해를 당했는지, 자살인지, 사고인지 명확한 진실이 있는 형사 사건보다 각자 다른 성격과 정체성을 지닌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문제가 켜켜이 쌓이면서 만든 관계의 충돌에는 진실도 명확한 해결책도 없다. 또한, 이 문제들은 대부분 매우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하여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것이기에 평범하고 보편적으로 누구나 겪을 만한 갈등이지만 그렇기에 지질하고 지난하고 징그럽다.

징그럽고 지난하고 지질한 가족과 삶의 모습을, 산드라의 말대로 아이답게 살아야 하고 어린아이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뮈엘의 말대로 어쩔 수 없으니 각오하고 마주하는 다니엘의 드라마가 <추락의 해부>의 핵심적인 내용이자 감흥이다. 우리 관객은 각자의 관점에서 양측을 다 이해하거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있지만, 법정에서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의 죄의식, 열등감, 슬픔 그리고 어머니의 외도와 냉담함, 분노를 듣게 되고 자신의 실명에서부터 이 모든 사건이 시작된 것만 같은 다니엘의 죄책감과 당혹감, 고통을 짐작하기 힘들다. 감독인 쥐스틴 트리에는 이러한 삶의 복잡함과 잔혹함을 영리하게 사실과 진실을 다루는 법정물과 소설의 창작 과정을 연결하며 영화의 풍부한 레이어를 만든다. 산만하거나 과시적으로 이야기나 알레고리를 다루는 것이 아닌, 한 아이의 고통스러운 성장 드라마의 간결한 틀 안으로 모든 것을 수렴시키면서 우아하고 능숙한 솜씨로 그것을 해낸다.

 

 

글·정우성
2021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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