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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텔라>: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다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스텔라>: 가해자는 가해자일 뿐이다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4.05.20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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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킬리안 리드호프 감독이 연출한 <스텔라>는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다. 1946년 소련 군사법원과 1957년 모아빗 지방법원의 실제 재판 기록에 기초한 이야기다’라는 정보가 타이틀 신에 명시되면서 시작한다. ‘금발의 유령’이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로 널리 알려진 실존 인물 스텔라 골드슐락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라틴어로 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스텔라(폴라 비어)는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브로드웨이 스타를 열망한다. 만약 그녀가 조금 일찍 또는 늦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원하는 대로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40년대 독일인데다, 더욱 불행하게도 그녀는 유대인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반짝거리는 자막으로 명시되는 시기는 1940년 8월, 스텔라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열심히 공연을 준비한다.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위협이 점점 다가오는 가운데, 스텔라와 밴드 멤버들은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다. 브로드웨이의 매니저가 ‘미국에 오면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건네자, 그들은 미국행이 눈앞의 현실이 된 듯 환희에 가득 찬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1943년 2월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스텔라는 유대인(Jude)이라는 글자가 박힌 노란 별을 가슴에 달고 작업복을 입은 채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그녀는 어떡해서든 상황을 호전시켜보려고 악전고투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오는 상황은 지옥 아래 또 다른 지옥이 계속 펼쳐질 뿐이다.

 

스텔라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스타가 되는 꿈에 부푼다
스텔라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스타가 되는 꿈에 부푼다

스텔라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유대인 롤프와 어울려 신분증 위조 브로커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게 체포된다. 게슈타포는 신분증 위조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스텔라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극악무도한 고문을 자행한다. 결국 스텔라는 부모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나치의 비밀 요원이 되어 베를린에 숨어있는 유대인을 잡아내는 일을 하게 된다. 그녀는 아주 유능하고 악랄하게 예전에 함께 했던 밴드 멤버들의 신뢰까지 이용해 차례로 체포되도록 하고 심지어 어린아이가 있는 지인까지 검거되도록 만든다. 1943년 9월부터 종전까지, 스텔라는 수백 명의 동포를 게슈타포에게 넘겼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스텔라는 롤프와 함께 동포들을 게슈타포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스텔라는 롤프와 함께 동포들을 게슈타포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한다

1957년 베를린, 스텔라는 법정에 선다. 법정을 가득 메운 유대인들이 죽은 가족의 사진을 흔들며 그녀의 죄를 고발할 때, 피해자들이 증언할 때, 스텔라는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비웃는 표정을 하거나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처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부인하며 어떡하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한다. 그녀가 울먹이는 순간은 밴드 멤버의 리더에게 ‘친구로 여겼는데 등 돌리지 말라’며 유리한 증언을 종용할 때뿐이다. 판사는 살인 방조와 감금 혐의를 인정해 스텔라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지만, 러시아에서 10년 동안 구금되었다는 이유로 가중처벌을 하지 않는다며 석방하는 판결을 한다. 감옥에 가는 줄 알고 눈물을 터트렸던 스텔라는 ‘이제 자유’라는 변호인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는 충격으로 항의하는 법정의 유대인 동포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텔라는 너무나 뻔뻔스러운 태도로 무죄를 주장한다
스텔라는 너무나 뻔뻔스러운 태도로 무죄를 주장한다

스텔라는 결코 자신이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고, 자신은 러시아 수용소에서 10년을 보냈으며 결핵도 앓고 있는데 감옥까지 간다면 너무 억울할 뿐이다. 그러므로 스텔라는 오히려 자신이 삶을 잃어버린 피해자라고 굳게 믿는다. 그녀는 롤프를 탓하고, 자신을 고소한 유대인들을 비난한다. 예쁜 금발 여성이 돋보이는 게 싫었던 유대인들은 그녀를 시기하고 미워하다가 군중심리에 휩쓸려 법정에 서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죄를 저질렀어도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죄를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1984년 프라이부르크, 옷차림이나 집안에 놓인 액자들을 보면 스텔라는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 같았던 스텔라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린다. 이어지는 자막에 따르면, ‘그녀가 1984년에 자살을 시도했고, 1994년에 결국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스텔라는 왜 자살을 한 것일까? 베란다에서 투신하기 전의 장면에서, 스텔라는 나치의 만행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본다. 이 장면과 투신 장면을 연결하면, 그녀가 더 이상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투신 바로 전의 장면에서, 그녀는 공들여 화장을 한다. 화장을 마친 그녀는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영화 첫 장면에서, 그녀는 반짝거리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한 다음 거울을 바라보다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모습에 매혹된 듯 거울에 대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던, 허영심 가득한 젊고 아름다운 스텔라(이 영화에서 빛을 발하는 건 폴라 비어의 연기다)의 모습이 거울을 보는 늙은 스텔라 앞에 나타난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했던 이유는 가수로 성공해 스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목숨은 건졌지만 꿈은 이루지 못한 채 속절없이 늙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과 투신 장면을 연결하면, 그녀는 현실을 견디게 했던 나르시시즘에 기반한 환상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절망 끝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자막을 통해 ‘국가 전체가 가해자일 때, 스텔라의 비극이 일어났다’면서, 스텔라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스텔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누구도 ‘나라면 차라리 죽음 선택했을 거’라든지,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스텔라처럼 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스텔라처럼 되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법정에서 스텔라는 명백한 가해자이며 유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다하우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막스 만하이머의 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당신 책임이 아니지만, 그 일이 반복되지 않게 노력하는 건 당신 책임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그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의 만행 뉴스를 접하면서 피해자들 앞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스텔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얻은 교훈은 진정 무엇인지 묻고 싶다.

 

 

사진 출처: 네이버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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