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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별거 문화, 이란의 경우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지구촌 별거 문화, 이란의 경우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정재형 |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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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포스터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아스가 파라디(Asghar Farhadi, 1972~)는 이란 태생으로 그의 소재와 주제는 이란의 중산층이 겪는 정신적 고통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이 작품에도 그대로 녹아있어 그의 특성을 설명하는 핵심이 된다. 영화는 아내 씨민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재판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혼 법정. 씨민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자는 것이고, 나데르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두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씨민과 나데르는 이혼을 원하지만 판사는 사소한 문제라서 이혼이 안된다고 말한다. 첫 장면에서부터 이 영화는 독특한 발상 전환을 보여준다. 두 인물이 카메라, 즉 관객을 보고 말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극 중 인물이 정면을 보는 것은 금기다. 왜냐하면 작중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건 관객이 극에 포함되는 거고, 관객이 극을 구경한다는 개념을 벗어난다. 관습적으로 영화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단절된 현실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물이 관객에게 말을 걸듯 정면을 보고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사실은 판사에게 말한 거다. 극의 설정은 자연스럽게 걸쳐 있다. 관객은 인물이 자신에게 말을 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중의 감정을 느낀다. 인물이 마치 자신에게 호소하듯 하는 느낌 말이다. 감독은 그런 관객의 감정을 노린다. 이 장면은 이혼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 그 사연을 한번 들어달라는 듯 사실적으로 호소하는 기법인 것이다. 관객은 흥미를 갖고 진지하게 이들의 이혼 사유를 경청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스틸컷 1

이혼 재판 속에 이란 가정의 민낯이 드러나 

터무니없는 재판이란 재미있는 소재지만, 이란의 현실을 반영한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란의 자국 사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영화의 발단이 되는 미국 이민은 왜 등장한 것일까? 이란의 봉건성과 전통 때문이다. 서구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중산층들에게 분명 갈등이 되는 장애 요소임엔 분명하다. 이슬람 관습은 국가적으로 강력하게 신봉되고 있으면서 이란국민의 일상을 규제한다. 이란은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신성 국가로서 기독교로 대변되는 서방세계와 마찰을 빚는다. 1979년 군주제가 종식되고 입헌 공화제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대통령 위에 종교의 최고지도자가 있어 정치를 좌우하고, 의회 역시 정치와 종교 의회 둘이 공존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서구와 교역을 해야 하지만 이란의 보수정치권은 나라가 서구화되거나 전통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런 가운데 중산층의 갈등은 심해져 간다. 2005년 이후 초강경 이슬람 근본주의자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서구와의 갈등은 더 심해졌다. 영화는 이러한 이란의 상황을 반영한다. 서구화된 생활습관은 점점 더 개방화되지만 시민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건 이슬람 사상이며, 국가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통치된다. 

네 명의 인물을 살펴보면 이란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먼저 아내 씨민은 서구화된 이란 여성을 나타낸다. 이란은 이슬람 사상에 의해 특히 여성차별이 심하다. 여자로서 삶을 억압하는 이란에서 떠나 자유로운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할 만하다. 이란이 여자에게 잘해준 게 없기 때문이다. 딸의 교육 때문에 이민 간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도 반은 포함된다. 남편 나데르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점에서 전통주의를 반영한다. 또한 강력한 가부장주의를 내세운다. 가장 큰 문제는 가정부 라지에다. 그녀는 이슬람주의를 강력히 신봉한다. 거짓말을 하면 아이에게 해가 된다는 믿음을 철저히 준수한다. 서구세계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봉건적이다. 마지막으로 고등학생 딸 테르메 입장이다. 테르메는 이란의 미래 세대를 상징한다. 테르메의 의견은 솔직히 없다. 기성세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다. 그녀가 원하는 건 부모가 이혼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씨민은 별수 없이 친정에 가 있기로 한다. 출국까지는 40일 남았다. 집에는 고등학생인 딸 테르메가 있다. 가정부 지원자 라지에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씨민이 설득해서 일하게 한다. 다음 날 라지에는 할아버지가 방뇨한 사실을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서는 이 집의 가정부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 다시 그만두려고 한다. 그녀는 나데르에게 대신 남편을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나온다. 라지에의 남편 사마디는 간병인을 하기로 했는데, 빚쟁이들에게 잡혀가는 바람에 다시 라지에가 오게 된다. 할아버지는 치매라서 그냥 나가버리기도 하고, 라지에는 임신해서 힘들지만 할아버지를 찿으러 길거리로 나간다. 어느 날 나데르가 들어와 보니 집엔 아무도 없고, 할아버지가 손목이 묶인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데르는 할아버지를 간신히 진정시킨다. 이어 밖에서 라지에가 들어온다. 화가 난 나데르는 그녀를 쫓아낸다. 게다가 돈까지 훔쳤다고 몰아댄다. 라지에는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울면서 애걸하지만 화가 난 나데르는 그녀를 밀쳐낸다. 다음 날 씨민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라지에가 병원에서 유산했다고 알려준다. 그 시누이가 노발대발한다는 것이다. 씨민과 나데르는 문병을 갔고, 남편 사마디를 만난다. 사마디는 다혈질에다 거친 성격이다. 사마디는 거의 죽일 듯 나데르를 몰아부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스틸컷 2

외면 속의 침묵, 그리고 분리 

재판이 벌어진다. 나데르는 생명을 죽인 살인죄로 기소될 판이다. 대신 그는 라지에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한다. 판사는 당시 집에 와있던 가정교사가 라지에의 임신 사실을 들었다고 하니 그녀의 증언을 청취하자고 한다. 가정교사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반대로 증언한다. 나데르는 라지에를 할아버지 감금으로 맞고소한다. 테르메는 나데르에게 엄마 씨민과 화해하라고 부탁한다. 나데르는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않고 테르메는 실망한다. 테르메는 나데르에게 임신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자백을 듣는다. 테르메는 나데르에 대해 더욱 실망한다. 나데르는 그게 다 너를 위해서였다고 변명한다. 판사는 테르메에게 아버지가 임신 사실을 알고도 거짓말 했는지 확인했다. 딸은 아버지는 몰랐다고 판사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으로 혼자 눈물을 흘린다. 표면적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씨민은 나데르의 보석금을 치르고 남편이 살인죄로 구속되는 것을 일단 막는다. 이어 사마디와 돈으로 합의를 하고자 한다. 그러나 라지에를 통해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된다. 라지에는 나데르와 일이 있기 수일 전에 유산한 것 같다는 것이다. 치매 할아버지를 찿으러 길거리로 나섰다가 할아버지 앞으로 오는 차를 막아섰고, 그때 가볍게 부딪쳤다는 것. 라지에는 결국 합의금을 받지 않기로 한다. 이슬람의 율법에서 부당하게 돈을 받으면 화를 입는다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다시 이혼 법정. 씨민과 나데르는 딸의 양육권으로 재판을 한다. 판사는 테르메에게 묻는다. 누구에게 갈 거냐? 한참 후 테르메는 결정했다고 하면서 말을 못한다. 판사는 부부를 퇴정시킨다. 테르메는 눈물을 흘린다. 복도에 따로 앉아있는 씨민과 나데르. 서로를 외면하고 침묵 속에 있다. 마지막 장면은 관객이 이들의 분리된 모습을 지켜보도록 구성되었다. 제목 ‘분리(seperation)’란 말 그대로 분리되어 있다. 처음엔 나란히 앉아 합일된 채 관객에게 호소했지만, 마지막엔 분리된 모습으로 그들의 문제가 진행 중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미장센을 통해 이란 중산층 부부의 팽팽한 대립을 느끼게 한다. 이란이 처한 문제는 현실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란 말이다.  

 

 

글·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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