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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초국적 조건들과 내셔널리즘의 역학
BTS의 초국적 조건들과 내셔널리즘의 역학
  • 이혜진 |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 승인 2020.10.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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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무대 사진 (출처 : W KOREA)

유년기의 BTS, 그 가능성의 중심

BTS의 신곡 <Dynamite>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차지하고 천문학적인 유튜브 조회 수도 연일 경신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빌보드 역사상 핫100 차트 1위로 데뷔한 가수는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온, 에미넴 등의 히트곡 43개에 불과한데, 컴백만 했다 하면 신기록과 최초기록을 갈아 치우는 BTS의 행보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제 데뷔 7년 차를 맞이한 7인조 보이그룹 BTS가 소속돼 있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역시 SM, YG, JYP 등 빅3 연예기획사의 영업이익을 이미 넘어섰다. 곧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의 인수가 끝나면 업계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한다.

힙합을 메인으로 내세우며 등장한 BTS의 멤버들은 데뷔 당시 17~22세로, 평균 연령 19세에 불과했다. 데뷔 초 다소 촌스럽고 심지어 장난스러운 느낌까지 주는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명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 ‘방시혁이 탄생시킨 소년단’이냐는 조롱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아이돌 그룹이 감히(?) 언더그라운드 음악인 힙합을 메인으로 했다는 이유로 힙합씬에서는 영혼을 판 변절자라는 의미를 담아 ‘힙합돌(Hip hop+Idol)’이라고 부르며 강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한국 드라마가 한물가고 K-POP이 한류의 뉴웨이브를 선도하던 2013년 야심차게 데뷔했지만, 우후죽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저 그런 중소 아이돌 그룹들이 그렇듯이 BTS 역시 지상파 방송 출연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매일 연습실과 합숙소를 오가며 춤과 노래 연습으로 지쳐가던 멤버들이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방법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연습생 시절부터 BTS 멤버들은 직접 작사와 랩 메이킹, 안무, 사운드 트랙 등 다방면에 참여하며 실력과 자부심을 키워나갔는데, 이 점이 바로 저 무수한 아이돌 그룹과의 차별 지점이라는 사실을 데뷔 때부터 표 나게 내세웠다. 1960년대 영국의 비틀즈가 데뷔 직전까지 독일 함부르크의 술집들을 돌며 기록적인 라이브 연주를 통해 실력을 키워갔듯, BTS가 발표하는 곡들마다 연신 자체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것은,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BTS는 데뷔 때부터 사회적 억압과 편견에 저항하고 10대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지켜가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그래서 첫 앨범의 콘셉트를 청소년들의 삶과 사랑, 꿈과 이상을 정직한 언어와 생생한 감성으로 표현하면서 그야말로 1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발했다. 가령 학교 시리즈 3부작인 <2 COOL 4 SKOOL>, <O!RUL8,2?(Oh! Are you late, too?)>, <SKOOL LUV AFFAIR>는 한국 청소년들의 찌들고 고단한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더 늦기 전에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1990년대 미국 힙합의 강한 비트를 재현하면서 힙합 그룹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는 열의를 보여줬다. 

일견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이 작은 삶의 코드들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열광하는 데는 지금까지 이 청년들의 목소리에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의 반증인 것일까. 

 

<Black Lives Matter> (출처 : Colorlines)

초국적 대변자 : 뮤터리처와 Black Lives Matter

BTS의 곡은 고루한 기성세대들의 사고방식을 향해 비난과 야유를 퍼붓는 한편, 그런 기성의 가치관 때문에 넘어질 것 같으면 더 세게 밟으라고, 그리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럴 자격이 없다며 청년들을 향해 훈계를 가하기도 한다. 그 덕분에 ‘훈계돌’ 또는 ‘잔소리돌’이라는 이색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BTS의 독자성은 초국적 고전 작품을 앨범의 콘셉트로 취했다는 점에 있다.

세간에서는 이를 음악(Music)과 문학(Literature)의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뮤터리처(Muterature)’라는 신조어로도 불리는데, 가령 2016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앨범 <WINGS>는 곡의 구성과 뮤직비디오까지 모두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1919)에 등장하는 오브제와 모티프를 따왔다. 또한 앨범 <LOVE YOURSELF> 시리즈는 자신의 퍼스널리티를 능동적으로 발달시켜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 에리히 프롬의 저서 『사랑의 기술』(1956)을 모티프로 취했다. 2019년 발매한 앨범 <MAP OF THE SOUL: PERSONA>는 칼 구스타프 융 심리학 전문가인 머리 스타인의 저서 『융의 영혼의 지도(Jung’s Map of the Soul)』(1998)에 등장하는 자아와 페르소나의 개념에서 영감을 얻었고, 앨범 <화양연화: Young Forever>(2016)의 타이틀곡인 <불타오르네>의 뮤직비디오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Wish You Were Here>(1975)의 재킷을 오마주했다. 

또한 BTS의 멤버 RM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2009)를 읽고 “희망이 있는 곳엔 시련이 있다”는 문장에 영감을 받아 <바다>를 만들었는데, 이 문장은 이 곡의 후렴구가 돼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어슐러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린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티프를 따온 <봄날>의 뮤직비디오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콘셉트로 한 <피땀눈물>의 뮤직비디오다. 이 곡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는 청년들의 영혼과 사랑, 성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BTS의 앨범들은 갑자기 고전 작품들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역주행 팬덤을 일으키면서 ‘청년들에게 고전을 읽게 한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선사했다.

BTS가 초국적 메시지를 자신의 스토리텔링으로 선취해간 행보는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기폭제가 되자, 여기에 편승해 BTS는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라며 공식 트위터에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달아 전 세계를 향해 인종차별반대운동을 지지했다. 

이런 BTS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K-POP 팬들 역시 이들과의 연대를 꾀했는데, 그 무렵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경찰이 “아이워치 댈러스(iWatch Dallas) 앱을 통해 불법시위 영상을 제보해달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K-POP 팬들은 K-POP 가수들의 사진과 영상으로 해당 앱에 잔뜩 도배를 해서 경찰을 무력화시키기는 데 동참했다. 이 K-POP 팬들에게 화답하기 위해 소녀시대 출신의 티파니 영, 박재범, 2NE1 출신의 씨엘, f(x)의 엠버 등이 여기에 가세해 자신의 SNS에 시위를 지지하는 등 연대의 움직임을 확대해갔다.

젊은 K-POP 팬들의 저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월 19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대통령 재선을 위한 정치행사를 위해 오클라호마 주 털사(Tulsa)의 BOK 센터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추모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한 보건 당국의 우려를 무시하고 기어코 현장 유세를 밀어붙인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위해 자신에게 표를 던져줄 백인 보수 지지층을 확고히 해두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야심은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다. 트럼프 캠프는 이미 100만 명 이상이 유세행사에 참가신청을 했다고 호언장담하며 입장하지 못할 청중들을 대비해 야외무대까지 준비해 뒀으나,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고작 6,200명 남짓한 지지자들이었다. 예상과 달리 스타디움의 1/3이 채워지지 않자 트럼프 캠프는 서둘러 야외무대를 철거했다. 

이날의 흥행 참패의 원인에 대해 트럼프 대선 캠프의 대변인은 과격한 흑인인권 시위대의 탓으로 돌렸지만,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CNN은 “틱톡 10대와 케이팝 덕후들이 유세를 침몰시켰다”, “케이팝 열성팬들의 성공적인 경선 사보타주”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유인즉 인터넷과 SNS에 익숙한 10대 청소년들과 K-POP 팬들이 미성년자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부모의 이름으로 입장권 수만 장을 신청해놓고, 의도적으로 유세현장에 가지 않는 ‘노쇼 시위(No show protest)’를 벌인 것이다. 

이 사태에 대해 트럼프는 매우 격분했다고 전해지며,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은 자신의 SNS에 ‘틱톡 10대’들을 응원함과 동시에 “케이팝 연합군들, 우리는 정의를 위한 너희들의 싸움도 감사하게 생각해”라고 포스팅했다. BTS와 K-POP의 이런 초국적 행보는 전 세계의 청소년들을 향해 그동안 성취해내지 못했던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산시키고 있음을 보여줬다. 

 

<중국과 미국> (출처 : 파이낸셜투데이)

내셔널리즘의 곤혹과 방법론적 미래

이렇게 초국적인 문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BTS가 지난 10월 7일 미국의 한미친선 비영리재단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수여한 밴 플리트상(Van Fleet Award)에 대한 수상소감이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자 한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중국 팬들의 ‘탈덕현상’을 문제 삼았다. 일부 기업은 BTS가 출연한 광고를 중국어 사이트에서 내리기도 했다. 

BTS의 리더 RM이 “우리는 양국(our two nations)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발언 중 ‘한국과 미국’을 의미하는 ‘양국’이라는 표현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18만 중국 군인들의 희생을 무시한 것이라는 게 중국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环球时报)>도 “한국전쟁에 대한 일방적인 태도가 중국 네티즌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이것은 역사를 부정한 것이다”라며 BTS가 “미국 청중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동안 성취해왔던 BTS의 초국적 문화 행보가 일거에 붕괴한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은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원조했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으로 불리고 있는데, 중국의 이런 낯선 평가는 한국전쟁에 대한 양국의 역사적 인식 차이에서 불거진 것이다. 한국의 언론은 이것을 반중감정으로, 중국 언론에서는 사드 배치의 연장선에서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수단이 돼버렸다. 역사적 인식 차이가 특정의 문화를 권역화하거나 보이콧하는 것은 사실 그동안 흔히 있었던 일이다. 가령 이번 사태는 언제나 반전의식을 강력하게 피력해왔던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2013)를 내놓았을 때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이 결여됐다”라며 한국 팬들이 항의와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던 장면을 상기시킨다. 그런 만큼 이 사태는 후대의 평가를 견인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거기에 기반을 둔 문화권력, 그리고 대중의 감수성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또 연약한 기반 위에서 성립돼왔는가를 새삼 확인케 해준다. 

19세기에 시작하고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에 도달한 현재, 제국주의-냉전-국민국가로 이어진 세계질서의 재편과정에서 해소 불가능한 내셔널리즘의 곤혹은, 기후위기와 함께 후속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심각한 책임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 그것은 여전히 문화교류가 지역적·권역적·역사적·정치적 한계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BTS의 이번 사건이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문화교류에 새로운 시점에 대한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탈중심화된 글로벌리티의 시선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적절한 인식을 생산하는 것, 사회적 정의, 인간적 품위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 거짓된 보편주의들에 대한 거부라는 기본원칙, 차이의 긍정성에 대한 긍정, 반인종주의, 타자들에 대한 개방성과 유쾌함의 원리에 조율된 지식을 생산하는 일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글·이혜진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됐다.


참고문헌

(1)로지 브라이도티 지음, 이경란 옮김, <포스트휴먼>, 아카넷, 2020.
(2)이혜진, <제국의 아이돌>, 책과함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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