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호 구매하기
기획사의 ‘내 아이들’이 진정 아티스트가 되려면
기획사의 ‘내 아이들’이 진정 아티스트가 되려면
  • 한유희 | 문화평론가
  • 승인 2024.05.31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팝 아이돌과 팬덤에게 필요한 진심과 사랑
ADOR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뉴스1

2024년 상반기 엔터 사업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민희진 기자회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회견을 통해서 민희진 개인의 경영권 찬탈 논란, HYBE-ADOR 사이의 갈등 등 복잡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지금도 무엇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수많은 논란 중에서 가장 큰 ‘논란’은 바로 ‘민희진’이라는 한 명의 인물이 사회적으로 이토록 큰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자체다. 케이팝 산업의 성장으로 인한 기획사의 내부적 갈등은 단순히 갈무리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시가 총액이 10조 원에 육박하는 HYBE의 문제는 첨예한 갈등의 요소를 쏟아내고 있다. 수도 없이 보도되고 있는 기사 속에서 모든 이슈는 결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문제로 대두된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에서 아이돌 팬덤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분명 케이팝 시장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팬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케이팝 신드롬

이제 뉴스에서 케이팝 아이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앨범이 몇백 만장이 팔려서 신기록을 달성했더라”, “빌보드 차트의 1위를 했더라”, “해외 투어가 매진이 되었다더라.” 케이팝 아이돌은 더 이상 ‘한국’만의 아이돌이 아닐뿐더러 파급력을 지닌 문화 콘텐츠가 된 지 오래다. 그만큼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이돌 역사는 유구하다. 아이돌의 시초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보통 아이돌의 시초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최근에는 4세대, 5세대 아이돌까지 등장하고 있다. 사실 아이돌은 전적으로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대형 연예기획사의 철저한 사전 기획과 관리 매니지먼트가 아이돌이라는 정체성(1)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기획사와 긴밀한 연관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기획사의 힘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아이돌 그룹을 잘 만드는 3대 회사는 SM, JYP, YG이다.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동방신기,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EXO,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을 기획해 왔다. 각각의 기획사는 아이돌 그룹을 런칭할 때 철저하게 이미지를 구축한다. 

따라서 아이돌 그룹은 기본적으로 ‘누가’, ‘어떻게’의 영역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닌다. 즉, 기획의 주체인 프로듀서가 주목받게 되는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서 성공한 기획사의 새로운 아이돌이 조금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기획사에서도 인기를 얻어 성공 가도를 달리는 아이돌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3세대 아이돌에 속하는 방탄소년단(BTS)이 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HYBE)는 방탄소년단의 전 세계적인 인기로 단번에 급부상한 기획사로 발돋움했다. 이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KOZ엔터테인먼트’을 레이블로 편입하면서 HYBE로 상호를 변경한다. HYBE의 글로벌 레이블(2)을 제외하고도, 소속된 아티스트는 이현, 방탄소년단, 투모로우바이투게더, ENHYPEN, ILLIT, LE SSERAFIM, 나나, 범주, 백호(강동호), 황민현, 세븐틴, fromis_9, TWS, 지코, BOYNEXTDOOR, NewJeans로 총 16팀이다.

한국 엔터 산업에 등장한 대형 기획사의 ‘레이블 체제’는 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형 기획사가 독립적인 레이블을 편입하여 레이블의 고유성을 살리고자 한다. 따라서 같은 기획사라고는 하지만, 소속된 레이블에 따라 아이돌의 구성 요소가 판이하다. 음원, 창법, 안무, 비주얼 등이 차별화된다. 

문제는 HYBE 내의 레이블이 모두 ‘아이돌’을 기획하면서 발생한다. 기획사 HYBE는 수많은 레이블을 통해 다양한 아이돌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아이돌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노하우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익혔다. 하지만 레이블마다 독립적이어야 할 아이돌 컨셉이 HYBE의 승인하에 바로 등장했다는 점은 문제가 된다. 오마주가 아닌 표절 시비로 불거진 것은 레이블에 따른 ‘독립성’을 지닌 아이돌을 원했기 때문이다. 아이돌만의 특성을, 기획력을 통해서 입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HYBE 그룹 홈페이지

기획의 숙명 혹은 이면

아이돌은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데뷔 후에 성공하는 아이돌의 수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프로듀싱이 아이돌의 성공을 담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아이돌에게 ‘제작자’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특히나 아이돌에게 관심이 있는 팬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다. ‘미적감각’이라는 표현을 통해 아이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프로듀서는 YG의 레이블인 더블랙레이블을 이끄는 테디와, 이전의 SM에서 레드벨벳 및 여러 그룹을 기획한 현 HYBE의 레이블 ADOR의 대표 민희진이 있다.

이들이 제작하거나 기획에 참여한 그룹은 아이돌 ‘판’에서 선구적인 혜안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들의 기획력은 보여주는 것과 들려주는 것, 그리고 완벽하게 아이돌만을 위한 콘셉트를 구축해 냈다. 즉, 그들이 추구하고 표방하는 ‘아이돌’만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아이돌, 앨범은 아이돌 시장에서 ‘검증’받았다는 평가가 이루어진다.

물론, 민희진이라는 프로듀서 신화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분명 그녀의 능력이 인정받았기에 HYBE에서도 채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인정’을 받지 않았을 경우다. 동일한 기획사에서 런칭한 타 아이돌 그룹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는 곧, 아이돌 평판과 직결한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가 대중까지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 판에서는 이슈가 되고, 추후 대중까지 확대되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남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은 취향의 공동체다. 하지만 아이돌 팬덤은 스스로를 불가촉천민으로 여긴다. 사회적인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냉대받기에 팬덤이 더욱 공고화된다. 동일한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대감이 형성되고, 아이돌 팬덤으로서 소속감을 얻는다. 취향으로 똘똘 뭉친 팬덤은 아이돌과 팬덤 간의 유대감, 팬덤 내의 소속감을 강화하고 ‘나’의 확장이자 동일시하는 대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아이돌 팬덤이 모여 있는 아이돌 판(혹은 아이돌 팬덤) 내부에서는 대중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아이돌 팬덤에서 특이한 점은 대중의 평가보다 아이돌 팬덤 판 내부에서 자신의 아이돌이 인정받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아이돌 팬덤은 스스로 ‘빠순이 문화’로 자신들이 치부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돌 팬덤 자체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 판 안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아이돌의 생리, 시장성을 가장 명확하게 꿰뚫고 있는 아이돌 판 안에서의 인정은 전문가에게 인정받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돌 팬덤은 자신의 취향이 평가당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좋아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수치’가 되는 현상 또한 발생하기도 한다. 우열의 논리 속에서 팬덤 자체에서의 갈등은 취향의 열패로 나뉘게 된다. 따라서 ‘기획’을 맡고 있는 대상의 신화화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프로듀서가 신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것이다. 천재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개인이 ‘아이돌’을 제작했기에 위에 서게 되고, ‘아이돌 팬덤’의 ‘아이돌’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돌 팬덤이 진정으로 끌리는 것은 ‘아이돌’ 자체인가, 아이돌을 기획한 ‘프로듀서’인가라는 질문이 남게 된다.

 

찬탈의 대상

아이돌이 기획된 상품이라는 고정관념을 전제로 할 때, 아이돌 팬덤은 상품을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생각이 없는 광신도라는 고정관념을 지닌다. 즉, ‘빠순이’이라는 이미지로 문화적 자본주의에 끌려다니는 ‘생각 없는’ 집단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귀베르나우는 『소속된다는 것』에서 현대사회의 소속은 과거와 달리 자신의 ‘선택 과정’을 통해서 소속되며, ‘개인적 책임’을 부여받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집단이나 공동체에 자유롭게 들어갈 때 자신의 자아 정체성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다. 사회정치학자인 귀베르나우가 주지하듯 소속은 스스로의 권능을 부여하기도 하고 부담이자 제한이 되기도 한다. 아이돌 팬덤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아이돌과 지나친 동일시, 즉 아이돌의 권리 회복에 대한 맹목적인 모습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돌 팬덤으로 소속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좋다’라는 감정이 전제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감정에는 뚜렷한 인과 관계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루뭉술한 나의 ‘취향’이라는 말 아래 쌓이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팬덤은 절대로 산업적인 요소와 얽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아이돌이 문화 ‘상품’이기에 역설적일 수 있지만, 반대로 바꾸어 말하면 상품이라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아이돌 팬덤으로 남아있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하지만 점차 아이돌 ‘판’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담보로 상품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만큼 엔터 산업의 규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1천억 대 매출, 경영권의 찬탈, 사익의 추구, 그룹의 차별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들 사이에서, 과연 그들은 지키고자 하는 아티스트를 진정으로 위하고 있는 것인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다. HYBE에 소속된 아이돌 전체가 받을 타격은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분명 그들은 아이돌을 “아티스트”라고 칭하며, 극진한 대접을 한다. 그들 모두는 소속된 ‘아이돌’이 모두 나의 ‘자식’과 같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지금의 현상을 보면, 아이돌은 아이돌 개인으로서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아이돌의 커리어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닌, 속박된 존재로서 ‘아이돌’도 아니고, ‘아티스트’도 아닌 상황에 그저 진열되어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돌 팬덤은 그들의 다툼 속에서 갈피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아이돌의 음악을 좋아했을 뿐인데, 그 마음조차도 제자리에 둘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 피해는 그룹 자체와 팬에게 지워질 뿐이다. 지금 찬탈되고 있는 것은 천문학적인 돈과, 회사의 존립과 명의가 아닌 아이돌과 팬덤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진심과 사랑이다. 

 

 

글·한유희
만화평론가. 경희대학교 K-컬처 스토리콘텐츠의 연구원으로 있으며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본지 온라인판에 글을 연재하고 있다.


(1) 이동연 외, 『아이돌』, 이매진, 2011, 117-118쪽.
(2) 하이브 레이블즈 재팬과 네이코, 하이브 아메리카(빅 머신 레이블 그룹, QC 뮤직) 등이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