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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카당스, 스펙터클의 사회
케이팝, 데카당스, 스펙터클의 사회
  •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 승인 2024.05.3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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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들 이러지?’

민희진 VS 방시혁 간에 벌어진 경영권 갈등 사태를 바라보며 처음 가졌던 질문이다.

여기서 ‘왜들’이라는 복수형의 의문사가 함축하는 주어는 링 위에 오른 두 저명한 케이팝 기획자들이 아니라, 그들 간에 벌어진 분쟁을 바라보며 연일 열띤 관전평을 내놓는 대중들이다. 자신들의 내부 갈등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여론전을 벌이는 두 당사자가 있을 수 있다 해도,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는 것을 넘어, 마치 제일인 양 온 나라가 달려들어 열정적으로 논쟁에 뛰어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평범하지 않은 하나의 현상이었다. 
누군가를 향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할 공적 분노를 자극하는 사안도 아니고, 만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의 생사가 걸린 문제도, 대다수 사람의 먹고사는 일에 영향을 끼칠 정치적 사안은 더더욱 아니다.

김민기식 표현대로라면 사람을 키워내 무대에 세우는 역할을 하는 무대 ‘뒷 것’들의 흔히 벌어지는 알력 다툼, 지분 싸움이다. 스펙터클을 만들어 내는 주체들이 스스로 스펙터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사실도 기이하지만, 이들 간의 경영권 다툼이 대중에게 이만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방시혁이 다 가지든, 민희진이 일부 나눠 가지든, 그것이 일반 대중에게 어떤 의미가 있길래 모두들 이렇게 진지하실까? 아주 낯선 현상만은 아니다. SM, YG, JYP 트로이카가 케이팝 삼두마차이던 시절부터, 사람들은 이 사장, 양 사장, 박 사장의 경영 스타일을 논하며 훈수 두기를 즐기는, 마치 동업자 같은 태도가 사회에 만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엔, 전 세계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케이팝’ 현상에 대한 뿌듯함, 그들 모두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인 케이팝의 주역들이란 데서 오는 훈훈한 호감이 작동해왔다.

이런 바탕 위에, 오늘의 사태를 부풀리는 데엔 언론의 몫이 지대했다.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양, 아니, 남북 정상이 서로 아찔한 설전이라도 벌이고 있는 양, 언론은 지상 최대 이슈로 이들의 갈등을 다뤘다. 지엄하신 그들의 물주들이 언플을 원했고, 언론은 그들의 역할, 즉, 물주들이 원하시는 대로 여론을 끌고 갔을 뿐이다. 대중은 언론이 바람 잡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권력은 언제나 대중을 사로잡을 스펙터클을 제공하고, 대중은 자신의 삶을 사는 대신 스펙터클의 구경꾼으로 살아간다는,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가 수학 공식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는 곳이 한국 사회라는 데 우리의 (자각되지 못한) 비극이 있다.

 

트루먼 쇼, 그 병적인 ‘현장’

적극적 언플이 불러일으킨 한바탕의 웅성거림이 지나가자, 초록빛 티셔츠를 걸치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40대 여인의 모습이 나라 안 모든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유사 이래 가장 뜨거운 기자회견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호들갑을 떠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언론은 대체 왜 이들의 싸움이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문제인지 누군가 의문을 가질 새라, “시가 총액 10조 원에 육박하는 하이브”, “1천억 매출 기록한 어도어의 민희진”, “뉴진스 멤버당 52억 원씩 지급된 배당금” 등, 천문학적 숫자들을 꽝꽝 박은 기사들을 틈틈이 뿌려 주었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모두 마땅히 혈전에 나선 두 사람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듯했다. 스포츠 일간지 3개가 나란히 가판대에 놓이던 시절,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면, ‘5억’, ‘8억’, 하는 숫자로 선수들의 연봉 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며 여전히 프로야구라는 자장 속에 대중을 붙잡아 놓으려 했던 언론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민희진의 격정 기자회견이 드러내 준 케이팝 산업의 현장은 한마디로 ‘병적’이다. 그렇다. 나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본 것이 아니라, 울먹이며 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그녀와 그 앞에서 구름같이 모여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 문어발식 레이블을 거느린 대규모 공장이 된 하이브란 이름의 정글, 이 모든 것이 함께 빚어내고 있는 아픈 세상을 보았다. 

십대 초반의 소년 소녀들을 데려다, 수년간 노래와 춤, 외국어를 가르치고, 적절히 외모를 다듬은 후, 장사가 될 만한 팀으로 ‘믹싱’하고, 10대들을 사로잡을 캐릭터를 정교히 설정하여, 다년간 익혀온 방식대로 팬덤을 조성하는 시스템을 완성한 그들은 그 공장을 가동하는 과정에서 함께 공장의 일부가 된 것일까. 

그녀를 “담그려 한다”는 “개저씨들”도, 자신이 런칭한 그룹의 소녀들을 “내 새끼들”로 지칭하는 그녀 자신도, 썩 건강한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 표현하고 싶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거의 맛보지 못했지만, 스타가 되고 싶은 꿈은 가지고 있던 아이들을 시장의 요구에 맞게 ‘조련’하고, ‘카피’하고, ‘믹싱’하고, ‘튜닝’해서 먹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물론 거리낌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5천만이 응원하는 자랑스런 케이팝 업계의 역군들이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선 누구든 자신이 가진 적절한 것을 상품화하여 그것을 팔며 살아간다. 아이폰 같은 전자기기일 수도 있고, 재능이나 미모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팔고자 하는 대상이 사람일 때, 특히 그들이 어린아이들일 때, 우린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하며, 아이들을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 원칙을 몇몇 ‘재능 있는’ 기획자들의 양심과 재간에 온전히 맡겨 두어서는 곤란하다. 그것이 소위 문명사회가 가져야 할 기본적 사회 윤리다. 케이팝에 대해 한국 사회가 치열히 논쟁해야 할 대목이 있다면 바로 이런 점들일 것이다.

얼마 전, 우리는 “날마다 트루먼쇼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데뷔 후 24년 동안,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고 털어놓는 가수 보아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업계를 떠나지 않은 상태, 그러나 2025년 계약이 만료되면 은퇴를 생각한다는 그녀가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한마디는 영광 뒤에 가려져 있던 고통의 시간을 짐작게 했다.

2000년에 13살의 나이로 대일본 수출 상품으로 기획되어 세상에 나온 후, 케이팝 여제로 군림해 왔던 그녀다. 이수만의 SM은 그녀를 일본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언론은 혼자서 기업 수준의 매출을 내는 보아의 활약을 종종 전해주었다. 대한민국은 보아의 노래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외화 벌이와 국위 선양에 이바지 하고 있는 보아를, 그녀를 탄생시킨 SM을 응원했다. 그 대가로 13살짜리 소녀가 <트루먼 쇼> 같은 삶을 매일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선, 아무도 알고자 하지 않았다.

“착취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요.”

몇 해 전, 한 언론사의 요청으로 프랑스에서 케이팝의 현주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케이팝 열성 팬으로 알려진 소녀들과 그의 부모들을 수소문해 만났고, 케이팝 댄스 학교 설립자, 차이나타운에 있는 케이팝 굿즈 판매 업소 등을 두루 취재했다.

BTS의 팬이었다는 한 소녀는 BTS가 데뷔 후 7년 동안 한 번도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팬 노릇을 하는 자신이 가수들에 대한 기획사의 착취에 동참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대신 마마무의 노래를 듣는다고 했다. 마마무 멤버들은 각자 자신들의 자유로운 세계를 간직한 그룹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학교 시절 내내 BTS의 한 멤버를 좋아한 딸을 둔 엄마는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팬질을 그만두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아이는 아침 식사 때부터, 식탁 위에 해당 가수가 생중계하는 유튜브를 틀어 놓고, 하루를 시작했다. 사이버상에 존재하는 딸의 남자친구처럼, 그 가수는 3년간 그 가족과 일상을 함께 했다고 한다. 아이는 그 가수가 먹는 것을 먹고자 한인 마트에 갔고, 그가 거닌 길을 걷고자 한국에 가길 원했으며, 한국어도 배우고자 했다.

엄마인 그녀는 딸의 열정을 이해했으나, 아빠는 딸의 태도를 받아들이지 못해,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BTS에 대한 팬심은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딸과 함께 중학교 시절 케이팝 팬 동호회 활동을 하던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걸었다고 전했다. 현실의 연인을 갖기에 수줍은 나이의 소녀들에게 BTS는 언제나 다정한 눈빛을 보내주는 사이버상의 남친 대용으로 역할 해 왔던 것 같다고 소녀의 엄마는 해석했다.

또 다른 아이는, 케이팝은 듣는 음악이 아니라 영상을 통해 ‘보는 음악’에 가까우며,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듣는 음악 쪽으로 옮겨갔고, 케이팝과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불과 2년 전, 딸의 요청으로 그 아이가 쓴 팬레터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수고를 했고, 내가 번역해준 한글을 그대로 제 손으로 옮겨 적은 정성을 보고 감탄했던 터라, 그 사이 마음이 식어버린 아이의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히 한국 식당에서 BTS 음악이 틀어져 있는 것을 듣고 들어왔다는 두 명의 20대 여성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각각 프랑스 해외령인 아이티와 항구 도시 마르세유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파리로 유학 와 대학을 나오고 직장인으로 자리 잡은 두 사람은, BTS의 팬이라는 이유로 친해졌고, 그들은 BTS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한국 맛집을 드나드는 것이 두 사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했다.

케이팝이라는 키워드로 만나본 사람들을 통해, 케이팝이 어떻게 프랑스 청소년들 속에 파고들었고, 어떻게 소비되며, 어떻게 몸집을 키워갔는지 볼 수 있었다. 다수의 한국인이 상상하는 바와 달리, 케이팝은 전 세계가 환호하는 음악이 아니라, 많은 나라의 10대 소녀 중 일부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다.

어른들 중에서 케이팝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자녀 중 케이팝 팬이 있는 경우, 어린 시절 케이팝을 좋아했던 경우다. 케이팝에 빠져 비싼 비용을 치르며 팬으로 살아갔던 소녀들 대부분은 3~4년 후, 그 어린 날의 열정에서 빠져나오고, 자신을 사로잡았던 세계의 모순들을 냉정하게 보게 된다. <르몽드>, <BBC> 등 몇몇 외신들이 지적했던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든 제작사의 기획으로 길러진 소년과 소녀들”, “케이팝의 성공신화 이면에는 장기간의 불평등한 전속계약 등 ‘그림자’ 존재” 등의 관점은 왜곡된 서구 주류 언론의 삐딱한 시선이 아니라, 팬을 자처했던 소녀들에게도 명백히 보이는 현실이었다. 

 

노래 대신 팬덤과 매출을 남긴 ‘케이팝’

케이팝은 문자 그대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말일 터이나, 주지하다시피 실상은 특정 세대를 겨냥한 수출용 아이돌 댄스그룹이다. 자신의 우상에 몰입된 청소년들의 시간과 열정, 돈으로 이 산업은 굴러간다. 팬덤을 유지하기 위해 가수들은 철저하게 계산된 공식에 따라 웃고 움직이고 말하는, 일종의 사이보그가 되어야 한다.

한 아이돌 걸그룹 멤버가 감히 연애 중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가 봉변을 겪는 일이 최근 있었다. 팬들은 “내가 너를 위해 쓴 돈이 얼마인데, 감히 연애를 하느냐”며, 자신들의 우상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요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며칠 뒤, 해당 가수는 사과문을 발표했고, 연인과의 결별을 알렸다.

지나가며 들으면 웃기는 얘기지만, 바로 이것이 이 시장, 이 산업이 움직이는 엄정한 공식이고, 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에피소드의 이면에, 케이팝의 첨병으로 발탁된 소년 소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인간적 고통을 사람들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BTS의 폭발적 성공 이후, 케이팝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가 되어버렸고, 그 사이 커져 버린 시장, 높아진 매출은 업계 두 히어로 간의 갈등으로 분출됐다. 

한국의 일반 대중음악과 구분되는, ‘케이팝’이란 장르가 생겨나고,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많은 그룹들이 명멸해 왔지만, 극성스런 팬덤을 일으키며 거대한 매출을 기록하였을지언정, 다수의 한국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노래를 남기진 않았다.

한국엔 독특한 색깔을 지닌 영화가 존재하듯, 케이팝 이외에도 거대한 대중음악 장르가 존재하고, 뛰어난 실력의 가수들, 아름다운 노래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나의 입장은 난감하다. ‘그래? 당신이 말하는 그 한국 대중음악은 케이팝과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왜 한국은 왜 칼군무를 추는 보이그룹, 걸그룹만을 일률적으로 해외 시장에 내놓는 것인가?’에 대해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다만 케이팝으로 분류되지 않는 대중음악들이 어떻게 다른지는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음악을 짝사랑해오던 사람이 기타 하나 들고 골방에서 고군분투해온 세월을 지나 마침내 세상에 나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신의 색깔로 전하는 음악이다. 산울림이, 조용필이, 김광석이 그리고 비틀즈와 퀸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아는 세상의 많은 가수들이 거쳐온 그 길을 따라 가수가 된 사람들의 음악이다.

기획사는 그들의 활동이 꽃피울 수 있도록 지원하지만, 그들을 분해하고 해체하고, 조율하여 특정 세대의 욕망에 걸맞은 상품으로 재조립하는 공정을 강제하진 않는다. 처음부터 업계의 공식에 의해 제조된 아이돌 댄스 그룹에 예술가의 영혼이 온전히 담기기 힘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는, 더구나 세대 전체를 아우르며, 시대의 감수성을 전하는 음악으로 남기는 힘든 법이다. 케이팝이 팬덤과 매출을 남겼을지언정 정작 <노래>를 남기진 못한 것에 대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터이다.

 

데카당스를 증명하는 두 개의 장면 

1982년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 수학 선생님은 뜬금없이 <상록수>라는 노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누가 지은 노래인지, 왜 우리가 수학 시간에 이 노래를 부르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우린 그 노래를 매시간 합창한 후 수업을 시작했다. 1983년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선생님은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고, 한 아이가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선생님은 이 노래를 부른 아이에게 가사를 칠판에 적고, 노래를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했다.

1987년 고3 때, 반 아이가 가져온 녹음 테이프를 통해 <친구>라는 노래를 들었다.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한 고교생이 지은 노래라 했다. 그토록 단조로우면서도 그토록 아름답고, 슬픈 노래를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1988년 대학에 들어가 만난 두툼한 노래책에서 난 내가 청소년기에 만난 잊을 수 없는 노래들을 만든 사람이 <김민기>라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 책에 수록된 노래의 90%가 바로 그 사람이 작곡 작사한 노래들이었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에서, 수십만 군중이 운집하여 역사의 후퇴를 온몸으로 막으려 할 때마다, 힘겹게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으려 할 때마다, 그의 노래들은 소환되었고, 모두가 뱃속에서부터 배우고 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아침이슬>을 불러왔다. 혁명도, 투쟁도, 진보도 말하지 않는 그의 노래들은 광장에 선 사람들의 가슴에 처연한 위로와 용기를 전했다.

이 많은 노래를 탄생시키고, 숱한 대중 예술계의 스타들을 키워낸 김민기는 경영난으로 반평생을 바쳐온 <학전> 소극장의 문을 닫았고, 지금 조용히 병마와 싸운다. 한 방송사가 그의 삶을 조명했고, 사람들은 그의 쓸쓸한 운명을 단지 안타까워할 뿐이다.

조 단위를 넘나드는 케이팝 산업체의 주인공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매체를 동원해 더 많은 지분을 갖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이 땅의 모든 미디어가 그 허무한 싸움을 생중계하며 만인의 참전을 유도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스펙터클은 역사와 기억을 마비시키고 역사를 유기하는 현재의 사회 조직이다.” 1967년에 나온 기 드보르의 저서 『스펙터클의 사회』는, 오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현실을 예견한다. 자본이 모든 가치를 독식해 버린 한국 사회. 우리 모두가 광장에 서서 목놓아 부르던 노래의 창작자는 가난과 병마 속에서 사라져가는데 아무도 그것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우리를 자신들이 벌이는 스펙터클의 열렬한 ‘구경꾼’으로 세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벌이는 투전의 관객으로까지 대중을 동원한다. 그리고 대중은 열렬히 그들의 ‘구경꾼’이 되고자 한다. 이 두 개의 대조적 장면은 우리 사회의 데카당스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끔찍한 입시 제도를 만들어 아이들을 들들 볶고, 그것도 모자라 입시 학원이라는 괴물 제도를 탄생시킨 한국 사회는 세상에 없던, 아이돌 제조 산업이라는 한국형 산업체를 건설해서 춤추고 노래하기를 꿈꾸는 아이들을 아이돌 스타로 제조해 내는 공장을 만들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거기서 생성된 조 단위의 부(富) 속에서 타락해 가고 있다. 누구도, 학교 밖의 길을 선택한 그 아이들의 행보가 덜 고통스러운 것이 되도록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여전히 관통하고 있는 유일한 순리다.

 

 

글·목수정
파리에 거주하며, 칼럼 기고와 책 저술, 번역을 하고 있다. 2023년 최근 저작으로 『파리에서 만난 말들』 , 역서로는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코드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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