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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보다 제7공화국이 먼저다
대통령 선거보다 제7공화국이 먼저다
  • 안치용 | 인문학자
  • 승인 2024.12.3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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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윤석열 대통령의 12.3 친위쿠데타는 2024년 12월 3일 밤과 4일 새벽에 걸쳐 여러 우연이 겹치고 무엇보다 시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좌초했다. 이어 14일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윤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무위로 돌아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남아 있지만, 그가 권좌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민을 대상으로 내란을 감행한 게 공공연하게 확인된 상황에서 헌재가 파면 외의 기각 결정을 내리는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헌재가 윤석열에게 대통령직을 돌려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내란이다. 윤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함께 내란죄 등의 수사를 받고 있어 파면은 물론, 슬기로운 감옥 생활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꽤 오래 그곳에 머물러야 할 테니 말이다.

외신은 결연하고 신속한 시민적 저항이 쿠데타를 막아냈다고 평가하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 한 단계 더 성숙했다고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그럼 쿠데타를 막아내고 탄핵까지 성사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더 온전해졌고, 국가는 더 탄탄해졌는가. 이제 우리는 안심해도 좋은가.

 

‘내란의 힘’이 되어도 상관없는 그들

12.3 쿠데타 국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있자마자 불법적인 계엄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며 계엄 해제를 위해 자당 의원들이 국회에 모이도록 독려했다.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대처 또한 기민했지만, 여당 대표인 한 대표의 계엄 반대 의사표시는 계엄에 동원된 군경을 위축시키는 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동훈 사살설’까지 제기된 것에서 드러나듯, 계엄령 선포 이후 친위쿠데타가 성공했다면 한 대표에게 어차피 활로가 없었기에 동물적 생존 감각이 그를 계엄에 반대하게 했다고 폄훼하는 시선이 없는 건 아니다. 결과론으로 한동훈은 윤석열과 완벽하게 차별화하며 명분 있는 보수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여당 내에서 탄핵 흐름을 주도해 정국의 불안정성을 빠르게 제거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그러나 한 대표가 정치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자마자 그의 미래는 불확실해졌고, 결국 16일 당대표직을 사퇴했다. 윤 대통령을 탄핵한 책임을 물어 국민의힘 의원들이 한 대표를 ‘탄핵’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계엄한 게 아니라는 한 대표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지배하는 소위 중진의원들이 탄핵안 가결 이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초선 의원까지 규합해 한 대표를 몰아냈다.

박근혜 탄핵 때도 목격한 이른바 ‘배신자’ 프레임인데, 이번엔 선후가 뒤바뀌었다. 박근혜 탄핵 때엔 결과를 두고 ‘배신자’ 프레임이 분출했으나, 이번엔 프레임을 준비해 놓고 있다가 결과가 나오자 덮어씌웠다. ‘배신자’ 프레임이라는 덫을 놓고 한 대표를 기다렸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끌려 들어갔다. 물론 그렇다고 한동훈의 정치적 미래가 완전히 차단된 건 아니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일말의 부끄러움 없이 탄핵 반대를 옹호하고 대놓고 탄핵 찬성을 비난한다는 점도 마치 준비된 장면처럼 자연스러웠다. 탄핵에 반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신념과 소신으로 위장한 채 동지와 당을 외면하고 범죄자에게 희열을 안긴 이기주의자와는 함께할 수 없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일 대오’가 아닌 배신자가 속출하는 자중지란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드렸다” 등의 소회를 표명하며 탄핵에 찬성한 자당 의원들을 공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을 맡았던 유영하 의원은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들을 겨냥해 “아직도 그들에 대한 역겨움이 가시질 않는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의원 외에 드러나지 않게 찬성한 사람을 ‘색출’해 탈당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탄핵 국면의 국민의힘 탄핵 반대파의 행태를 보면 마치 무고한 대통령이 부당하게 탄핵당했는데 지키지 못해 억울해하는 모습 같다. 유 의원 표현을 차용하면 이러한 모습에 역겨움이 가시지 않는다고 느낄 국민이 한둘이 아니지 싶다.

탄핵 반대는 박근혜 때 56표에 비해 이번에 85표로 늘었다. 찬성은 234표 대 205표로 줄어들었다. 박근혜 탄핵 때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소속 의원 122명 중 62명이 찬성한 것에 비해 윤석열 때는 찬성이 108명 중 12명에 불과했다. 한 짓을 보면 윤석열에 비해 박근혜는 새발의 피라는 얘기가 나오는데도 국민의힘이 탄핵 표결에 이처럼 미온적으로 움직이고 탄핵 반대파가 찬성파를 맹폭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소명이 아닌 직업으로서의 정치인

탄핵에 찬성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계엄에 찬성한 자들이야말로 내란의 부역자들이다. 계엄에 찬성하는 사람이 당을 떠나야 한다”라고 비판했지만, 김용현 전 국방장관 표현대로 중과부적으로 보인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우리가 조폭이냐”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깨부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국민의힘 대다수는 조폭스러운 태도를 일관한다.

대대적이고 조직적인 후안무치가 가능한 데는 지난 탄핵의 경험이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여당의원으로서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은 어려움을 겪은 반면, 탄핵에 반대한 정치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윤상현 의원이 남긴 “1년 후에 국민이 달라진다. 탄핵 반대해도 다 찍어준다”란 어록이 상징적이다. 핵심은 “찍어준다”이다.

윤 의원 같은 정치인들에게 국회의원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이란 지위와 권력이 그들에게 유일한 목적인 사람들은 탄핵에 대한 입장 또한 다음 총선에서 공천받고 당선되는 데에 무엇이 더 유리한가로 가려질 뿐이다. 그들의 정치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공천을 받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을 뭉뚱그려 ‘친윤’이란 표현을 쓰지만, 검찰이 표변하였듯 그들은 내용상 벌써 친윤이 아니다. ‘배신자’가 아니라는 표지를 앞세우지만 내심 탄핵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기까지 버틸 수 있는 정치 일정과 자신들의 자리보전만을 염두에 둔다. 쿠데타는 막아야 하지만 내가 막을 마음은 없고, 주변에서 누가 쿠데타를 막는 데 힘을 보탰다면 같은 편이 일으킨 쿠데타이기에 그는 배신자가 되고,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기묘한 논리가 작동한다. 쿠데타를 찬동한 의원도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탄핵 반대표가 85표나 나온 것을 두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반대하는지 국민들한테 설명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국민들 절대다수가 탄핵을 찬성하는데 왜 반대를 하는가. 그게 과연 옳은 판단인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내란의 힘’과 ‘중진의 힘’이 된 데는 유승민 전 의원의 지적과 달리 소속 의원들이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국민이 아니라 콘크리트 지지층과 대다수 국민 정서와 유리된 당원 정서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과 이런 국회의원이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할까. 문제는 이런 정당에 소속돼, 이런 태도를 취하는 국회의원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1987년 이후 수립된 우리 정치체계의 그늘이다.

만일 윤석열이 한동훈을 키우지 않았다면?

재미 삼아 하는 가정이지만 만일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며 한동훈을 중용해 체급을 키워놓지 않았다면, 그래서 둘이 반목하는 바람에 한동훈이 살생부에 들어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쿠데타가 실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능할 법하다. 윤 대통령이 둔 자충수가 많지만, 한동훈을 여당 대표로까지 키운 것 또한 대표적 자충수이다. 계엄 선포와 달리 한동훈 건에 대해선 윤석열 부부가 모두 뼈저리게 후회하는 듯하다.

또 다른 가정을 해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회고하듯,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을 키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그 어마어마한 국민적 여망을 업고도 해놓은 일 없이 임기를 마치며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을 들라면 윤석열이란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제7공화국, 협치 가능한 분권형체제 수립이 우선돼야

전 국민이 일궈낸 촛불혁명의 성과를 특정 정파가 독식하며 정권 실패로 귀결하고 윤석열이란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원죄로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은 자유롭지 못하다. 586과 친문이 요직을 차지하며 적폐 청산을 내세워 윤석열과 한동훈을 중용해 놓고는 뒷수습에 실패해 정권을 내어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박근혜 탄핵 과정에 모인 민주주의의 에너지를 활용해 ‘87년 체제’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권력분점과 국민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7공화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을 잡을 때에는 강력한 탄핵연대가 존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선 광장의 시간이 짧아 다중을 배제한 채 정치세력이 독주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이 ‘내란의 힘’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 또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가 실패한 후 곧바로 권력 게임이 시작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탄핵 때보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한 것이 훨씬 적다. 물론 지난 탄핵 때에도 큰일 한 것은 없다. 나름대로 주도면밀했지만 동시에 무모한 윤 대통령의 광기가, 작전상 돌발변수, 시민적 저항, 우원식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 빠른 대응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저지되었을 뿐이다.

이재명 대표 본인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제 다음 대통령은 이재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시운이 이 대표에게 흐른다면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정권처럼 손쉽게 정권을 가져올 수 있겠다고 김칫국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정치 일정을 당겨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에 선거를 치러 정권을 잡겠다는, 이른바 정치 공학은 위험하다.

두 번의 탄핵을 거치면서 돌출한 우리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숙고하고, 국민의 여망을 모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 국가로 향하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만 몰두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정치 일정을 무리해서 당기지 말고, 이 대표 사법심판의 윤곽이 나온 다음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시나리오가 가장 바람직하겠다. 사법심판이 마무리되기 전에 서둘러 대선을 치른다면 당선 가능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임기 내내 국민의힘으로부터 공격받아 극한 대립으로 점철될 것이다.

‘내란의 힘’이 된 국민의힘은 정당으로 존재 가치를 잃었지만, 문재인이 윤석열을 키웠듯 이재명이 그런 식으로 ‘내란의힘’을 소생시켜선 안 된다.

아이디어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박근혜 탄핵 때 탄핵연합을 배신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엔 미처 형성되지 못한 탄핵연합을 주도하고 신의를 지켜 호족연합 성격의 국민의힘을 무력화하면서 협치가 가능한 분권형 정치체제로 제7공화국을 수립해야 한다.

극우세력이 정치에 등장하는 걸 막을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정상적인 정치의 한 축을 차지하는 건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다. 두 번의 탄핵을 거치면서 우리는 기이하게도 (훨씬 더 강력한?) 극우정당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국회의원 자리, 대통령 자리를 욕심내는 사람은 국민의 자리를 우선한다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정치 일정에서 극우화하는 국민의힘을 파쇄하며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탄핵연대가 출범할 수 있을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덜 중요하다. 어떤 나라를 만들 수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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