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ㆍ3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1월 15일 체포되며 내란 사태는 이제 완전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윤 대통령이 칩거하며 수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체포가 해를 넘겼고 체포에 43일이 걸린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이 주변에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평가한다. 비교적 빨리 헌정중단을 기도한 반란을 막아내고 국가 시스템을 정상으로 돌렸다는 데에 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고 본다.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모험으로 국가가 위기에 빠지고 앞으로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하겠지만, 얻은 것이 그것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3일 우리 국민과 시민이 보여준 역동적 항거는 우리 민주주의의 뿌리가 굳건함을 입증했다. 쿠데타 세력의 치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시민의 열망에 패배했다. 여러 우연이 겹치며 계엄 선포 이후 상황에 차질이 빚어졌고, 그것이 결국 시민과 의회가 반헌법적 계엄을 무위로 돌리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 많은 우연의 중첩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시민의식의 성숙과 계엄세력 내에서 반헌법적 기도에 부당함을 느껴 명령 이행을 거부한 탈권위주의적 각성이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데에 근본적인 힘이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43일 만의 대통령 관저 체포 장면에서도 우려와 달리 경호처 직원들은 대통령을 지키라는 불법적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공무원의 명령 이행 체계에서 명령이나 지시가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원칙을 확인한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스트레스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앞으로 적잖은 혼란과 함께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함으로써 이른바 국격을 제고하고 국제사회에 신뢰를 주어 대외신인도를 높일 것이기에 장기적으로는 더 긍정적이다. 더 강한 민주주의가 더 경제를 발전시킨다. 문제점을 보안해 정치 시스템을 더 고도화하고 개선하는 노력 또한 병행되기를 기대한다.
윤 대통령이 체포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뉴스를 점검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느라 약간의 불편을 겪었고 업무에서도 비효율이 나타났다. 체포로 사실상 큰 줄기가 결정됐기에 마음이 어느 정도 홀가분해졌고 밀린 일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하나 남은 꺼림칙함은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기독교는 윤 대통령의 반헌법적 폭거를 옹호하고 체포를 저지하는 반민주주의 세력의 대표 집단으로 매도됐다. 사실 매도보다 증명이 더 맞는 말 같다. 모든 기독교인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 항변에 힘이 실릴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이 탄핵 등 민주주의 대 반민주주의 충돌이 일어나면 대체로 세대 갈등이 뚜렷했다. 한데 이번에는 세대갈등이 줄어든 반면 기독교의 반민주주의화가 더 확고해졌다. 전광훈씨가 목사 직함으로 뉴스의 뜨거운 현장을 누비고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흔드는 탄핵반대 집회의 주축 중에 기독교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전씨가 더는 목사가 아니며 성조기를 흔들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기독교인 아니라고 한들 사회 일반의 인식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정상적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런 상태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과 목사가 생각보다 많아 다수를 점할 것 같다는 불안이 든다. 문제 있는 기독교인 일부의 일탈이 아니라 현재 개신교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병폐의 발현이 아니었을까.
1월 16일 서울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일부 기독교단체가 모여 ‘비상계엄령 전후 주요 한국 교회의 행태에 대한 규탄과 참회 촉구 연합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12·3 내란 사태에 이르는 과정에서 국내 개신교계 주요 지도자들은 굳건한 종교적 지지·후원 역할을 함으로써 정권의 타락상과 결을 같이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간 개신교회들은 빈부격차·불평등·남북 갈등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교회세습·성범죄·재정횡령·권력남용 등 해묵은 폐습들을 외면한 종교적 위선을 저질러왔다”고 지적했다.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비판을 받은 기독교 주류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콧방귀를 뀔 것 같아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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