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도와 전통적 가치를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여러모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과 닮아있다. 미국 것이라면 뭐든지 따라 하는 윤 대통령에게 이 말을 해준다면 얼마나 좋아할는지 모르겠으나, 두 사람의 등장은 그들의 임기 내내 괴팍스러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한미 양국 국민에게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나 영국 같은 의원내각제라면 조금이라도 국민의 눈 밖에 나면, 당장에 선거를 다시 치러 갈아 치울 수도 있지만, 대통령제인 까닭에 지지율 10%대라 해도 탄핵되지 않는 이상, 임기 끝까지 국민의 속앓이가 클 수밖에 없다.
우선 두 사람은 복수의 화신이다. 트럼프가 미 행정부의 최고 직책에 논란의 인물들을 지명한 것은 첫 임기 동안 갈등을 빚었던 연방 정부의 국가기관들에 대한 그의 노골적인 보복 의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복수는 결코 대통령 임기의 청사진이 될 수 없다.
지난 11월 5일 미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는 상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에게 자신이 행정부 최고 직책에 지명한 인사들에 대한 인준 권한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권력 분립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중요한 과정인 인준 심의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인준 심의는 논란이 되는 인물들의 임명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트럼프가 지금까지 발표한 몇몇 인사들의 이름을 보면 그의 인선 기준이 전문성보다는 맹목적인 충성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윤 정권이 개각 때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의중을 전혀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함량미달의 후보들을 냈다가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인물들을 막무가내로 임명을 강행한 것과 흡사하다.
트럼프가 등용한 인사들의 면면은 하위직 공무원보다 못한 경륜과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과 술자리를 자주 가진 검찰 조직원이나 친구라고 해서, 또는 그의 부인과 친분이 있다고 해서 고위직에 올라 호가호위하는 꼴을 연상케 한다.
예를 들어, <폭스 뉴스>의 보수적 진행자인 피트 헤그세스는 공화당을 향한 아첨을 유일한 편집 방침으로 삼아온 인물로, 국방부 장관에 지명되었다. 하지만 이 직책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저명한 공직자들이 맡아왔으며, 과거 군 복무 경험이 있더라도 헤그세스는 그들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폭스 뉴스>를 통해 활동했던 전 민주당 하원의원 털시 개버드가 18개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으로 지명된 것 역시 우려를 낳는다. 국가 안보와 같은 민감한 분야에 대한 자격 부족과 더불어 과거 음모론적인 발언이나 러시아 및 그 동맹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는 의문을 제기한다.
공화당 하원의원 맷 게이츠(플로리다주)를 법무부 장관(미국의 검찰총장 겸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 역시 충격적이다. 그는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미 하원 윤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인물(성비위로 지명 8일 만에 사퇴)로, 2022년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한 이후 하원을 무질서하게 만든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인선의 배경에는 미국 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기관들에 대한 공개적인 경멸이 자리 잡고 있다. 트럼프는 연방 정부의 예산과 규제를 대폭 삭감하는 임무를 맡길 목적으로 미국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허위 정보의 강력한 매개체로 전락한 소셜 미디어와 연관된 사람을 지명한 데 대해 환호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무지하거나, 둘 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인선이 트럼프가 첫 임기 동안 충돌했던 연방 정부 기관들에 대한 보복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어리석고 무지한 일이다.
그러나 복수혈전은 결코 대통령의 청사진이 될 수 없다. 오랜 경륜의 미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그에게 이를 분명히 상기시켜야 한다. 어쩌면, 복수심에 불탄 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라 할 인사들에 대해 수하의 공권력을 동원해 언론플레이와 압수, 체포, 기소, 재판 등 수많은 괴롭힘으로 날밤을 새우다가 최악의 지도자로 추락한 것은 트럼프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줄 법하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남의 말에 귀를 막고, 속사포로 말하는 공통점이 있다.
얼마 전, 김건희 여사의 국정 농단과 관련한 대국민 기자회견장에서 윤대통령은 “아내의 내조가 국정 농단이라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야할 것”이라고 강변하고, 트럼프 당선인의 지인들과의 친분을 강조하는데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미 상원의원, 주지사,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그런 사람들이 자신과 트럼프가 “케미”가 맞을 것이라고 했고, 그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다리를 잘 놔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잘 묶어주겠다”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말했다.
자신의 휴대폰 전화번호까지 알려줬다고도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이 사람 저 사람 다리를 놓아야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친해질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트럼프 집권 후 한국 수출이 최대 450억달러(약 60조원) 줄어들 수 있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오고, 벌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비롯해, 관세, 환율,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각종 경제 분야에서 미국의 거센 통상압력이 예고되어 윤 대통령이 말한 ‘트럼프와의 케미’가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하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윤 대통령이 술친구들로 둘러싸여 정치적 라이벌을 척결하는 ‘보복 정치’를 그만두고, 널리 인재를 구해 험난한 외교・국방・경제・사회현안에 집중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