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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시해되었다
대통령이 시해되었다
  • 김민정 |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9.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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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야기다.

2024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에서 대통령 장일준은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에 의해 살해당한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대통령을 살해하고자 결심한다. 한 사람은 실패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의 발판에 이전의 실패가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대통령 살인사건의 공범이다. 대통령 살해를 다룬 드라마 <돌풍>은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실에서 대통령 암살 같은 극도의 폭력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합법적인 영역 안에서 충분히 건설할 수 있다. 그렇게 믿고 있으며 그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2024년 10월 16일 우리는 서울시 교육감을 포함한 5개 지역의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왜, 2024년 드라마 <돌풍>은 ‘돌풍’을 일으킨 것일까.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2024년 대한민국에서 왜 이런 드라마가 출연했고 그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 암살 시도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의 암살을 다룬 드라마가 ‘오늘 대한민국 톱10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국내 가입자 수는 1,174만 명이고, 이 숫자는 서울시 인구 936만 명보다 더 많다. 드라마 <돌풍>의 대중적 호응은 드라마 ‘안’의 문제가 아니다. 드라마 ‘밖’의 문제다.

 

그 사람이 범인이다

이경영을 잡아라. 몇 년 전,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배우 이경영이 범죄수사물에서 최종 빌런 역을 많이 맡았기 때문에 그가 화면에 나오는 순간, 시청자들은 바로 그가 범인임을 알아채고는 그의 검거를 응원했다. 범죄수사물은 ‘수사’가 주요 포인트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수사 과정에 참여하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추리하며 극적 재미를 느낀다. 타 장르와는 구별되는 장르적 특성이 바로 이러한 ‘놀이’로서의 시청방식이다. 그런데 범인을 이미 알고 시작하는 범죄수사물이라니, 뭔가 이상하고 기괴하지 않은가.

최근 수사관 캐릭터는 법의학자나 프로파일러와 같은 다양한 전문직 직업군으로 확장되고 있다. 불법적인 영역에서의 사적 제재까지 포함한다면 범죄자를 추적하는 캐릭터는 전문직화에 이어 초인화되는 경향까지 보인다. 속마음을 읽어내거나 공간을 이동하는 것과 같은 초능력을 가지기도 하고, 막강한 부와 권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하다. 때로는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으로 외국에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까지 수사관 캐릭터는 진화를 거듭하는 것일까. 범죄수사물은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관과 추적을 당하는 범죄자의 팽팽한 대립 구도로 진행된다. 수사관이 강해졌다는 것은 범죄자 또한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범죄수사물에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생존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이제는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최근 드라마 속 범죄자는 많이 가진 자, 모두 가진 자, 즉 사회 기득권층이다.

기득권 범죄의 경우, 드라마 초반 이미 범인이 밝혀진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슈퍼 갑이기 때문에 그들을 범인으로 증명하거나 검거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기득권 범죄자는 자신의 부와 권력을 악용하여 수사관의 추적을 방해하고 역으로 수사관을 사건의 피해자로 전락시킨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관계의 역전이 발생한다. ‘범인을 추적하는 수사관과 추적을 당하는 범죄자’에서 ‘수사관을 추적하는 범죄자와 추적을 당하는 수사관’으로의 대전환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데도 검거할 수 없는 상황에 분노하는 것은 드라마 안의 수사관만이 아니다. 드라마 밖에 있는 시청자도 울분이 차오른다. 눈앞에서 목격한 절대악, 그리고 불의를 향한 대중적 분노. 그 분노를 양분 삼아 탄생한 것이 바로 ‘다크 히어로’다. 다크 히어로의 사적 복수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법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 법은 가해자 편이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법을 통해서는 죄값에 상응하는 처벌을 할 수 없고, 범인을 응징하지 못한다. 분노로 시작한 대중의 정서는 절망과 실망으로 악화하면서 다크 히어로의 사적 제재를 향한 은밀하지만 뜨거운 호응을 보내게 된다.

 

최악의 악

끝없는 절망의 끝에서 한국 드라마는 문제의 본질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악의 기원에 대한 집요한 추적.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되며 최고 시청률 70%를 기록한 전설적인 범죄수사 드라마 <수사반장>은 2024년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악에 관한 본격적인 추리는 지금부터라고 선전포고하듯 ‘1958년’과 함께 왔다.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은 ‘시작의 시작’으로 집요하게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은 청년 시절의 ‘박영한’이다. 원작 방영 당시 배우 최불암이 연기한 박영한은 모범적인 경찰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국민 형사’ 박영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극 중 ‘국민 형사’ 박영한의 정신적 멘토는 유대천 수사반장으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반민특위는 공공연하게 은폐되어온 대한민국 흑역사의 한 페이지다. 친일파 청산을 위해 출범한 공식 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친일 경찰의 습격을 받고 간첩 혐의로 체포당하며 온갖 방해 공작과 회유에 시달렸다. <수사반장 1958>은 정권의 안정과 권력을 위해 반민특위 활동을 방해하고 심지어 반민특위 위원을 암살하려고 한 친일 경찰들을 비호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드라마 밖으로 소환해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어떠해야 하는가.

<수사반장 1958>은 수사반장 유대천과 대통령 이승만, 대조적인 행보를 보인 두 리더를 통해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가장 급진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리더는 리더다워야 한다. 드라마는 이승만 독재 정권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며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잘못된 시작’. 독립운동가 수백 명을 잡아 고문하여 죽인 친일 경찰 노덕술은 이승만 대통령의 비호 아래 풀려났고 반민특위가 조사한 친일 관련 사건 688건 가운데 38건, 0.6%만이 재판 종결됐다. 이때부터 역사 왜곡은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수사반장 1958>은 역대 MBC 금토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대한민국 역사 바로 알기’ 열풍의 선두에 섰다. 내일은 오늘과 어제의 연장선이며 미래는 과거로부터 온다. 친일 청산은 퇴보가 아니라 진보다. 그리고 ‘당당한 대한민국’을 위한 필수적인 통과의례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에 새 교육과정이 적용돼 교과서가 바뀐다. 그중 문제가 된 것은 중학교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다. 조선총독부와 일제 식민정책을 미화·긍정하는 식민주의 사관과 독립운동과 독립전쟁을 폄하하거나 왜곡을 조장하는 식의 서술이 다수 발견되었다. 일본 문부성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부의 검증을 받고 출간된 대한민국의 역사 교과서라는 것, 그 사실 때문에 ‘그’는 한국의 대통령인가, 일본의 대통령인가, 라는 탄식이 드라마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3일’

한국 드라마에서 대통령의 암살 시도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드라마는 2014년에 방영된 드라마 <쓰리 데이즈>다. 하지만 대통령 살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돌풍>과 아주 다르다. <돌풍>이 대통령을 어떻게 살해할 수 있을지 치밀하게 전략을 짜는 총리들의 이야기라면 <쓰리 데이즈>가 대통령을 암살로부터 지켜내는 경호관들이 중심 서사를 이끌고 나간다. 2014년과 2024년,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 드라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 암살 사건의 배경에 대통령의 과오가 있다는 점이다. <쓰리 데이즈>의 대통령 이동휘는 미국 무기업체를 위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자 선량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고, <돌풍>의 대통령 장일준은 초심을 잃고 재벌과 결탁하고 아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국무총리에게 부패 혐의를 씌워 제거하려고 하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은 이후 상반된 행보를 선보인다. 이동휘는 본인의 과오를 반성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경호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반면에, 장일준은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질 것이 두려워 사건에 얽힌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국민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대통령과 자신을 위해 국민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대통령. 그들의 선택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동휘는 살았고, 장일준은 죽었다.

이동휘의 대한민국은 살았고, 장일준의 대한민국은 죽었다.

리더가 중요한 만큼 리더를 선택하는 우리의 투표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그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신의 대한민국은 지금 살았는가, 죽었는가. 10월 16일은 인구 천만의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는 날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쓰리 데이즈’뿐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딱 3일. 그 3일 안에 서울시 교육의 리더가 정해지고, 서울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미래, 그리고 다음 세대의 미래가 결정된다.

10월 16일, 한 명의 투표가 한 나라의 미래를 바꾼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르몽드문화평론가상, 그리고 2022년 중앙대 교육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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