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금의 시대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문화를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것(everything in the world)’의 해체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 기술이라는 요소가 작동하는, 이른바 ‘기술 사회(Technological Society)’가 된 것이다.
프랑스의 기술사회학자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이 말한 기술 체계는 도구적 의미의 기술(technique)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조를 결정짓는 시스템으로서의 기술(technology)을 포괄한다. 디지털은 이러한 기술 체계로서의 현대사회를 운용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든 것의 탈경계, 해체와 조립의 변증법
모든 일상이 디지털 기기의 사용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매장이 점점 늘어나는가 하면, 손에 쥔 작은 스마트폰 기기 하나가 여타의 매체를 대체하는, 그야말로 디지털 월드이다.
디지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COVID-19를 지나며 모든 영역에서 자연스러운 환경이 되었다. 일찍이 시간의 공간적 초월은 라디오라는 대중매체를 통해 가능하게 되었으며, 컴퓨터의 등장은 시간과 공간의 동시적 초월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일상뿐만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창의적 영역과 과학이라는 지성적 산물에도 기술로 인한 융합이 강화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을 ‘두 문화(The Two Cultures)’로 구분한 찰스 스노우(1905~80)는 양자의 대립과 상호 이해의 불가능성을 조명한 바 있다.
그러나 두 문화로부터 새로운 제3의 문화가 탄생할 수 있는 이유가 디지털 기술을 대표하는 컴퓨터의 도구적 활용에 있다고, 인터넷 아티스트인 빅토리아 베스나(Victoria Vesna)는 말한다. 베스나의 주장대로, 현대미술은 작품의 질료와 창작 과정에 과학적 원리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사물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작업을 뜻하는 ‘테크네(Techné)’가 예술을 의미하는 ‘Art’의 어원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오래전부터 예술과 과학은 상호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현대미술은 기술을 예술적 소재로 사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과학자와의 협업을 통한 예술작품의 생산 주체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테크네로의 귀환을 넘어 새로운 창조를 향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창조란 모름지기 그것을 성취하는 주체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두 문화로 분리되었던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에 의한 예술적 성취는 모든 것의 해체로부터 다시 조립된 변증법적 창조의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이에 그들을 창작자가 아닌 창조자로 명명하려 한다.
창조자의 해체와 조립, 관람자의 추상과 구상
국내의 경우 예술가와 과학자가 주체적으로 협업하는 전시가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수림문화재단의 예술과 과학의 융합프로젝트 <Artists' View of Science>(이하 AVS)는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주제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24년 다섯 번째 전시회에서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초기 단계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한국고등과학원(KIAS)의 과학자가 예술가와 함께 지속적인 협업을 수행하였다.
2022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재직 중인 한국고등과학원의 초학제 연구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기초과학의 독립적인 연구 수행과 더불어—분과 학문의 연구주제와 사유방법을 접목한 자유롭고 선도적인 연구를 견인하기 위함이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네 분야로 운영되는 독립연구단의 주제인 ‘느린 과학, 낮은 기술, 거꾸로 선 예술’, ‘비인간: 인간을 넘어서는 기술적 존재 탐구’, ‘동기와 욕구’, ‘거대국악데이터분석순수이론’을 보더라도, 과학과 타 학문이 공명하는 지점과 프로그램의 통섭적인 지향성을 알 수 있다.
한국 기초과학의 세계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학제 간 연구에서 나아가, 연구 환경의 개방을 통해 기초과학의 학문적 기여를 확장하려는 기관의 정체성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금번 김희수 아트센터에서 열린 <앗상블라주: 조립된 세계>는 한국고등과학원의 이론물리학자가 연구하는 비가시적인 기초과학을 작품의 원리로 삼았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긴밀한 협업 아래 양자역학과 천체물리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여러 형상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예술가와 과학자의 무한한 상호 침투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디지털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재조립한 디지털 영상이 작품의 주요한 매개체라는 점이다. 영화의 몽타주처럼, 일상적 이미지와 상상적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물리적 세계를 해체하여 예술적 신(新)세계를 조립해낸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디지털은 이처럼 모든 영역의 탈경계를 주도하는 행위자적 물질이라 할 만하다.
전시회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의 변주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천체물리학자 박창범 교수와의 협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 변주한 박민하 작가의 <Shadow Planet>과 <Dark Matter>, 그리고 무진형제 작가의 <두 개의 창공(蒼空)(Double Cosmoses)>이다.
두 번째는 이론물리학자 이필진 교수와 협업하여 보이지 않은 것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으로 변주한 강지윤 작가의 <바깥의 안쪽(Outside In)>과 <보기의 실패의 보기(View of the Failure of View)>, 그리고 조충연 작가의 <Impossible Inaudible(모든 것은 (흔)들린다)>이다.
이들 중 <두 개의 창공(蒼空)>은 사진 필름이라는 물질의 미시 세계와 우주의 거시 세계가 두 대의 환등기를 통해 각각 80개의 이미지로 재현된다. 작가의 미시적 관찰에 의해 부분들로 해체된 어머니의 사진은 우주의 모호한 언어와 조우하여 기술적 물질로 현전화된다.
우리의 시선이 향하는 창공은 하나일진대,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기술 이미지의 창공은 죽음 이후의 어머니가 재존재화된 초월적 공간이자 과학자의 관찰로 데이터화된 사실적 공간, 즉 ‘두 개의 창공’으로 승화된 것이다(김소영, AVS <앗상블라주: 조립된 세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으로의 변주-과학적 은유와 예술적 혁명 그 사이에서’ 리플릿 중).
이러한 예술적 수행은 관람자로 하여금 예술의 가시적 물질 이미지에서 과학의 비가시적 탈물질 이미지를 추상하고 다시 후자에서 전자로 구상해가는—예술가와 과학자의 해체와 조립처럼—추상과 구상의 변증법적 감상에 이르게 한다. 이로써 또 다른 주체가 된 관람자는 예술작품의 두 주체가 창조한 앗상블라주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관람자이기도 한 필자가 2025년 AVS의 탈경계적 침윤을 기다리는 이유 역시, 디지털 기술에 의한 추상과 구상의 변증법적 수행을 고대하기 때문이다.
창조자의 숭고한 환희(joie)를 찬미하며
기술 중심의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정적이다. 스마트폰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디지털 플랫폼은 기술적 사물이라는 존재론적 위상을 넘어, 개인의 또 다른 자아가 생동하며 디지털 세계의 타자들과 관계 맺는 사회적 장(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급변하는 기술 중심시대에 창조적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환희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고 심각한 질병을 앓으면서도, 창조적 환희(joie)의 숭고함을 아래와 같이 역설하였다.
환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창조가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창조가 더 풍요로울수록 환희는 더 깊어진다. (...) 살아 있고 지속하는 작품을 만들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사람은 더 이상 찬사에 관심이 없고 영광 이상의 것을 느낀다(앙리 베르그송, 엄태연 옮김, 『정신적 에너지』, 그린비, 2019, 33~34쪽).
그가 말하는 창조적 환희는 욕망의 성취를 의미하는 일차적 쾌락(plaisir)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고 지속하는 작품’을 만드는 창조자에게 부여되는 더 높은 층위의 특권이다. 새로운 융합작품을 완성하는 예술가와 과학자야말로 창조적 환희의 주체들이며, 이들의 협업은 베르그송의 표현대로 ‘생의 확산이자 생의 지속’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창조적 행위를 찬미하고 함께 참여하기를 갈망한다. 나아가 이러한 작업에 강하게 침투하는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정위(正位)해 나갈지, 이에 관한 사유는 창조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부여된 공통의 과제일 것이다.
글·김소영
문화평론가 겸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기술 중심의 탈경계적 대중문화에 관한 다학제적 연구를 수행 중이다. 한국영화학회 국제학술상임이사와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브레히트학회 공연이사 및 『영화연구』 편집위원과 『스토리콘텐츠』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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