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킴스 비디오>는 장르 상 다큐멘터리로 분류된다. 그러나 <킴스 비디오>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작품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며 ‘킴스 비디오’의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건은 사전에 연출된 극적 사건이다. 동시에,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의 유령들’을 소환해 방치된 소장품을 해방하는 감독의 시도는 어딘가 아슬아슬함을 불러일으킨다. 자칫하면 실제로 도둑이 될 뻔했기 때문이다!
마치 ‘법 위에 선’ 듯한 감독의 시도는 과거에 해적판을 암암리에 유통했던 킴스 비디오의 운영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이 이들을 위험한 행동으로 이끄는가? 아니, 무엇이 이들이 위험을 감수하게 만드는가? 이들을 향해 제기된 질문은 영화를 보면서 방향이 바뀐다.
실제 범행의 현장이 될 뻔했던 장면을 목격하는 관객은 감독과 미묘한 공범 의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 중 누구도 ‘해적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가?
<킴스 비디오>라는 과거 복원 프로젝트
<킴스 비디오>는 실제로 1980년대에 뉴욕 이스트빌리지에서 운영되었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의 방대한 소장품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발하게 이용되지 않았던 80년대에 세계 각지의 영화를 구할 수 있었던 킴스 비디오는 뉴욕 영화광들의 성지였다. 그곳에 들어가면 “금광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거나 “이상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는 말로 그곳의 당대적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영화광들에게 해적판은 구하기 어려운 영화를 때맞춰 접해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아무리 다수의 호응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더라도 해적질은 엄연히 불법이라는 사실. 실제로 킴스 비디오는 FBI의 급습을 받거나 감독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무죄를 받았지만, “법 위에 선 기분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하는 전 직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데이빗 레드몬 감독 역시 킴스 비디오의 단골 회원이었다. 언제나 영화와 가까이 있고 싶었던 그는 킴스 비디오에서 집과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고 체험담을 전했다. 영화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과거에 있었던, 지금은 사라진 킴스 비디오를 향한 감독의 그리움(nostalgia)에서 말이다. 디지털 전환의 과정에서 직격탄을 맞은 킴스 비디오의 김용만 대표는 폐업을 결정하고 소장품을 기증한다는 공고를 낸다. 수십 개의 제안서와 기관들을 물색한 끝에, 그는 한 사회학자의 제안을 수락해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소도시 살레미에 소장품을 기증하기로 한다.

국외 반출이라는 결정은 당시 직원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소장품 처분은 사실상 대표의 권한이다. 결과적으로 소장품은 살레미로 향했다. 그리하여 수년 후, 감독은 소장품을 만나러 이탈리아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창고에 방치된 비디오테이프 더미를 마주한다. 건물 외벽에 걸린 킴스 비디오의 빛바랜 간판이 암시하듯, 방치된 소장품은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에 얽혀 있었다. 마피아를 비롯한 정치 세력과 얽혀 있던 것이다.
감독은 방치된 소장품을 구하기 위해 김용만 대표를 만나러 한국에 오지만, 어렵게 만난 그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나는 손 뗐어요, 내 권한 밖이에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도 사업가일 뿐인 걸까? 또는, 킴스 비디오를 접는 과정에서 그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감독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하여 그가 떠올린 것은 울라이의 단편 작업 <예술에는 범죄가 가미된다(There Is a Criminal Touch to Art)>(1976)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아르고(Argo)>(2012)였다. 영화를 구하기 위해서 영화를 활용한다! 이것이 감독의 전략이었다.
감독은 살레미 시장에게 영화를 찍는다는 명목으로 소장품이 방치된 건물 내부의 촬영 허가를 받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니까, 실제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짐 자무시, 찰리 채플린, 마야 데렌, 앨프리드 히치콕, 장 뤽 고다르, 아녜스 바르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영화의 유령들’을 소환해 벌인 한밤중의 기이한 행각은 고스란히 <킴스 비디오>에 담겼다. “영화를 찍어도 된다는 허가는 받았어요. 그 영화가 절도였죠.”
인터넷으로 옮겨간 해적들
킴스 비디오가 운영되었던 방식과 <킴스 비디오>(라고 부르고 킴스 비디오 복원 프로젝트라고 읽는다)가 작동하는 방식은 상당히 닮아있다. 이들은 마치 “법 위에 선” 것처럼 행동한다. 허가 없이 영화를 복제해 유통하고, 허락 없이 비디오테이프를 실어 나른다.(1) 그러나 이들의 행동에는 분명 일반적으로 범죄라고 부를만한 것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물론 저작권과 소유권을 위반하는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재했던 장소로서의 킴스 비디오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로서의 <킴스 비디오>에는 살펴볼 만한 지점이 있다.

왜 굳이 그것에 주목하느냐고? ‘해적질’로 통칭할 수 있는 이들의 행위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과거 검열 등의 정책으로 국내에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들을 암암리에 유통하던 사례가 있었다. 굳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해적질은 현재에도 여전히, 그것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해적질은 불평등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이퍼링크를 따라 이동하는 웹 서핑이 일반화된 오늘날, 해적들은 인터넷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쉽고 간편한 디지털 복제 기술에 기대어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불법 복제해 유통하는 행위가 가장 흔하다. 이에 미국에서는 2011년에 온라인 해적 행위 방지법(Stop Online Privacy Act)이 발의되었다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해 보류된 바 있다. 그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현재, 온라인 해적질의 리더 격으로 비난받던 구글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콘텐츠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편, 과학자 알렉산드리아 엘바키얀은 2011년 ‘사이허브(Sci-Hub)’라는 논문 무료 공유 사이트를 만든다. 고소를 당해 사이트 폐쇄를 통지받기도 했지만, 그는 주소를 옮기며 여전히 사이허브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예술가 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미디어아트, 실험영화 등 아방가르드 작업을 아카이빙하는 사이트 ‘우부웹(UbuWeb)’을 2023년까지 운영했다. 사이허브와 우부웹이 공통으로 내세우는 바가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 및 이용 가능성이라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비전문가 영화애호가를 자처하는 한민수는 저서 『영화 도둑 일기』에서 오늘날 인터넷에서 영화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해적질의 실체를 파헤친다. 해적질이야말로 제도에 편입되지 못하는 영화를 보존하고 유통하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그의 논의는 감독이 <킴스 비디오>의 말미에 던지는 질문과 겹친다.
“어떤 물건, 어떤 영화가 보관할 가치가 있는가?”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영화 중 보존되는 작품은 일부다. 그런데 보존할 영화를 선택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선택의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는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접점이 주로 산업적·경제적 논리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질문들은 쉽게 좌초되고 만다.
반면, 해적질이 영화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애정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을 제공한다. 상업적 목적과는 거리가 먼 이들의 해적 행위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영화가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를 일상의 일부로 여기는 경향은 VHS와 OTT로 영화를 경험하는 세대에게 공통으로 관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에게 영화는 현실이었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에게 안전한 시공간은 (현실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 속 세계다. 그가 수많은 영화 클립과 푸티지 영상을 뒤섞어 무엇이 현실(reality)이고 무엇이 허구(fiction)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킴스 비디오>를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글·김윤진
영화평론가·미술비평가. 202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GRAVITY EFFECT 미술비평상을 수상하였다.
(1) 영화에서는 내레이션을 통해 감독이 소장품 무단 반출 이후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 알려준다. 살레미와의 수년에 걸친 협상과 그 밖의 40여 개 기관과의 협의 끝에, 감독은 김용만 대표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킴스 비디오를 현재로 되살리는 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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