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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영화가 변주한 미래, 패스티쉬와 신파의 만남
한국 SF영화가 변주한 미래, 패스티쉬와 신파의 만남
  • 송영애 | 영화평론가
  • 승인 2023.06.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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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 공개된 <승리호>(조성희)와 <서복>(이용주), 2022년과 2023년에 공개된 <외계+인 1부>(최동훈)과 <정이>(연상호)는 2002년에 공개된 <예스터데이>(정윤수), 2003년에 공개된 <원더풀 데이즈>(김문생)와 <내츄럴 시티>(민병천) 이후 오랜만에 연달아 공개된 한국 SF영화다.

그사이 국내 시각효과 기술이 투입된 대규모 상업영화는 여러 편 제작됐지만,(1) 주로 재난, 자연재해, 초자연적 현상이나 사건, 역사적 현장 등을 시각화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과학적 사실이나 가설을 바탕으로 미래나 우주에서 외계인, 복제인간, 로봇 등이 등장하는, 글자 그대로 SF영화 즉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영화’는 거의 없었다.

 

<예스터데이> 포스터

 

<내츄럴 시티> 포스터

사실 늘 그랬다. 1919년 한국영화 제작사가 시작된 후, SF영화는 꾸준히 제작된 장르는 아니었다. 1960년대는 돼야 SF영화로 평가받는 작품이 등장하는데, 1960년 <투명인의 최후>(이창근), 1967년 <우주괴인 왕마귀>(권혁진),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정도가 초기 한국 SF영화로 거론된다.(2) 이후 어린이 대상 영화가 좀 더 제작됐지만, 활발한 제작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예스터데이>, <원더풀 데이즈>, <내츄럴 시티>가 제작됐지만, 이후에도 역시 지속적인 제작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투명인의 최후> 신문광고(조선일보, 1960.8.31)

한국 SF영화 계보를 정리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는 최근 SF영화들이 그려내고 있는 우리의 미래를 살펴볼까 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승리호>와 <정이>를 중심으로, <서복>과 <외계+인 1부>도 관찰 대상이다. 네 작품 모두 호불호가 갈리고, 기준에 따라 엇갈리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패스티쉬’와 ‘신파’가 만난 ‘변주’라 부르고 싶다.

 

패스티쉬, 후발주자의 특혜

패스티쉬(Pastiche)는 패러디(Parody)와 달리 ‘원전을 알 수 없는 모방’을 의미한다. ‘혼성모방’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단순 모방이나 짜깁기라는 부정적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할 여지도 있다. 100% 오리지널 자체가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에 ‘모방’에 서열까지 매기며 평가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기도 하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주장에 기대어 보면, 제임슨은 패스티쉬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 특징 혹은 관행으로 본다. 다양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대량의 패러디가 이뤄지다 보면, 결국 원전을 파악하기 불가능해지고, 풍자나 재해석의 의도도 약해져, 스타일이나 분위기의 모방인 패스티쉬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 패스티쉬는 향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제임슨은 <스타워즈> 등의 영화를 향수 영화로 칭한다. 비록 인류의 과거를 다룬다는 설정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그려내는 과정에 공주와 기사가 존재하던 중세 시대의 생활양식, 스타일 등 원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옛 ‘분위기’를 패스티쉬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3) 

최근 자주 언급되는 ‘레트로’도 패스티쉬의 양상으로 볼 수 있다. 특정 시기나 스타일을 진지하게 재해석하거나 재평가까지 하지는 않고, 명확한 원전을 찾기도 어렵지만, 사람들은 그를 통해 향수를 느끼거나 새로움을 느끼는 걸 즐긴다. 

영화도 그렇다. 영화는 내용과 형식적으로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하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그 자체가 모방물이다. 영화를 보며 다른 영화가 떠오르는 것은 모방물의 모방물이 떠오르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오리지널을 찾아내는 것은 더욱 묘연해진다. 이렇게 보면, 영화 만들기란 수많은 현실과 현실의 모방물인 영화 등을 그럴듯하게 패스티쉬하며 재구성하고 변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SF영화는 더욱 그렇다. 팩트체크조차 불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기반한 상상에 더불어 다른 영화를 참고 자료 삼아, 세계관을 공유하거나 변형하고, 여러 요소를 변주한다. 과연 한국 SF영화가 그동안 수없이 접해온 SF영화의 영향력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기존 영화 수십 편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SF영화의 모방 대상으로 자주 언급되는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역시 패스티쉬 분석이 가능하다. 1982년 영화이니 <메트로폴리스>(프리츠 랑, 1922)를 비롯한 이전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건축 등 범위도 넓다. 영화에 나오는 사진과 베르메르 회화가 비교되기도 하고, 타이렐사 건물과 데커드 형사의 집 내부 등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피라미드와 비교되기도 한다. 재해석이라기보다는 미래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과거의 분위기 참고 즉 패스티쉬라 할 수 있다.

한국 관객들은 수많은 (주로 미국) SF영화를 수십 년 동안 접해왔다. 영화를 만드는 이나, 보는 이 모두 수많은 SF영화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특정 영화 제목이나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도, 익숙하거나 낯익은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의도했든 안 했든 기존 영화를 통해 누적된 기억들이 영화 속 미래로 변주됐다. 기존 영화에 대한 오마주나 재해석인 경우도 있겠으나, ‘유사한 느낌이다’ 정도의 표현이 더 적절한 패스티쉬라 할 수 있다.

 

<승리호> 포스터

<승리호>와 <정이>가 그려낸 미래는 디스토피아다. 덕분에 매우 많은 영화가 떠오른다. 시간과 공간적 배경 설정에서부터 특정 쇼트의 구도까지 곳곳에서 어디선가 접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패스티쉬 양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승리호> 속 2092년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그래서 지구 밖 우주 공간에 UTS(Utopia above The Sky)가 건설돼 있다. 물론 모두가 이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주 쓰레기 수거선 승리호는 우연히 ‘꽃님’이라는 로봇을 만난 후, 꽃님을 노리는 세력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어느새 가족이 돼버린 꽃님을 구하는 것이 곧 지구를 지키는 일임을 알게 된다. 

<승리호>에 등장하는 오염된 지구, 우주 식민지, 선택받은 소수, 신처럼 행세하는 리더, 음모 등은 SF영화에서 자주 보아온 설정으로 <승리호> 속 여러 패스티쉬로 이어진다. 오염된 서울을 보여주는 전경 쇼트, 우주에서 벌이는 추격 장면 등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승리호>가 소환하는 영화는 시기와 장르를 초월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스타트렉> 시리즈, <스타워즈> 시리즈, <카우보이 비밥> 시리즈를 비롯해 <이온 플럭스>(캐린 쿠사마, 2005), <마이너리티 리포트>(스티븐 스필버그, 2002), <오즈의 마법사>(빅터 플레밍, 1939) 등까지 다양하다. 

 

<정이> 포스터

<정이> 속 2194년 지구도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물바다가 되자, 지구와 달 사이에 80여 개의 쉘터가 건설됐다. 그런데 그중 3개가 아드리안 자치국을 선언하며, 연합군과 아드리안 군의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전투 중 식물인간이 된 전쟁 영웅 윤정이 팀장의 뇌 정보를 복제해 전투 AI 로봇으로 개발 중이다. 오염된 지구, 로봇, AI, 뇌 복제 등도 그동안 SF영화에서 종종 보아온 설정이다. 개발 프로젝트의 팀장이자 정이 팀장의 딸인 서현 팀장이 전철 차창 밖으로 보는 도시 전경, 수없이 로봇 정이의 얼굴 클로즈업 등에서도 여러 패스티쉬를 발견, 혹은 느낄 수 있다. 

 

<메트로폴리스> 포스터

<정이>가 소환하는 영화도 시기와 장르, 국적을 초월한다. <건담> 시리즈, <공각기동대> 시리즈, <로보캅> 시리즈를 비롯해, <메트로폴리스>(프리츠 랑, 1922), <이색지대>(마이클 크라이트, 1973),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 <아이 로봇>(알렉스 프로야스, 2004) 등이 떠오르는 지점이 있다. <서복>도 복제인간, 신처럼 행세하는 개발자, 모자 관계 등의 설정 덕에 <에이.아이.>(스티븐 스필버그, 2001), <아일랜드>(마이클 베이, 2005), <더 문>(던칸 존스, 2009) 등이 떠오르는 부분이 있다. 

 

<서복> 포스터

기존 SF영화를 연상시킨다는 것은, 한국 SF영화가 피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이는 후발주자의 불리함일 수 있지만, 동시에 유리함일 수도 있다. 어차피 온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어려운 시대라면, 기존의 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패스티쉬는 후발주자의 특혜일 수 있다. 다만 가능하면 신선한 변주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신선하다는 것은 완전히 새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니 절대화할 수도 없다. 다만 ‘새로움’이라는 가치에 갇힌 영화 제작이나 감상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사실 2023년 현재, 챗GPT가 생산해내는 여러 결과물을 보며, 인간에게 오리지널과 모방물을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있다. 모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데, 원전이 있는 모방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승리호>, <서복>, <정이>는 현실에서 접한 듯한 사건 사과와 현실의 모방 재현물인 기존 SF영화 속 요소들을 패스티쉬해 변주하며 나름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이끌어간다. 승리호 선원들은 꽃님을 구하면서 지구도 구해야 하고, 복제인간 서복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서현은 엄마 정이의 뇌 정보를 이식받은 로봇 정이를 탈출시키고 싶어한다. 

 

변주된 미래 속 우리의 일상

그렇다면 패스티쉬를 통해 변주된 <승리호>, <정이>, <서복>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분명 ‘우리화’된 모습이 존재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계+인 1부>는 아예 과거로 시간여행을 갔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과거와 현재, 기존 영화들이 혼재된 향수도 만들어낸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영화와는 다른 양상이다. <원더풀 데이즈>, <내츄럴 시티> 속 미래에서는 한국, 한국인 즉 우리를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어쩐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미래에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던 걸까? <원더풀 데이즈> 제이와 시몬, <내츄럴 시티>의 R과 시온은 이방인이다. 그들이 사는 공간은 미래적으로 그려졌지만 여행지를 보는 것 같았고, 그들은 무국적자로서 부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적인 것은 현재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일 것이다. 과거를 헤맬 필요도 없고, 남들이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우리의 이야기를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 있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승리호>, <외계+인 1부>, <서복>, <정이>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승리호>와 <정이>의 미래, <외계+인 1부>의 과거에는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 담겨있다. 

먼저 <승리호>는 우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국적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미래를 그려낸다. 무선 이어폰처럼 생긴 통역기를 착용만 하면 서로 소통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각자 자신의 언어로 외쳐댄다. 다양한 언어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이런 공존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왔는데, 미국 중심적이며 영어 중심적인 SF영화와는 다른 신선함도 느껴졌다. 

‘승리호’라는 우주선 이름부터 ‘업동이’라는 로봇의 이름, ‘꽃님’과 ‘순이’라는 어린아이들의 이름, 장 선장, 박 씨 등의 호칭도 익숙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맛있게 먹는 아침식사 메뉴에까지 우리의 일상이 꽤 유지되고 있다.

<정이> 속 미래에서도 우리는 꽤 그럴듯하게 존재한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 중인 것으로 보이는데, 어딘가의 식민지가 된 상황은 아닌 듯하다. 팀장님, 소장님, 회장님의 호칭도 정이, 서현 같은 이름도 요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봇에게 보이는 잔혹성은 이방인에 대한 잔혹성과 연계돼 익숙하게 느껴진다. 기술, 로봇, AI, 인간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일상 고민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승리호 선원, 정이와 서현, 그리고 서복이 겪는 문제는 매우 철학적이고 우주적인 문제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그들에게 닥친 문제는 모두 그 문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기술 독점을 위해 꽃님을 추격하고, 인간 질병 치료를 위해 서복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리고 전쟁 종식과 더불어 돈을 벌기 위해 정이의 뇌 복제를 시도한다. 영화 속 우리의 일상에 많은 것이 녹아 있다.

 

그리고 신파

상상도 어렵고, 팩트체크는 아예 불가능한 미래를 담고 있지만,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담긴 덕분에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그들의 감정적 동요가 커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지점 역시 주목할 만한 경향이다. 과학자들이 냉철하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비과학자가, 혹은 과학자라 해도 우리 영화 속 주인공은 감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승리호 선원들은 한때 우주 해적단 리더, 기동대 대원, 갱단 두목 등으로 나름 잘 나갔지만 지금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쓰레기 수거선 선원이다. 꽃님과 지구를 구하는 과정에서 왕년의 기술들이 사용되지만 조직, 전략, 전술은 없다. 딸 같고 조카 같은 꽃님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기 목숨도 걸 수 있다. 

 

<승리호> 스틸

<정이>에서 서현 팀장은 과학자지만,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보다는 무기력하고, 외로운 모습이 더 보인다. 어린 자신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용병이 됐고, 전투 중 식물인간이 된 엄마 정이에 대한 죄책감이 커 보인다.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을 하고, 뇌 정보까지 이식받은 로봇 정이를 보면서도 덤덤하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이 로봇이라는 걸 모르는 로봇 정이가 딸 서현의 소식을 묻자, 오열한다. 그리고 어머니 아니 로봇 정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진다. 마지막 순간에 로봇 정이에게는 “뒤돌아보지 말고, 자신만 생각하고, 도망가라”고 외친다.

 

<정이> 스틸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만남인지 모른다. SF영화에서 냉철한 과학적 문제 해결 대신 감정적 사적 문제 해결이라니 말이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만났다. 그동안 이런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최근 한국 SF영화 모두에는 가족 혹은 가족 같은 사람들의 감정 폭발 이야기가 담겼다.

‘신파’라는 용어로 비판받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를 경향, 특성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신파는 결코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것도 아니다. 일본식 혹은 구식이라 비판하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통하는 우리의 이야기 구성 방식이다. 그동안 수많은 멜로드라마, 액션 영화, 코미디 영화, 판타지 영화, TV용 드라마, OTT용 드라마 등에서 무한 등장, 변주돼왔다. 그러다 SF영화에까지 사용된 것인데, 굳이 비난할 필요가 있을까?

시기와 국적을 초월한 수많은 기존 SF영화의 여러 요소와 뜨거운 감정, 따뜻한 감성이 한국 SF영화에서 만났다. 모방과 신파라는 단어로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같은 단어로 우리 영화의 경향을 설명할 수도 있다. SF영화와 신파라니, 꽤 흥미로운 혼재이자 하이브리드다. 

수많은 참고 영화, 시각효과 기술, 미래에 대한 시선 등이 과연 얼마나 더 다양한 패스티쉬를 해낼지 궁금하다. 신파로 불리는 방식 이외에도 더 다양한 방식의 융합과 변주가 시도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늘 우리의 시선과 모습이 당당하게 담겨있길 바란다. 물론 우리의 모습 역시 매우 다양할 테니, 변주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겠다.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교육 관련 연구를 지속해 왔다.


(1) 김익상, 「한국영화의 디지털 VFX와 시네마 사운드」, 『1990년대 한국영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영화의 모든 것』 . 한국영상자료원 편, 273~301쪽.
(2) <투명인의 최후>는 필름이 유실됐지만, <우주괴인 왕마귀>와 <대괴수 용가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KDMb.or.kr에서 다시 보기가 가능하다
(3) 프레드릭 제임슨 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강현두 편, 『현대사회와 대중문화』, 나남, 2000, 191~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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