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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제는 나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이승민 | 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31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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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의 사월>
영화 <당신의 사월> 포스터

세월호 참사 7주기다. 일곱 해가 지났다는 것은, 신생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지난 7년간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연이어 일어났다.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개최됐고, 정권이 바뀌었고, 그리고 코로나19가 발생했다. 그 속에서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이르지 못한 채, 마치 완료된 사건처럼 더 이상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컷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컷

세월호 참사 이후, 7년의 시간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지난한 시간이자 참사를 겪고 목격한 사람들이 ‘살아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그날 침몰하는 배를 지켜본 사람들 모두가 보낸 시간인 것이다. 이제 그 시간을 다시 돌아볼 때가 됐다. 사건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에 그치지 않고, 참사 후 우리 자신에 대해 가만히 되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2021년 4월 개봉하는 <당신의 사월>은 바로 그날의 기억을 공통으로 가진 ‘우리’와 ‘우리의 시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이 사건의 진실과 상실에 초점을 맞췄다면, 7년이 지난 지금 이 영화는 그날의 우리들에게 말걸기를 시작한다. 사건이란 의례 그렇듯,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망연자실 예고없이 다가왔고 그들은 순식간에 피해자, 유가족, 목격자가 돼버렸다. 

그동안 사건 자체의 무게감과 피해자와 유가족의 거대한 슬픔 앞에서,  감히 ‘목격자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명명하지 못했다. 함께 분노했고 함께 슬퍼했지만, 이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연대하는 방식이었다. 영화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꺼내놓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그날의 목격자인 나의 기억과 경험을 꺼내보자고 제안한다. 어제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하고 선명하다. 영화는 그날의 ‘나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사고에서 비켜간 방관자인 외부자가 아니라 사건의 목격자이자 당사자임을 일깨운다.

영화는 그날에서 시작하지 않고 오늘에서 시작한다. 경쾌한 라디오 음악과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분주하게 아침을 연다. 대학생 유경은 학교 가는 길이고, 커피공방을 하는 철우는 카페 오픈 중이고, 중학교 교사인 수진은 학교 교실에 출근해 있고, 인권연대 활동가인 주연은 아침 설거지 중이다. 미역과 멸치 양식을 하는 어부 옥영은 오늘도 배를 타고 있다. 각자 자리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세월호 참사 영상이 없는 세월호 영화

영화는 그들의 현재 일상 속에서 그날의 기억들을 담기 시작한다. 인물들은 사건 당일에서부터 이후의 일련의 사건들과 접속된 자기 기억을 말하기 시작한다. 세월호 사건 당시 고3이던 유경은 교실에서 소식을 들었고, 주연은 택시를 타고 가다 들었고, 철우는 텔레비전 아래 자막으로 흘러나오는 속보로 접했고, 수진은 수업 중에 학부모의 문자를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그날 어부 옥영은 배를 타고 나가보라는 친구 전화를 받고 바다로 나가서 접했다. 그날의 선명한 기억은, 목격자에게도 상처이자 트라우마다. “사건을 목격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는다.” 영화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영화는 트라우마에 갇혀있는 인물을 담고 있지 않다. 인물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사건과 인물을 수동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능동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담고 있다. 우리 대다수가 그랬듯이, 인물들은 사건을 목격했고, 그 목격의 경험으로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다. 대학생이 된 유경은 기록학을 전공하고, 통인동에서 커피공방을 하는 철우는 청와대를 방문하는 유가족에게 물과 라면을 준비하고, 중학교 교사인 수진은 해마다 학생들과 함께 세월호를 기념하는 행사를 기획한다. 인권연대 활동가인 주연은 세월호 어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팽목항 인근에 사는 옥영은 유가족이 오갈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한다. 각자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 일상을 꾸려가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세월호의 기억을 분리시키거나 고립시켜 잊고 묻어버려야 할 무엇이 아니라, 각자 일상에 스며있는 나의 일부로 담아낸다. 나의 현재를 구축한 기억으로서 세월호 기억과 경험을 수용하는 자세는 사건의 주변에 위치한 목격자의 자리를 사건의 경험자이자 선택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영화는 또한 과거사와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 현재를 두고 있다. 사실 기억은 과거에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재 자리에서 소환되는 ‘현재적 과거’다. 

영화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그날의 기억을 그들의 현재 일상 속에서 풀어낸다. 공부하고 산책하고 장보고 수업하고 일하면서 과거의 기억과 접속한다. 영화는 미디어의 영상 푸티지보다는 소리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들에게 각인된 그날의 기억과 접속하게 한다. 나아가 영화는 일련의 사건들과 겹쳐 내면서 때때로 개인의 기억과 그 기억의 공간을 응시하곤 한다. 바다, 교실, 인천항, 학교 운동장은 인물들의 현재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이다. 시간을 품은 공간은 기억을 품은 신체와도 만난다. 그래서 이 인터뷰 다큐멘터리 영화는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사적 기억과 공적 사건을 접속하고 겹쳐내면서 공적 사건과 개인의 기억은 서로 연결돼 있음을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당신의 사월>이 세월호 참사 영상이 없는 거의 유일한 세월호 영화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딱 두 번 인양된 후의 세월호가 나오지만, 한 번은 거대한 배를 가만히 보듬듯이 부분부분 바라보는 장면이고, 다른 한 번은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눈이 내리는 날 바다에 우뚝 서있는 세월호의 모습이다. 두 장면 모두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침몰하는 배머리, 바다 속에서 인양된 부식된 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심지어 따뜻하기까지 한 이미지다. 참사 7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날의 기억과 경험을 품는 다른 시각인 것이다. 

<당신의 사월>에서 인물들이 그날의 기억을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다보면, 나도 가슴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말을 하고 싶어진다. 기억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기억하고 있음을 일깨우면서 그 기억을 나누고 싶게 하는 영화다.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나의 기억을 말하면서 다시 기억하게 하는 행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말없이 묵묵하게 있는 지성 아버지와 공명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를 유가족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나의 기억이자 경험으로 나의 자리에서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다.

그동안 해마다 4월이면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들이 상영됐다. 참사 당해 제작된 <다이빙 벨>(2014, 이상호·안해룡)에서부터 <나쁜 나라>(2015, 김진열), <업사이드 다운>(2015, 김동빈), <망각과 기억> 프로젝트(2017), <그날, 바다>(2018, 김지영), <로그북>(2018, 복진오), <부재의 기억>(2018, 이승준), <유령선>(2019, 김지영)이 그들이다. 각자 그 시기마다 해야 할 몫을 하면서 사회적 발화를 하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임과 동시에 작품이 계속 제작되고 있는 동력인 셈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 영화는 계속 제작될 것이고, 진상규명이 된 이후에도 영화는 다양한 시점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아직도 아우슈비츠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일깨우는 한편,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성찰을 유도하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 <당신의 사월> 스틸컷

 

 

글·이승민
문화평론가. 현장 비평가이자 기획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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