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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남긴 흔적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남긴 흔적을 기억합니다
  • 문선영 l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승인 2021.09.30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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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에게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특히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깊은 상실감과 절망을 준다. 상황마다 슬픔의 무게는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일임은 같다. 누군가는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며 오랫동안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는 수없이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가족, 연인, 친구의 죽음을 접하기도 하고, 내가 몰랐던 ‘누군가’의 죽음을 뉴스 기사로 접하기도 한다. 

며칠 동안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거나 뉴스 속보로 전달되며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는 죽음이 있는가 하면, 한 줄 기사로 묻히고 너무도 쉽게 무관심 속에서 잊히는 죽음도 있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다 기억에 담을 수는 없지만 무심히 넘겨버려서는 안될, 기억해야 할 죽음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과 MBC의 VR 휴먼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는 우리가 잊고 있던 죽음에 대해,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이사 :

드라마 <무브 투 헤븐 -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출처: tvN홈페이지)

<무브 투 헤븐>은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와 그의 후견인 상구(이제훈)가 세상을 떠난 이의 마지막 정리를 도우며 고인이 남긴 이야기를 유족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담은 10부작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특수청소전문가 김새별·전애원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한다. 김새별은 <유 퀴즈 온 더 블럭>(tvN) 66화에 출연해 자신의 일, 주로 고독사나 범죄사건 현장에서 죽은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그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은 방송 분량이었지만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무브 투 헤븐>은 실제 유품정리사의 경험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선택돼 드라마로 재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드라마 <무브 투 헤븐>에서 유품정리사가 의뢰를 받은 현장에 가서 첫 번째 하는 일은 고인을 향한 묵념과 고인에게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김선우님 O년O월O일 사망하셨습니다. 지금부터 김선우님의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품정리사가 말하는 ‘마지막 이사’는 죽은 이의 물품을 정리하며 그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공간을 비우는 과정이다.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품은 작은 상자나 검은 봉투에 담기고, 죽은 이가 먹고 자고 숨 쉬며 남긴 그의 체취는 세제와 공기청정기로 사라지게 된다. 즉 ‘마지막 이사’는 죽은 이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유품정리 과정을 보면, ‘마지막 이사’는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는 표면적 의미 이상을 담고 있다. 유품정리의 마지막 일은 유족에게 죽은 이가 남긴 메시지나 마지막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사’는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얼마나 그리워했고 미안했는지를 남겨진 사람에게 전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고인의 흔적을 통해 그와의 마지막 인사를 한다. 그러므로 <무브 투 헤븐>의 ‘마지막 이사’는 고인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달돼야 할 개인의 이야기가 사적공간에서 묻히지 않고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시원에서 외롭게 죽어간 청년 노동자 김선우의 이야기를 담은 <무브 투 헤븐>1화는 정규직을 꿈꾸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버텼던 25세 청년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에서 유품정리사 그루(탕준상)와 한정우(지진희)는 김선우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통해 그의 존재를 복원시킨다. 작은 고시원 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의 물건들은 청년 김선우의 삶을 말해준다. 그의 책상에 놓인 사진과 메모들은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인턴으로 취직한 지 얼마 안 됐고, 방송통신대에 다니며 일하는 틈틈이 대학진학을 준비했던 사실을 알려준다. 그의 가방에 남긴 컵라면과 편의점 영수증은 그가 제대로 식사할 시간도 없이 일하며 대충 한 끼를 때우고 식비를 아끼기 위해 마감 세일하는 삼각김밥을 자주 먹었음을 말해준다. 

청년 김선우는 홀로 야간작업을 하던 중, 기계에 다리가 끼는 사고를 당하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파상풍을 앓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핸드폰에는 죽기 하루 전까지도 정상근무를 강요하는 회사의 요구를 지키려고 했던, 김선우의 안쓰러운 노력이 담겨져 있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은 답답할 정도로 성실했던 그가 정성스럽게 모아둔 편의점 영수증들을 따라, 그의 흔적을 좀 더 섬세하게 살핀다. 그의 영수증과 가방에 있었던 섬유탈취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좋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편의점 앞에서 하루 종일 몸에 밴 땀 냄새를 제거하는 그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김선우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설레고, 잘 보이고 싶어 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25세의 청년이었다. 정규직 전환이 가장 큰 꿈이었던 그에게, 충성과 성실함을 요구했던 회사는 장례식장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위로하기보다 산재처리의 불가능성을 설득하며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드라마 <무브 투 헤븐>은 부모에게 어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던 ‘귀한 자식’ 김선우의 마지막 흔적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러므로 <무브 투 헤븐> 속 고인의 흔적이 옮겨지는 ‘마지막 이사’는 단지 유가족만이 받아들여야 하는 기억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고인이 어떻게 살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뎠으며, 무엇을 꿈꿨는지에 대해서, 그의 삶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  

 

그의 마지막 순간으로 이동하다: 

VR 휴먼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MBC)

 

<용균이를 만났다>(MBC <너를 만났다> 시즌2 홈페이지)

<용균이를 만났다>는 VR기술을 통해 가상공간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과의 만남을 실현시키는, <너를 만났다>시즌2로 기획된 다큐멘터리다. <너를 만났다>는 세상을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남겨진 가족의 그리움을 VR기술의 가상현실을 활용해 위로하고, 온전히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시즌1이 아내와 이별한 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시즌2의 <용균이를 만났다>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타인의 상황과 아픔에 공감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기획됐다.

가상기술로 복원된 <용균이를 만났다>의 주인공은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2018년 12월 10일 죽음을 맞이한 청년 김용균이다. <용균이를 만났다>는 25세 청년 김용균의 휴대폰을 복원시켜 남아 있는 사진, 동영상을 통해 그를 실제와 유사하게 구현했다. 김용균을 가상공간에서 구현하기 위해 복원된 그의 흔적 중, 핸드폰의 기록들은 생전 맡은 업무에 충실했었던 그를 보여준다. 김용균의 휴대폰 속에는 85일 동안 근무하면서 찍은 작업 보고용 사진 966장, 25개의 동영상이 남아 있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는 아들 얼굴이 찍힌 사진이 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간절함은 이뤄지지 않았다. 업무에 관련된 기록들도 채워진 그의 마지막 흔적은 김용균이 치열하게 집중했던 그 무엇에 대해 알려준다.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 설비점검 하청업체의 3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도 <무브 투 헤븐>의 김선우처럼 정규직을 꿈꾸며, 자격증과 토익시험을 준비하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정규직으로, 또는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던 청년이었다.

다큐멘터리 <용균이를 만났다>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근무했던 작업공간을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증언을 토대로 구현과정을 거쳤다. 실제와 흡사하게 재현된 김용균이 일했던 현장은 탄가루가 쌓이고 날리는 좁고 어두운 공간이다. 그가 점검해야 할 점검창 내부에서는 컨베이어벨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간다. 그는 컨베이어벨트를 받치고 있는 회전체에 쌓이는 탄가루를 제거하는 업무를 위해, 좁은 점검창 안으로 머리를 집어넣어서 확인하거나, 몸을 깊숙이 넣고 삽으로 탄가루를 퍼 나르는 동작을 반복한다.

어둡고 좁은 내부, 컨베이어벨트의 빠른 회전 등, 가상공간으로 구현된 작업은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노동상황에서 25세 청년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던 공간에 대해 우리는 상세히 알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알려고 덜 애썼을 수도 있다. 

 <용균이를 만났다>는 김용균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선정해 가상공간에서 그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가상체험에 신청해 선정된 시민은 다양한 연령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사를 통해 김용균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부터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참여한 사람까지, 그의 정보에 대한 지식도 다양하다. 각각 다른 위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VR기술의 가상공간에서 구현된 김용균을 만나서 그의 시간과 공간을 체험한다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가상체험에 참여한 이들은 김용균의 작업공간을, 그가 일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또한 가상체험단은 김용균의 갤러리에서 첫 출근 날 새로 산 양복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웃는 그를 만나기도 한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고, 보고 싶은 영화나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놓고, 자기소개서와 입사하고 싶은 기업, 따야 할 자격증 등 미래를 계획한 메모장을 통해 그의 일상을 만난다. <용균이를 만났다>의 가상공간에서 그를 만났던 참여자들은 그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나와 같은, 내 주변의 친구, 누군가의 아들과 똑같은 평범한 청년이었음을 느꼈고, 그래서 그가 마지막 순간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짐작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한 죽음, 누군가가 김선우처럼, 김용균처럼 세상을 떠나야 했다면, 우리는 그의 남긴 흔적을 찾아 그가 살아온 삶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소 하청업체 인턴 김용균, 평택항 비정규직 대학생 이선호. 그 밖에도 우리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해야 했던 그들의 마지막 흔적을 붙잡아줘야 할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이사’에 우리가 함께 하고, 온전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그들이 남긴 흔적을 기억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글·문선영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융합학부 조교수. 라디오부터 텔레비전까지 한국 방송극 전반을 연구. 특히 한국 방송극의 장르 문화와 형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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