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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혼돈의 땅에서 기적의 땅으로 - <가버나움>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혼돈의 땅에서 기적의 땅으로 - <가버나움>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19.02.11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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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나딘 라바키 감독의 <가버나움>, 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도 후보로 올라 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아랍여성감독으로는 처음 이름을 올리게 됐는데, 첫 수상자가 될 수 있을지도 기대된다.

영화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레바논은 중동지역 중에서도 여러 종파의 분쟁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문제까지, 정상적인 국가사회시스템이 붕괴된 상태다. 그리고 가버나움은 성경 신약에 나오는 지역인데, 예수는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로 멸망할 거라는 예언이 전해지는 곳이다. 즉 가버나움은 기적과 혼돈이 공존하는 곳이다.

영화의 배경인 베이루트의 상황만으로도 이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지 조금은 예상이 되는데, 영화가 재현해내는 이곳 풍경은 비참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베이루트 빈민가에 사는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은 아예 출생기록조차 없다. 열두 살 아이라는 걸 의심하게 할 정도로 가혹한 환경에서 앵벌이를 하듯 노동을 착취당한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 청결이나 예방접종 같은 건 사치일 뿐이고, 부모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범죄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근데 사실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그렇게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이야기가 두 가지 시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자인이 칼로 사람을 찔러 재판을 받고 있는 시점이고, 또 하나는 플래시백으로 연출되는 자인의 과거이다. 재판을 받는 시점에서 이 열두 살 아이는 부모를 고소한 이유를 당당히 말한다. 자신을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라고.

자인이 살아가는 그런 현실에서 과연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인이 그렇게 지켜주고 싶어 했던 여동생도 닭 몇 마리에 팔려간다. 부모의 승낙이 있으면 9살부터 결혼할 수 있는 레바논에서 11살 딸을 매매한 행위는 자인의 부모에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그저 생존의 문제이며 관습의 문제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으로 베이루트를 보여주는 이 묘한 거리감과 긴장감은 이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를 결정한다. 높은 곳에서 보는 가장 낮은 곳은 극도의 빈곤, 절망이 있는 곳이고, 생을 위한 투쟁이라는 말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지옥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비참한 현실을 정말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곳에서 자인에겐 신세 한탄의 감정이나 눈물조차 사치다. 이게 영화 속에서가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더 큰 울림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레바논 베이루트의 현실을 통해 인간의 삶과 행복,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가버나움>은 영화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연출을 위해 주요 출연진들은 실제 영화 속 인물들과 같은 상황을 겪었던 비전문 배우들을 출연시킨다. 주연을 맡은 자인 알 라피아는 시리아 내전 때문에 레바논으로 건너온 난민 아동이고, 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아역들도 실제 난민들이다. 연기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정해진 대본이 아닌 자연스러운 반응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기를 잘한다거나 자연스럽다 라기 보다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다.

 

배우들도 그렇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베이루트도 그렇고,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이다. 여기서 영화적인 설정이라고 하면 자인이 부모를 고소한다는 것, 정도이다. 감독은 <가버나움>을 제작하기 위해 4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사는 게 행복하니?”라는 감독의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부모를 고소한다는 설정도 이 대화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자인이 왜 부모를 고소했는지 그 이유를 말할 때 비로소 이게 영화라는 걸 인식하게 된다. 자인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배우다운 대사를 하고, 관객들도 숨을 돌린다. 감정이 생기는 것도 이 지점이다. 너무도 비참한 현실에 차마 감정을 드러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관객들도 눌러놓았던 감정을 터뜨릴 수 있는 대목이다.

가버나움이 기적과 혼돈이 공존했던 곳이었던 것처럼, <가버나움> 영화 제작 이후 실제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자인 역을 한 배우는 칸영화제 일주인 전까지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분이었지만 이후 많은 후원으로 영화제에 참석할 수 있었고 다른 아역들도 새로운 세계에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까지 설립했다고 한다. 기적은 프레임 바깥에 있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 아니냐는 관객들에겐 감독의 말처럼 “관객들의 무거운 마음이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영화는 아이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혼돈의 땅이었던 이곳이 부디 기적의 땅이 되길 소망하게 한다.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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