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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성의 정상화
비정상성의 정상화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2.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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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인들(Les Anormaux)’은 미셸 푸코가 1975년 1월 8일부터 3월 19일까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행한 강좌 제목이다. 이 강좌는 현대 서구역사에서 비정상의 개념을 정의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연구 분석한 11편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푸코는 그의 강좌에서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비정상인 그룹을 3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유형의 비정상인은 생물학적인 분야에서 등장한 괴물인간형이다. 중세 야화에 나타난 반인반수(半人半獸), 르네상스 시대의 이중적 인간, 그리고 남녀양성을 지닌 헤르마프로토스형 인간 등이다. 두 번째는 괴물 인간형 보다 훨씬 최근의 비정상 인물형이다. 17~18세기 특히 군대나 학교, 작업장, 가정에서 행해지는 훈련과정에서 등장했으며, 신체나 태도, 성격에서 정상상태를 벗어났다. 

세 번째 유형의 비정상인은 19세기에 가톨릭교계가 교육‧도덕적인 차원에서 금기시한 수음벽이 있는 인간이다. 푸코가 소개하는 19세기 중반에 형성된 수음에 대한 담론을 보면, 국가의 간섭 정도가 ‘전지적 참견시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음은 모든 질병의 보편적 원인이며, 아이가 수음하는 것은 부모의 무관심과 태만에서 비롯된다는 게 당시의 교계 시각이었다. 따라서 학교와 교회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몸에 신경 쓰라고 명령하는 동시에, 수음은 비도덕성이 아니라 질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근대국가로 들어서면서 국가가 부모의 책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지배계급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온순한’ 인간들을 얻기 위해 일반교육이나 직업교육, 교양교육을 담당하며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간섭을 최소한으로 줄여나갔다.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은 수많은 규율과 통제수단을 만들어 일상의 삶에 세세한 규칙을 만들고, 이를 벗어날 경우 비정상적 인간형의 올가미를 씌웠다. 농민, 노동자, 학생 등 수많은 사람들이 지배계급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사고방식을 가지면 졸지에 비정상적 인간으로 낙인찍혀 감옥에 가고,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되고, 재활원에 보내졌다. 비정상인들은 병리학적으로 진짜 비정상적이라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기득권을 위해 격리되고 배제됐다.    

촛불 혁명 이후 시민들의 바람대로 지배계급이 부분적으로 교체된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떨까? 비정상의 극치를 보이며 임기 중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만 열면 ‘비정상 사회의 정상화’를 주장해 포스트 모던적인 느낌마저 줬지만, 그 후 촛불정권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도 ‘비정상성의 정상화’는 결코 모던적이지 않다.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상태가 그대로인데, 그런 상태를 만든 이들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이후 청와대,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 금감위, 법원이 보여준 행태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결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임은정 부장검사가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빌어 문무일 검찰총장, 문찬석 검사장, 여환섭 검사장, 장영수 검사장을 ‘고발’하고, 유선주 심판관리관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재벌 봐주기 혐의로 고발했을까? 정권 초기에 문 정권은 촛불정신을 이어받아 재벌-권력의 부패 청산과 ‘정의로운 민주주의’의 실천을 약속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및 그 측근들과 재벌 CEO들의 뇌물수수, 카지노와 금융기관, 공공기업들의 채용비리 등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진행됐을 때만 해도, 문정권이 추진하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많은 국민들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줬다는 재벌 CEO들은 대부분 풀려났고, 금융권 부정채용을 의뢰한 ‘힘 있는 기관들’의 실력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인사 청탁을 받은 시중은행 간부들만 검찰에 불러 다니고 있다. 국회의원들이나 힘 있는 실세들이 연루된 카지노와 공공기관들의 채용비리에 대해선 감감무소식이다. 기이한 것은 문 정부 출범 3년차인데도, 검찰의 은행 채용비리 수사가 뚜렷한 성과 없이 집요하게 이뤄져 ‘재벌 봐주기’와는 너무 대조적이라는 사실이다. 검찰 수사가 행여 젊은이들의 선호도가 높은 은행을 타깃 삼아 최근의 청년실업난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비치지 않으려면, 문 정권이 잠시 손 놓고 있는 실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보다 더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촛불시민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추진해야 할 일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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