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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자본주의와 미국 사회주의
마약 자본주의와 미국 사회주의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9.05.3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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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갑작스럽게 마약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마약하면 늘 빠지지 않는 부류가 있다. 연예인, 재벌 2~3세가 그들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또 예외 없는 것은 늘 그렇듯 재벌 2~3세의 이름들은 증권가 지라시에만 오르내리다가 사라졌고, 연예인들만 검경의 수사를 받고 일부는 구속됐다는 점이다. 마약은 연예인들의 전용 약물인가? 아무도 믿지 않는 검경의 수사결과를 볼 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는 생각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 6월호에서는 8개면에 걸쳐 ‘마약의 정치경제학’이라는 특집을 다뤘다. 누가 현대사회를 ‘마약 자본주의 사회’라 했던가? 정신과 육체를 해쳐가면서 마약을 찾는 이들의 탐닉과 환희도 있지만, 마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망가진’ 이들의 절망도 존재한다. 여기에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국제 마약 카르텔의 역할도 빼놓지 않을 수 없다. 

<르디플로> 편집위원들은 이번 특집의 일부 글에 대해, 게재 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마약의 종류와 처리법, 그리고 구입처의 정보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자칫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약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위해선 마약의 제조와 출처, 종류, 공급, 그리고 국제적 차원의 마약 네트워크를 제대로 알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 결국 가감 없는 특집을 내기로 했다. 
물론, 독자 여러분의 우려와 질책도 충분히 예상해본다. 하지만 마약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그저 ‘만만한’ 연예인 몇 명의 구속으로 끝내온 게 그간의 검경수사였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규명하고, 국내 마약 네트워크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온 결과다. 사실, 은밀하면서도 범법적인 마약 문제는 자본주의의 정상성이 왜곡될 때 나타나는 병리 현상이다.

이번 6월호에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글은 미국에 불고 있는 사회주의의 열풍에 관한 기사다.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일찍이 “노동계급이 중산층화하는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지만, 최근의 미국에선 꺼지지 않는 샌더스 인기와 더불어, 사회주의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민주당의 보수화와 공화당의 극우화 속에서 좌파 진보정치의 출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샌더스의 정책과 사회주의 이념에서 자신들의 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청년들 사이에 불고 있는 사회주의 열풍을 민주당과 공화당 인사들만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면, 자본주의의 전초국이나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할 날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미국 주류층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백해무익한’ 마약 같은 존재로 간주하지만, 선진국에서의 마약 흡입은 주류층에서도 이뤄지듯 그들 스스로 사회주의화할 수도 있다. 이미 빌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들이 사회주의자들의 공약인 상속세와 누진세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에 빠진 자본주의의 해체를 두려워해서다.

마약 자본주의와 미국 사회주의에 관한 글들을 서로 견줘서 읽다 보면, 어느덧 6월호의 재미에 흠뻑 젖으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역사가 된 혁명 뮤지션, 빅토르 최’ 기사가 가장 좋다.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불꽃같은 로커의 삶을 살다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며 전설이 돼버린 그가 고려인의 후예라는 사실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유튜브에서 그의 노래를 찾아 듣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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