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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이다!
진실한 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이다!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0.12.31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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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상한 부조리로 가득하다. 기이하게도 그 부조리는 그럴듯해 보일 필요조차 없다. 그것은 사실이니까.”

 

<광화문 역의 출근길 시민들>, 2020 - 뉴스1

이름하여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이 이제, 해가 바뀌어 고작 1년여 임기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지 피란델로의 냉소 가득한 이 문장이 설핏 떠오른다. 거짓과 감시와 뇌물로 얼룩진 ‘어둠의 세력’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촛불정신을 이어받은 자칭 민주정권이 들어섰지만, 기억을 되감아보면 정권의 부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긴, 피란델로의 말처럼 우리 삶 자체가 부조리로 가득하고, 내 삶과 타인의 부조리한 삶이 모인 게 우리 사회이고, 그 사회를 잠시나마 이끄는 게 정치권력이라면, 문재인 정권이 드러내는 부조리는 소소한 것인지 모른다. 부동산 정책, 검찰개혁, 인구정책, 교육개혁, 재벌개혁, 남북문제, 심지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마련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하나씩 희미해져가고, 그의 참모들은 국민(People)의 바람을 거스르는 ‘역적’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산업재해 사망자수가 지난해 코로나 19의 감염사망자수보다 훨씬 많은 850명이 넘을 때까지, 집권당 대표는 관련법 입법 다짐만 12번을 했다. 2년 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오늘도 영하의 차디찬 땅바닥에서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단식농성중이다. 이제야 겨우 이뤄낸 성과가 있다면, 얼마 전 국회에 통과된 공수처설치법 정도이겠지만, 이 역시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지난(至難)한 과정이 남아있다.

 평론가마다 진단이 제각각이지만, 필자는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시대정신의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이라는 단어를 내세운 각 정책 책임자들의 면면을 보면, 삶의 여정에 시대정신의 기미조차 찾기 어려운 이들이 부지기수다. 중차대한 민정수석의 ‘직’을 버리고 강남의 ‘집’을 선택한 김조원,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서민 및 소상공인대책에 늘 좌고우면하던 경제부총리 홍남기, 비전문가로서 결국 가진 자를 위한 부동산정책으로 국토부장관직을 끝낸 김현미, 구의역에서 참사를 당한 노동자 김군에 막말을 쏟아내고, 자신이 장을 지낸 기관들에서 지인들을 마구 채용하고 연구용역 혜택을 안겨주고서도 국토부장관직 후보에 오른 변창흠,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의 존망에 처한 대학의 현실에서 방향을 잃고 있는 교육부 장관 유은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추진해야 할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들을 임명할 때 그 기준이 ‘국민 편’이 아닌 ‘내 편과 우리 편’이다보니, 이들의 잇단 행태는 탈(脫)시민적이며 반(反)국민적으로 나타난다. 검찰총장과의 갈등만 해도, 그가 스스로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울 수 있는 것도 애초에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 아닌, ‘내 편’일 것이라고 여겨진 인물을 총장직에 앉힌 결과일 것이다.

 시대정신은 ‘내 편’ ‘우리 편’의 진영논리가 아닌, 민중에 근간을 두는 포퓰리즘적 철학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혹자는 이를 선동적이라고 폄훼하지만,  “원래 포퓰리즘 정치는 진영이 아닌 민중을 대변한다.”(1) 권위주의 정권에선 엘리트 계층은 짐짓 ‘민중’을 위하는 체하면서 그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하나의 세력으로 뭉치지 못하게 만들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촛불시민혁명을 딛고 탄생한 만큼, 과거의 정권들과는 달라야 한다. 자신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것이 누구인지 되새겨야 하는 동시에, (엘리트층이 상징적으로 조작한 대로) 한없이 무능하고 때로는 위험하며 때로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민중을 사회 변화의 주역으로 내세워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정책의 중심을 민중의 정서에 맞추지 않고, 소수 엘리트층간의 진영 논리에 자주 가둔다. 

시대정신에 입각한 포퓰리즘적 감동은 탁현민 같은 이벤트 전문가의 탁월한 연출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민심에 더 가까이 귀 기울이며 고독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릴 때, ‘민주 정권의 부조리’는 그나마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국민들이 그나마 인정해주는 K-방역의 신화가 정권을 지탱해주는 동안 진심어린 시대정신을 구현하길 기대해본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아론 바스타니, 『21세기 공산주의선언 - 완전히 자동화 된 화려한 공산주의』, (김민수 외 옮김, 황소걸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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