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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저널리즘의 제 2막
한국 저널리즘의 제 2막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2.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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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대학의 학과명도 유행을 탄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가 ‘미디어학과’로 바뀐 것은 저널리즘의 사망 선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라떼’와 같은 이야기이지만,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신문방송학과는 명실상부 신문기자나 방송기자, PD를 꿈꾸는 이들이 지망하던 학과였다. 물론 신문계나 방송계 진출을 보장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신문방송학과 교수나 학생이라면 저널리즘의 ABC에 대해 나름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문방송학과에서는 신문비평과 방송비평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 교수들과 학생들은 신문을 열독하면서 중요한 문구에 빨간 밑줄을 치고 메모를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학생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학생들이야 비싼 수업료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뛰어야 하고, 취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느라 신문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전공교수가 아예 신문을 읽지 않는 현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엽기적’이다. 심지어 대중적인 신문을 읽지 않고, 아카데믹한 논문만 읽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놀랍게도 신문방송학부와 언론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가 경쟁하다시피 미디어학부 또는 멀티미디어학부로 간판을 바꾸고 난 후에 달라진 현상이다. 언어적 측면에서 보자면, 신문방송학부와 언론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가 ‘가치 지향적’이라면, 미디어나 멀티미디어학부는 가치중립적인 명칭일지언정 실제로는 ‘몰가치적’이다.

다시 어원적으로 보자면, 미디어는 ‘매개’, ‘매개체’의 의미를 지닌 ‘미디엄(Medium)’의 복수형이다. 즉, 콘텐츠의 매개체,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배관(配管)이자 통로가 미디어다. 과거의 신문방송학부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가르치고 배웠다고 한다면, 지금의 미디어학부나 멀티미디어학부에서는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는 이른바 ‘배관’ 기술자의 교육을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신문을 그토록 철저히 외면할 수 있겠는가? 미끈하게 간판을 바꿔 단 미디어학부와 멀티미디어학부에서는 고리타분한 저널리즘 이론이나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구색용에 불과하다. 

어느 대학에서나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콘텐츠 기획과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데이터 분석, 소셜미디어 등이 주요 커리큘럼이다 보니, 굳이 잉크 냄새나는 신문을 읽거나 만질 필요조차 없다. 콘텐츠를 담아내는 미디어가 신문과 방송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고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된다! 이제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미디어이고, 각종 어플이 미디어이며, 페이스북·트위터·클럽하우스 같은 SNS가 미디어이고, 마샬 맥루한의 말마따나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도구와 기술이 미디어인 셈이다. 이제는 미디어가 단순한 메시지의 전달 도구 그 이상의 존재다.

대학에서 미디어적 테크닉을 중시하는 것은 현업에서 ‘미디어 테크니션’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멀티미디어 기업으로 ‘업그레이드’한 신문사들은 더 이상 쟁점 사안에 대해 진지하고 성찰적이며 균형 잡힌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방송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겉으로는 가치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상업적 이익을 쫓아 신념과 견해가 엿가락처럼 휘기도 하고 녹아내리기도 한다. 

 

발행되자마자 뭉치로 폐지로 판매되는 신문들

심화되는 미디어의 몰가치성

이 같은 미디어의 ‘몰가치성’은 막스 베버가 지식인이나 연구자의 연구 태도에서 어떤 선입관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른바 ‘가치중립성’(1)이라는 개념과는 상반된 것으로, 애초부터 작심을 하고 본질을 왜곡하며 과장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사실에 입각해 진실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이 이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기레기’라는 은어로 조롱받는 암담한 현실에서 신문사들의 판매부수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두 토막, 세 토막이 돼 버렸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판매부수 1위를 자랑하는 C일보가 약 50만 부의 유료부수를 116만 부로 부풀려 보조금이나 광고단가를 높였고, 특히 신문운송료 지원 명목으로 46억 원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그는 “만약 100만 부가 독자들에게 발송될 것을 예정하고 국가가 지원했는데, 그중 절반이 폐기 처리됐다고 하면 그 절반에 대해서는 국가 보조금을 허위수령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보조금은 다른 신문사들과 마찬가지로 부당하게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인터넷 쇼핑몰에는 아직 뜯지 않은 신문 뭉치를 건축자재나 포장지 용도로 헐값에 판매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발행부수 경쟁 탓에 읽지도 않은 신문들이 버려지는 게 안타깝다”라며 “처음부터 적정 판매량을 찍어 자원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이런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신문의 판매량이 수직하락 하는데도, 아직까지 문을 닫는 신문사가 없다는 점이다.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종이신문에서 인터넷과 유튜브채널 등 디지털 매체로 확 바뀌면서 보수매체이건, 진보매체이건 신문사들은 더 이상 신문 유료독자 확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신문을 찍으면 찍을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발행부수를 소문나지 않게 줄일지가 관건이다. 진보매체의 한 경영진은 필자와 사적인 자리에서 “이득이 전혀 없는 주말판 발행을 중단하는 문제를 놓고 경쟁사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고 있으며, 신문 발행축소는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신문사들은 저마다 ‘디지털 퍼스트’를 외치며 조직과 문화, 업무관행을 디지털화하는 한편, 기자는 동영상을 촬영하고 출연까지 하며 동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소셜미디어를 관리하는 등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미디어 환경의 급변 속에서 저널리즘 정신과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운운하는 것은 격세지변이다. 대학에서나 현업에서나 콘텐츠를 전달하는(mediation) 기술만이 중시되다 보니, 정작 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저널리즘 정신과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곧잘 잃게 된다. 저널리즘 정신은 냉철한 지성과 깊은 이해로 현실 문제를 파악하고, 공익성과 책임성을 다하는 것이고,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통찰력과 사유를 바탕으로 공동체(community)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이라면, 언론이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시간적 거리(distance)가 필요하다.

종이신문의 제작 과정에서는 기사게재 시에 취재, 회의, 기사작성, 데스킹, 회의, 교열, 편집 등의 절차를 거치면 시간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으나, 디지털 미디어의 경우 기사 생산에서 소비까지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찰나적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더 이상 뉴스를 전달하는(mediate) 미디어가 아니라, 그 자체가 즉시(immediately) 소비되는 상품진열대다. 미디어의 상품진열대에 올려진 기사들은 대부분 자극적이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팩트가 희박해도 이들 기사가 독자들에게 경멸감,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선사해 클릭수를 높일 수 있다면, 디지털 미디어의 톱을 장식하며, 여타 미디어들은 경쟁적으로 베끼고 확대재생산한다. ‘진실 같아 보이지만 결코 진실이 아닌’ 페이크 뉴스는 우리 사회의 진정성을 희화화하고 진실과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이른바 ‘페이크 사회’의 도래를 부른다. 

이미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미디어 산업의 놀라운 발전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초래한다”라고 지적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미디어가 뿜어내는 숱한 페이크 뉴스에 압사당할 지경이다. 페이크 뉴스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스스로에게 매번 묻는 의문은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다.

멀티미디어화로 가속화하는 신문의 위기 속에 ‘슬로우 매체’라 할 잡지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1908년 <소년> 이후, 10년 넘게 독자들과 함께해 온 잡지는 신문 경영까지 뒤흔들어놓은 ‘디지털 팬데믹’ 앞에서 도태와 진화를 거듭하며, 호흡이 긴 매체로서의 장점을 살려 모처럼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또한 ‘잡지의 귀환’에 대해 말한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전하는 <샘터>가 2019년 폐간 위기를 독자들의 후원으로 간신히 넘기고, <인물과 사상>, <시대>, <더 뮤지컬>, <피아노 음악>등이 잇따라 문을 닫으며 잡지 종말의 시대를 예고하는 듯 했으나, 비대면사회가 본격화한 지난해부터 역설적으로 잡지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것이다.(2) 

 

신문의 위기 vs. 잡지의 부흥

2016년 4,931종이던 잡지종수는 2021년 현재 5,495종으로 11.4% 늘어났으며(문화체육부관광부 ‘정기간행물등록현황’), 특히 지난해에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이자 테마 무크계간지인 <마니에르 드 부아르>를 비롯해) 지식교양잡지 <매거진 G>, 고급 서평잡지 <서울리뷰오브북스>, 비거니즘 잡지 <물결> 등 굵직한 잡지들이 등장해, 바야흐로 ‘잡지의 부흥기’가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뉴스를 리얼타임으로 전달하는’ 일간 신문의 위기와 ‘뉴스를 천천히 곱씹어 보는’ 매거진의 부흥은 저널리즘의 지형이 바뀌었음을 의미하지만, 아직도 문화체육관광부와 관련 기관들의 신문 우대 정책은 바뀌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이사장을 비롯해, 대다수 임원들은 관습적으로 정권창출에 기여했고, 일간신문의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로 구성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신문뿐 아니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같은 매거진에서 공공기관이나 국립대학들로부터 유료광고를 받을 경우 10% 이상의 수수료를 떼어가면서도 언론인 연수교육 등 거의 모든 언론진흥정책을 일간신문에 맞춘다. 터무니없는 일 아닌가?

물론 문체부는 한국잡지협회라는 단체에 위탁해 해마다 우수콘텐츠 잡지를 선정해 연간 1,100만 원 이상을 지원하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같은 잡지는 해외 라이센스 잡지라는 이유로 제외된다. 한국 정기간행물법에 의거해 정식으로 등록해, 해마다 면허세를 비롯, 법인세, 부가세, 일자리 창출, 번역진 및 필자 원고료 지급, 그리고 전체 매출 중 로열티 부담이 1% 미만인데 문재인 정권 초기, 공무원 실무책임자나 잡지협회 임원진이 ‘국뽕’에 취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의 눈치를 본 까닭인지 갑자기 ‘라이센스 제외’ 항목을 삽입했다. 

우수잡지 선정에 ‘라이센스 잡지 제외’라는 명분하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비우수잡지’로 분류된 지 5년째다. 도종환 장관은 떠났지만 그가 만든 방침대로 우수잡지와 비우수잡지가 구분되며, 국내 최고의 지성지라 평가받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도서관과 공공기관이 우수잡지의 허상을 좇아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 한국 필자의 글이 약 30% 실리고, 상업광고가 거의 없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문정권의 기이한 정책으로 인해 비우수잡지가 되는 현실이 어처구니 없다.

그럼에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독자의 든든한 후원과 격려에 힘입어 코로나 위기를 외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 밀려난 신문의 위기 속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진면목이 도드라질 수 있는 것은, 독자들이 변함없이 기사의 품질을 알아준 덕택이라 여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1) 알랭 가리구, ‘막스 베버가 강조한 대학의 가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1월호.

(2) 장은수, ‘잡지가 돌아왔다…당돌한 도전인가, 세련된 순치인가?’ <한겨레> 1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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