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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낙인찍기의 정치사회학
코로나, 낙인찍기의 정치사회학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0.03.31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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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우려되는 이유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의 국내 확산경로는 대단히 잔인하고, 비극적이다. 삶이 너무나 고달파서 영적 안식처를 찾아 가족을 등지고 종교시설에 찾아온 사람들, 가족의 보살핌을 받기 힘들어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한 평 공간의 철제침대에 몸을 뉜 늙고 병든 노인들, 최저임금을 받으며 병실 모퉁이에서 쪽잠을 자며 그들의 수발을 드는 간병인들, 매달 어김없이 찾아오는 임대료 고지서에 가슴 졸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연 영세 식당과 카페의 주인들, 그리고 경기침체로 일감이 줄어 몇 군데를 뛰어야 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생, 플랫폼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무소불위의 코로나19는 국적도, 피부 색깔도, 남녀노소, 계층과 계급도 가리지 않고 전염시킨다지만, 필자의 눈에는 어찌 그리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만 집중되는지 잔인하기 짝이 없다. 물론 확진자들 중에는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 묵고, 레스토랑과 카페, 골프장과 노래방을 들락거린 이들도 있다.

국내 코로나의 확산 분포를 보면 대단히 사회적인 현상이다. 대도시인 서울에서 285km나 떨어진 지방도시 대구에서 확진자들이 대거 발생했고(이 도시에서 발생한 확진자는 3월 22일 기준 6,411명으로 국내 전체 감염자의 90%에 달한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이 기독교의 분파인 신천지 교인들이고, 이들이 확진자를 늘린 ‘슈퍼전파자’라는 점에서 놀랍다. 이 지역의 요양병원, 요양원에서 확진자들이 대거 발생한 것은 대개 간병인들이 신천지교인들인 까닭에서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가 우리나라처럼 사회적으로 분화돼 발생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파크와 어니스트 버지스가 1921년 공동연구를 통해, 시카고의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사람들이 상이한 지역으로 나눠 거주하며, 빈곤·범죄·생활양식들의 사회문화적 특성 또한 공간적으로 분화되는 것을 발견했지만, 21세기 한국의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월 임대료가 4만 5,000원에 불과한 아파트 단지 거주자 대부분이 가난한 신천지 교인들이라는 점은, 파크가 예언한 인간 거주지의 최적의 서열화에 다름 아닐까?     

 

<경배>, 2017 - 황지현

‘유대인 솎아내기’를 닮은 풍경들

신천지 교인들의 코로나 집단감염이 이젠 어느 정도 수그러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카페와 음식점의 출입문과 교회, 공공장소 등 각종 게시판에 ‘신천지교인 추방’라는 문구가 붙기 시작하고, 심지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신천지교인을 솎아내는 경험담이 공유되는 현실이 왠지 거북하다. 더욱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급작스럽게 직장에서 쫓겨난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를 접할 때는 우리 사회의 정상성에 대해 고민해본다. 그가 코로나에 감염이 된 것도 아니고, 설사 감염이 됐다고 해도 치료를 받았다면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일임에도, 단지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이 해고의 절대적인 사유가 되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나치 시대의 유대인 솎아내기’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회학적 용어로 ‘스티그마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떤 대상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규정지으면 그 부정적 인식이 지속되고, 그 대상도 점점 더 나쁜 행태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서 스티그마는 오명 또는 낙인을 뜻하는데, 이 현상이 누군가를 부정적으로 낙인찍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낙인효과’라고도 한다. 1960년대 미국의 사회학자인 하워드 베커가 주장한 ‘낙인효과’ 이론에 의하면,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결국 스스로 범죄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 무심코 쉽게 하는 험담 한 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당국이 집계한 추정치에 따르면 전국의 신천지 교인은 30만여 명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코로나 감염자는 이 중 일부다. 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굳건한(어쩌면 기존 교단의 교인들보다도 훨씬 더 헌신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절치부심하며 이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리고, 또 다른 반전을 도모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 종교적인 차원에서 신천지 문제의 ‘공’은 기존 교단에게로 넘어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슈퍼 전염원은 신천지라는 ‘기이한’ 종교단체라는 사실에 많은 개신교도들은 “사이비 종교의 파행적 결과”라고 지적하지만, 실은 파행의 정점에 배타적인 보수적 개신교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개신교 내에서 나오고 있다. 

대구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소명교회의 김종복 씨는 “어떤 사람은 (코로나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질병관리본부가 책임지라고 한다.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는 ‘신천지 성장이 두려운 사탄이 준 시험’이라고 하고, 어떤 개신교 선교사는 ‘중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한다. 누구의 책임인가. 누구의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이 시대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1)

 

청년들은 왜 신천지 교회를 찾았을까?

그는 “이번 사태의 숙주로 지목된 신천지라는 집단이 있다. (...) 이들을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데, 이들에게 책임을 미룰 게 아니다. 그들 중 우리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교회 지도자로서 우리의 책임도 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을 놓쳐 버렸기에 그들이 상처받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것이다.”

그가 한국사회의 주류종교인 개신교의 책임론을 지적하는 것은 교회의 주축이 돼야 할 20~30대 청년층이 신천지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한국 확진자들의 현황에서 특징적인 현상은 노령층이 주를 이루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20대가 26.97%로 가장 많고, 50대가 18.99%로 그 다음이며 40대가 13.70%, 30대가 10.23%으로 그 뒤를 이었다는 점이다.

중세시대 훨씬 이전의 고대 원시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팬티목사’나 ‘삥목사’들이 나타나 “(나를 위해) 기꺼이 팬티를 벗으라”느니, “십일조를 안 하면 지옥에 간다”는 식의 막말을 하고, 기성세대 교인들이 그런 목사를 따르며 몰려다니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이런 교회와 목사를 따르는 데 당혹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의 고달픈 삶에 영적 안식처를 갈구하는 청년들에게 신천지라는 달콤한 말을 앞세운 기이한 종교가 파고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바이러스 확진자의 대부분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사실에서 상당수 개신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오래전부터 ‘이단’과 ‘사탄’으로 규정한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당연한 응징으로 몰아붙이며, 마음속으로 회심의 쾌재를 부르짖을지 모른다. 이들 개신교 지도자들은 초기 확진자 몇 명이 신천지 선교를 위해 중국 우한을 다녀온 점을 들어 ‘우한 바이러스’라고 칭하며 대통령의 반미친중 성향이 이번 바이러스 위기를 초래했다면서 대통령 사과와 함께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상당수 기독교 목사들은 “종교인 과세를 추진 중인 문재인 정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자, “하나님이 이단을 심판하기 위해 코로나를 주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바이러스 감염의 최정점에서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벌이는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비웃듯,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은 정부의 집회 자제요청을 ‘종교탄압’이라 비난하고, “한국 교회 역사의 114년, 6.25 전쟁 중에도 예배를 중단한 적 없다”라며 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 목사들이 예수를 앞세워 돈벌이에 나선다”는 항간의 지적처럼 하루에 수천, 수억이 걷히는 헌금에 눈이 멀었기 때문일까?(3) 

20~30대 청년들이 ‘정통’을 자칭하는 개신교가 이단시하는 신천지에서 ‘은밀한’ 영적 평화를 갈구했다는 사실은 종교단체, 특히 개신교에게 적지 않은 질문을 안겨준다. 동네 곳곳에 예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한 십자가들이 즐비하게 세워졌는데도, 왜 그토록 많은 청년들은 영적 안식을 엉뚱한 곳에서 구하다가 몹쓸 바이러스에 걸렸을까? 이단종교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로, 신천지 교주의 매끄러운 세치 혀와 혹세무민하는 교리만이 청년들을 끌어들인 미끼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천지의 ‘눈부신’ 발전은 수만 명의 교세를 자랑하며 광장에서 자주 태극기 시위를 벌여온 개신교 지도자들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달리, 헐벗고 소외당한 계층을 향한 낮은 자세를 취하기보다, 보수정치권과 결탁해 태극기를 흔들면서 ‘종북’, ‘빨갱이’ 타도를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에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불안감을 보듬을 여유가 없었고, 그런 틈을 신천지는 파고든 셈이다.

코로나 19은 치사율이 높지 않지만,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겐 치명적이다. 바이러스 방역과 감염자 치료에 여념이 없는 민관 총력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목사라는 이들이 교인들을 모아 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그리고 은폐된 공간에서 노인들에게 선동과 거짓으로 자신들만의 천년왕국을 주문(呪文)하며, 공동체 정신을 뒤흔들고 있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혼돈의 시기에 종교집단이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좌파 정권 타도”와 “대통령 하야”를 외쳐대고, 여기에 호시탐탐 정세를 뒤엎으려는 정치세력이 동조하며, 언론이 이를 확대재생산 하는 처사는, 어떻게 봐도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예배를 강행하는 21세기 교회, 흑사병을 확산시킨 14세기 교회

역사 이래로 전염병에 종교세력이 똬리를 틀 때 엄청난 비극의 피를 뿌렸다. 14세기 흑사병(페스트)이 발생해 유럽 인구 7,500만의 1/4이 죽음을 맞은 것은 종교의 무지몽매함과 광기가 한몫했다.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진단과 처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성직자는 이를 신의 형벌로 간주하고 기도가 부족하다며 대중을 교회로 내몰아 흑사병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채찍질 고행단(Confraternities of Flagellant)’은 병을 신의 벌로 해석하고 채찍질로 자신의 몸을 때리는 고행으로 죄를 씻으라고 강요하며 마을을 순례하면서 흑사병을 전염시켰다. 나중에는 점점 과격해져 인종대학살을 선동하고 유대인을 볼 때마다 죽였다(존 켈리, 『흑사병 시대의 재구성』). 

페스트로 상실한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성직자들은 무고한 여인 수십만 명을 마녀로 몰아 불에 태워 죽였다. 17세기부터 유럽은 과학혁명과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교회 밖에 공론장을 구성하고 여기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토론을 하면서 진리를 모색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사회를 구성했고 주술의 정원에서 벗어나 합리성의 햇빛 하에 근대로 이행했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정권 이후 공론장이 간신히 형성됐으나,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보수 개신교와 보수당,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SNS에서 그럴듯한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도들은 이번 기회에 신천지 등 사이비 종교를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상점과 거리 곳곳에 ‘신천지 아웃’, ‘신천지인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을 붙여놓고, 교인들을 동원해 각종 SNS에서 ‘신천지 페친’을 색출해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영세상인과 저소득층을 위해 재난 기본소득제, 재난 기금, 마스크 5부제를 채택한 조치를 두고도 보수 개신교와 보수당, 보수언론들은 ‘사회주의의 노선’으로 비판하며, 오는 4월 15일에 있을 총선에서 판을 갈아치우자고 소리를 높인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시민들이 일상을 차츰 회복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해온 개신교 지도자들과 보수 매체들은 아직 코로나와의 싸움에 여념이 없는 정부에 어떻게 ‘사회주의’ 낙인을 찍을지 눈을 반짝이고 있다. 머지않아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한국 사회는 바이러스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는 데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특히 개신교 지도자들이 자성의 소리 없이 신천지 교인들을 이단의 재단에 희생양으로 삼을 경우, 제2, 제3의 신천지 교단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최승현·이은혜 기자, ‘코로나19가 불러온 대구의 주일 풍경’ <뉴스엔조이> 2020년 2월 24일.
(2) 편집국, '코로나대참사 문재인 시진핑굴종속 아베 맞짱 볼썽' <미디어펜>, 2020년 3월 6일.
(3) 이은정 기자, ‘집단감염 공포에도 교회는 왜 예배 강행할까’, <연합뉴스>, 2020년 3월 22일.

 

그림·황지현
화가 황지현은 스치는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순간들, 유동하는 기억,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풍경 등 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감응과 충돌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코로나19의 습격을 받은 우리의 삶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순간들을 보는 듯해, 이번 호에서 작가의 작품들을 선택했다. 그는 9회의 개인전과 60여 회의 기획 단체전을 거쳤으며,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으로 전시 및 창작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는 다수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참여하기도 했다. (3~12면, 32~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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