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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오류’의 진실
‘네덜란드 오류’의 진실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1.12.3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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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1월, 대한/입춘
금산의 한 오지마을로 가족을 찾아가는 이들을 봤다. 입춘을 빨리 맞이하는 농촌의 1월은 가족과 음식이라는 중요한 두 가지로 설을 시작하는 셈이다.

대한(大寒)은 24절기 중 마지막이며, 한 해 중 가장 춥다는 기간이다. 천구 위의 태양이 지나는 길, 황도면을 따라 측정하는 경도인 태양의 ‘황경’이 300도가 되는 때다. 양력으로는 1월 20일 내지 1월 21일에 들고, 음력으로는 12월에 든다.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고,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이라 하며 계절적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로 여겼다. 풍속에서는 이날 밤을 ‘해넘이’라 해,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소한이 가장 추운 편이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소한에 언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 등의 말이 생긴 것도 소한이 대한보다 춥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절기상으로는 1월에 소한과 대한이 들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1월의 새로운 절기에는 대한과 입춘이 든다. 그러나 그런 의미마저 사라졌다. 대한에도 평균 기온이 영상을 유지하기에, 입춘도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 추위에 찾은 용인의 유리 공장. 노동자들이 합심해서 섭씨 1,500도의 용광로 도기니를 꺼내고 있다. 이곳 공장의 온도는 한여름이다. 

한겨울에 가장 더운 용광로를 찾아

이토록 추운 시기에, ‘가장 더운 곳은 어디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취재한, 용광로와 함께하는 유리공들이 떠올랐다. 집 근처인 용인에 이런 유리 공장이 있을까 찾아봤다. 마침, 아직도 대롱으로 불어서 유리관을 만드는 공장이 남아있었다. 전국에서 한손에 꼽는 공장 중 하나다. 이제 3D 업종이란 이름의 작업장들은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거의 이전해 이런 유리 공장을 찾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됐다. 

대한의 아침 일찍, 작업 준비에 한창인 공장을 들렀다. 원형의 용광로 주변에는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주변도 한여름보다 덥다. 나이든 노동자들이 쇠로 만든 대롱을 들고 분주하게 용광로를 드나든다. 대롱 끝에 녹은 유리를 묻혀 숨으로 풍선을 분다. 그렇게 유리 공을 만들어 모양을 잡아 나간다. 여기서 만드는 것들은 비커 등의 과학용 유리 용기를 만드는 곳이다. 당연히 강도나 정밀도가 높다. 

유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기후변화의 원인 중 하나다. 여기서 만드는 유리컵 종류는 아니고, 좀 더 큰 사이즈의 건축용 유리가 그렇다. 산업혁명 후 자본가들이 부유해지면서 자신이 살던 집의 창을 넓게 내게 시작했다. 바로 유리를 사용해서 말이다. 이는 유럽에 큰 붐을 일으켰고, 1851년 런던박람회에서는 완전히 유리와 강철로만 만든 하이드파크의 ‘수정궁전’이 선보였다. 

이렇게 유리를 활용한 건축에서 발생하는 기후문제의 원인은, 단지 유리를 만드는데 쓰이는 연료 때문이 아니라 실내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에어컨과 히터를 마구 틀어댄다는 데 있다. 부산 해운대의 유명한 전면 유리 아파트는 엄청난 전기료를 지불해야 살 수 있다. 

 

1월은 원래 농한기였지만 요즘 농촌은 뭐든 빨라졌다. 식물의 생장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안성의 바우덕이 후예들이 1년간의 무사한 농사를 기원하며 풍물을 논다.

‘네덜란드 오류’, 들어보셨나요?

정신없이 오전 작업이 끝나고 장비를 정리하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용광로를 달구는데 사용하는 벙커C유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황 때문이다. 이곳이 3D 업체인 이유 중 하나가, 질 낮은 중유 사용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유는 사용이 중단되고 있는 추세다. 연소 시 발생하는 대기 오염물이 너무 많아서다. 사실 우리는 주변에서 중유를 태우는 곳을 잘 모른다. 우리 주변은 매우 쾌적하지만, 어느 곳은 오염물질이 넘쳐난다. 

환경을 논하는 지식인 집단에서 사용하는 ‘네덜란드 오류’라는 것이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네덜란드는 유럽에서도 환경 선진국으로 통한다. 그런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의 생활도 사실은 지구에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자 사이토 고헤이는 그의 저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에서 네덜란드 오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실 “이런 나라들의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은 비교적 심하지 않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처리 등 온갖 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박하게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음에도 말이다.

이 모순되는 상황의 원인은, 기술의 진보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성장이 일궈낸 기술진보로 공해를 일으키는 오염물질을 제거하거나 배출하지 않게 됐다고 말이다. 하지만 환경오염 감소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뤘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 감소는 단순히 기술발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원 채굴 쓰레기 처리 등 경제발전의 부산물들을 후진국에 떠넘긴 결과다.

이 같은 국제적인 전가를 무시한 채 “선진국이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했다고 믿는 것을 네덜란드 오류다”라고 사이토는 이야기한다. 이글거리는 용광로와 싸우는 늙은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생에서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개발에 바쳐온 그들의 노동이 서글퍼진다.

 

가야산 해인사에 봄이 왔다. 아직 눈도 녹지 않은 1월인데 벌써 나무에 푸른 새순이 돋고 있다. 이날은 고승이 돌아간 날로 재가승려들과 신도들이 다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라진 입춘은 이미 1월부터 

입춘은 원래 2월 초순이지만 이제 1월 중하순이면 입춘 날씨다. 아니, 입춘이란 절기의 날씨는 사라지고 말았다. 1월 내내 평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입춘은 원래 태양의 황경이 315도에 드는 때이며, 양력으로 2월 3~4일에 들었다. 일 년 중 봄이 들기 시작하는 날이기에, ‘입춘(立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개 이때를 즈음해 설날이 온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했다. 그러나 입춘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시기 기상이 매년 불규칙해 이때를 전후한 시기가 1년 중 가장 추운 해도 있다.

입춘의 어느 날 카메라를 메고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코를 시리게 하는 경기도의 찬바람도 봄바람이 섞였는지 안성의 청룡사에 들렀을 때는 봄을 맞이하는 ‘바우덕이 농악패’의 한바탕 풍물소리가 훈훈하다. 자세히 보니 청년은 없고, 모두 안성과 평택에서 한가락 했던 노인들이다. 안성을 떠나 충남 금산에 들어가니, 분지 영향 탓인지 눈이 제법 쌓인 채로 귀향 손님들을 맞는다. 아직 설은 멀었지만 먼저 고향집에 들른 타지 나간 가족들일 것이다.

눈 쌓인 마을을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는 이들에게 또 봄내음을 맡는다. 여행은 계속 남쪽으로 이어져 가야산에 다다른다. 사실 원래 목적이 해인사에서 다비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떠난 여행길이었다. 해인사 앞에 도착한 새벽, 출출한 속을 능이버섯국으로 채웠다. 원래 가을에 채취해 겨울에 조리해 먹는 대표적인 사찰음식이다. 아마도 저녁까지 다비식 취재를 하다보면 오늘 유일하게 먹은 밥일 것이다. 그렇게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올라가는 해인사 너머 가야산의 모습은 아직 설경이다. 

그런데 이미 숲의 나뭇가지들에는 푸르스름한 새싹이 돋고 있다. 내가 사는 용인에서 여기 경남 합천까지 남쪽으로 200킬로미터만 내려와도 계절이 바뀌는 느낌이다. 느낌이 아니라 정말 기후가 변한다. 이곳 합천에서 겨울철 가장 많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고온 작물인 파프리카니 말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1월 한겨울 다비식이 한창인 이곳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는 것이다. 스님의 법력인가? 아니면 지구 온난화의 현실인가?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 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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