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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의 문화톡톡] ‘소사이어티’가 없는 카페의 공허함
[성일권의 문화톡톡] ‘소사이어티’가 없는 카페의 공허함
  • 성일권(문화평론가)
  • 승인 2019.10.13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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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소사이어티>, <미드나잇 인 파리>, 그리고 그밖의 것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던가. 미각이 삶, 즉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면 후각은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미각기관인 혀는 후각기관인 코와 달리 대상과의 직접 접촉을 필요로 한다. 물론 미각도 간혹 대상과의 접촉 없이 자발적으로 감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몸이 아플 때에는 입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쓴 맛이며 신 맛이지만, 벗들과의 대화와 그 분위기에 취할 땐 쓴 맛과 신 맛마저도 신의 음료 넥타’(nectar)처럼 달콤하다. 커피 한잔씩 테이블에 놓고서 쉼 없는 토론 속에 격론과 반론, 그리고 분노와 냉소, 또는 찬동과 동의가 겹쳐지는 카페의 공간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구가되는 공론장에 다름 아니다.

 

문호들이 자주 찾은 카페 레뒤마고에는 이제 관객들로 넘쳐난다
문호들이 자주 찾은 카페 레뒤마고에는 이제 관객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위르겐 하버마스에 따르면, 19세기까지 자유로운 토론과 담론 속에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으로서 각광받아온 카페는 자본주의가 본격화한 20세기 들어 자본이 장악한 신문이나 TV등 대중매체에 여론형성의 기능을 물려주고 그저 커피나 주류를 파는 업소로 전락했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가()의 카페 플로르레뒤마고19세기 문호들이 즐겨 찾았고, 그후에도 사르트르와 드보브아르, 카뮈, 부르디외, 푸코, 들뢰즈, 헤밍웨이 등 수많은 지식인들의 지적 교류의 장으로 각광받았으나 이젠 명품 브랜드로 치장한 관광객들로 시끌벅적 넘쳐난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나 와인을 홀짝이며 철학과 문학을 논한 지식인들의 모습은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나 희미하게 보인다. 카페가 담론 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더 중시될 땐 커피나, 음료, 케이크 등 군것질의 맛은 부가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들이 맛집을 찾아 카페에 빈번하게 들락거렸을 것 같지는 않다.

카페는 학문을 교류한 아카데미아였고, 민주주의를 성찰한 아고라였으며, 느긋하게 앉아 사색을 즐기는 사유의 공간이었다. 현대에 들어, 이 곳 카페들을 찾는 관광객들이 비록 토론과 사색 대신에 샤넬과 에르메스를 두른 채 천박스러운이야기와 웃음을 왁자지껄 나누지만, 그럼에도 문호들의 흔적을 느끼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하버마스의 책 제목처럼 자본주의가 초래한 공론장의 구조 변동으로 인해 카페는 더 이상 토론과 사유의 공간으로서 기능을 하지 않는다.(1)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의 한 장면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의 한 장면

뉴욕식 카페 소사이어티 vs. 파리식 카페 소사이어티

영화 <카페 소사이어티>(2016)에선 미국식비즈니스 카페의 전형이 엿보인다. 우디 앨런의 47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1930년대 뉴욕의 화려한 사교계와 스타들이 우글거리는 할리우드를 오가며 전개된다. 영화의 제목인 카페 소사이어티는 클럽형 카페를 무대로 펼쳐지는 사교계를 일컫는다. 영화를 잠깐 보자면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꽤나 잘나가는 삼촌 필을 믿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뉴욕 청년 바비 돌프먼(제시 아이젠버그)은 삼촌의 연인,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첫눈에 반하고, 보니 역시 그런 바비를 사랑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화려한 조명아래서 타들어가는 하루살이의 슬픈 몸짓일 뿐이다.

능력 있고 돈 많은 삼촌의 연인을 사랑한 바비, 연인의 보잘 것 없는 조카를 사랑한 보니는 서로 사랑하는데도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바비는 삼촌 필이 늘 주인공인 화려한 사교계, , ‘카페 소사이어티에서 자신이 그저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할리우드 생활을 청산하며 보니에게 말한다. “이 곳 헐리우드에 환멸을 느껴요. 정말 재미없고 추잡하고 잔인해요. 나랑 결혼해서 뉴욕으로 가요.”

하지만 보니는 지금 당장에 능력 있는필의 품안으로 돌아간다.

결국 혼자 뉴욕으로 돌아온 바비는 형이 운영하는 카페 레 트로피크에서 일을 구하고, 상류층 단골 손님들, 즉 카페 소사이어티를 관리한다. ‘레 트로피크는 입소문을 타고 뉴욕 최고의 멋쟁이와 사업가들이 몰리는 사교장으로 성장한다. 유력 신문에 기사가 실리면서 바비와 카페는 더욱 유명해진다. 덕분에 바비는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 사교계 명사들, 암흑가의 실력자들, 정치인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바비는 천 달러 짜리 삼페인을 나눠 마시면서 손님들의 은밀한 슬픈 사연과 기쁜 사연 등을 들었고, 점차 그 일원이 되어간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반면에 우디 알렌이 묘사한 같은 시대 파리의 카페는 바비가 운영한 뉴욕 클럽 카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성공과 돈, 출세, 뒤틀린 사랑이 뒤엉킨 뉴욕 카페의 모습과는 달리, 우디 엘런은 묘사한 <미드나잇 인 파리> 속의 카페에서는 어네스트 해밍웨이, F 스캇 피츠제랄드, 젤다 피츠제랄드, 고흐, 고갱, 파블로 피카소, 살바드로 달리, 거트루드 스타인이 문학과 예술을 논한다. 물론, 지금의 파리 카페는 우디 알렌이 소환한 1920~30년대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져 있겠지만. 사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알렌의 과거 예술인들에 대한 러브레터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오웬 윌슨은 알렌의 희망사항이 투영된 캐릭터인 셈이다. 그는 현실에서 성공적인 헐리우드 각본가이지만, 조금더 깊이가 있는 문학을 하고 싶어하고, 현재보다는 향수에 젖어 과거가 더 이상적이고 로맨틱했다고 믿고 있다. 묘한 사건으로 자정만 되면, 파리의 카페 거리에서 자신이 동경하고 존경했던 문호들을 만나서 문학과 예술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우디 앨런이 꿈꾸는 카페환타지는 탐욕적인 사업가들과 탈법범법자들이 득실대고, 세속적 출세와 뒤틀린 사랑이 뒤범벅된 뉴욕식 카페 소사이어티가 아니라, 문화예술인들이 작품과 철학과 인생을 논하는 파리식 카페 소사이어티가 아닌 가 싶다. 행운의 여신이 시간여행 티켓을 주고, <카페 소사이어티>속의 레 트로피크<미드나잇 인 파리>속의 레뒤마고중에 선택하라면,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쓰디쓴 에스프레소 더블을 입에 털고서 헤밍웨이와 만나 그의 작품 속에 흐르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지금 시대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그의 고견을 듣고 싶다.

 

도서관이 된 카페
도서관이 된 카페

'소사이어티가 사라지는 카페'

세계화의 탓일까, 취향의 변화 탓일까? 뉴욕식이건, 파리식이건 간에 이제 더 이상 어느 카페에서도 카페 소사이어티는 작동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적으로, 또는 비즈니스적으로 사교계의 핫플레스로 각광받던 카페들은 이제 자신들의 흔적을 기념하는 셀카족 장소나, 맛집 정보를 찾아 게걸스럽게 이색 음식을 탐하는 먹보들의 순례지, 또는 시험공부에 집중하는 이른바 카공족들의 도서관으로 진화했다. ‘소사이어티가 빠진 카페는 웬지 허전하다. 비록 사이버상이지만, 포털 사이트에 수많은 카페들이 생겨나는 것은 현실 속 카페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는 사이버상의 카페에 과연 소사이어티가 있을까? 삼삼오오 모여서 누군가 화두를 던지고, 다른 누군가는 의견을 제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론을 하고, 또 재반박을 하고, 그리고 논쟁이 이어지고, 때로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며 사자후를 토하고, 그러면 누군가 박수를 치고. 가까운 과거에 우리가 보고 겪은 카페 소사이어터'의 모습이지만, 이제는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진다.

며칠 전, 자주 가던 카페에서 지인들과 검찰개혁을 주제로 대화를 하던 중, 한 젊은이로부터 시끄러워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조용하게 말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에 다혈질인 친구의 성난 표정을 보고서 손을 내저으며 겨우 그를 진정시켰다.

자슥, 그럴려면 도서관에나 가서 공부하지.”

우리는 뒷자리의 젊은이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로 불평했다.

그러게 말야. 그런데 도서관보단 이곳이 공부가 더 잘 될 거야. 공부 집중에 도움이 되는 백색소음이라는 게 있잖아.”

불행하게도 우리의 목소리가 집중에 방해되는 흑색소음이었던 셈이군.”

 

글: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위르겐 하버마스, 공론장의 구조 변동(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2001,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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