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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주술사, 또는 저널리즘?
바이러스, 주술사, 또는 저널리즘?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0.04.2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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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엄(medium)’은 심령술의 영매나 무당을 의미하지만, 역병을 옮기는 바이러스 같은 매개체(媒介體)를 뜻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일각에서 왜곡보도를 일삼는 매스미디어의 기자들을 가리켜 ‘바이러스 덩어리’라고 하지 않고, ‘기레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다. 어원을 따진다면, 미디엄의 복수형인 ‘미디어(media)’는 신의 뜻을 이어받아 인간계에 전하는 영매의 굿거리처럼, 곳곳의 뉴스를 대중에게 전하는 매개체, 즉 대중매체인 셈이다.

‘바이러스’라는 미디엄이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듯,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미디어는 우리의 정신세계에 송송 구멍을 내며 갉아먹는다. 매스미디어가 공동체(community)의 공감적 언어,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사용하지 않고, 반(反) 공동체적이고 반사회적인 언어를 남발한다면 그것은 사악한 영매의 해악한 주술이거나,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기생충 숙주들의 날갯짓인 셈이다. 건강한 미디어(media)는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개입하며 의견이나 갈등을 조율(mediation)하지만, 건강치 못한 미디어는 돈을 쫓아 시시각각 움직이는 주식 시세표 마냥, 즉시적으로(immediately) 자신들의 주의·주장만 내뱉는다. 

 

<접시>, 2016 - 스루비 아카야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려면 논쟁적 현안에 대한 성찰과 조율, 숙고의 시간(meditation)이 필요하다. 미디어가 지향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시공간의 간격(distance)을 강조하는 ‘소통(疏通)’으로 번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결국, 미디어가 숙고의 간격 없이 코로나 확산만큼이나 찰나적 전파를 목표로 삼는다면, 그것은 ‘미디어’로 성체(成體)가 되지 못한 채 바이러스 같은 미디엄(medium) 상태에 머무는 ‘불완전 변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습한 최근 몇 달 동안 종편 TV와 보수 신문 등 대중매체들이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심각한 사안에 대해 즉물적인(immediate) 뉴스를 양산하며, 가뜩이나 두려운 우리의 삶을 더욱 어지럽힌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국내 언론이 아닌 외국 언론을 통해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심지어 영국 BBC 기자는 한국 언론에 “내 기사를 정확히 번역하라”고 통탄했을 정도다. 누구나 1인 미디어를 갖춘 현 SNS 시대에는 더 이상 소수의 대형 언론사들이 뉴스를 독점할 수 없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에는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수준 높은 논점과 유력한 주장들이 가득하다. 언론과 기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실에 어긋날라 치면, SNS에는 “기레기”라는 야유와 냉소가 빗발친다.

언론의 신뢰가 위기를 맞이한 지 이미 오래지만, 요즘처럼 작두 위에 올라 노골적으로 칼춤을 추지는 않았다. 어쩌면 과거 권위주의의 시대에는 소수의 언론사가 침묵과 독점의 카르텔을 형성한 반면, 지금은 모든 것이 투명한 현실에서 언론의 행태가 전혀 변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일 것이다. 신문과 잡지의 구독률이 뚝뚝 떨어지고, 광고에 치중했던 수익모델은 바닥이 드러났고, 독자들의 뉴스 소비는 네이버와 다음을 비롯한 포털이나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이뤄지면서 언론은 방향을 잃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국제질서와 정치·경제·사회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전문가들을 불러 제법 수준 높은 진단을 늘어놓지만, 정작 언론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머지않아 진정될 코로나 사태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의 대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파죽지세로 우리 삶을 내치던 신자유주의는 전환점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것이고, 경제·사회·교육·종교·일상생활에서도 과거의 양적 맥시멀리즘에서 벗어나 질적 미니멀리즘의 가치가 점차 자리를 잡을 것이다(필자의 소망이지만). 

 미디엄인 코로나 바이러스도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미디어의 미래다. 저널리즘의 본질을 망각한 미디어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진 그 자리에 바이러스보다 더 견고한 ‘바이러스 덩어리’로 굳어지지 않을까 하는….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파리 8대학에서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주요 저서로 『비판 인문학 100년사』, 『소사이어티없는 카페』, 『오리엔탈리즘의 새로운 신화들』, 『20세기 사상지도』(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화들』,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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