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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
권력을 휘어잡고 세상을 거머쥐겠다고?
  • 프레데릭 토마 | 정치학자
  • 승인 2020.05.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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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활동의 모호성

재난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는 이들은 전 세계에 수백만 명에 달하며, 이들의 생존을 돕는 인도주의 활동을 위해 매년 수십억 달러를 모금한다. 그러나 정작 이 대규모 기금을 집행하는 국제구호단체는 재난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정부·기관·개인에게 자신들의 규정을 강요하며 권력자로 군림하려 한다.

 

 머시콥의 자원봉사자들

지난 10년, 전 세계 인도주의 활동 지원금이 5배 수준으로 증가해 연간 구호기금은 289억 달러에 달한다.(1) 구호단체 수도 증가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설립한 지역 후원단체, UN 산하 기구, 국제적십자 운동, NGO(비정부 기구) 등 여러 구호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러나 정작 재난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무력분쟁, 기후변화, 도시화로 인한 재난 등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재난이 급증해 구호기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2018년에는 재난으로 인한 희생자 수가 2억 600만 명에 달했다. 

결국 후원기금이 적재적소에 투입되지 않아 정작 피해자들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구호단체 간 비협조, 현장에 대한 이해 부족, 현지 구호활동가 배제 등으로 인해 국제원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이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2) 물론 구호단체 측은 긴급인력 충원, 미흡한 제도 등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구호단체 간 권력의 불균형이다. 

2017년에는 세이브더칠드런, 국제구조위원회, 국경없는의사회, 옥스팜, 월드비전 등 12개의 국제 NGO들, UN 산하기관들이 전체 구호기금의 2/3를 할당받았는데, 이 금액은 재난지역 및 국가 구호단체가 받은 금액의 20배에 달했다.(3),(4) 즉 일부 국제구호단체들만이 주요 후원국인 미국, 유럽연합, 일부 유럽 국가가 지원해주는 자금을 독식하는 셈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도 대규모 구호기금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최대 후원국으로 부상했다. 이들 국가는 시리아와 예멘 전쟁에 참여한 이후 국가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따라서 구호기금 지원의 의도는 국가 이미지 개선으로 보인다. 

 

구호 활동의 ‘현지화’가 절실한 이유

구호 활동은 구호자금을 주는 ‘윗선’에서 국제원조 우선순위와 수혜 지역을 선정하며, 이 윗선에서 지시한 대로 구호 활동을 했는지 보고해야 한다.(5) 그리고 구호활동가들의 영어 능력, 사회적·문화적 배경 등과 ‘원칙’들이 이런 위계를 더욱 강화한다. 결국 (비영어권의, 가난한) 재난 국가의 현지 구호활동가는 배제해 재난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인 구조 활동을 어렵게 만든다.

2010년 아이티 지진 발생 당시 UN은 24억 달러를 모금했는데 이 중 현지 NGO는 겨우 0.4%, 아이티 정부는 1%만 직접 지원을 받았으며, 국제구호단체들이 주도하는 재건사업의 하청 업체 취급을 받았다. 이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예외적인 사례는 아니다. 부국들은 우선 자국의 NGO가 주도하는 사업에 후원한다. 그리고 이 부국의 구호단체들은 재난 발생 국가 현지에 소재한 NGO의 자금 용도를 보고 체계 관련 요구 조건을 준수하지 않으면, 그들의 능력을 평가절하한다.(6) 그래서 재난 지역이 직접 원조를 받는 금액은 전체 국제구호기금 중 3%에 불과하다. 

이런 권력 구조의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주요 후원국과 구호단체가 2016년 5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이스탄불에서 제1회 국제인도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2020년까지 구호기금의 1/4을 재난지역 또는 국가의 구호단체가 ‘가능한 직접’ 수령할 것을 약속했다(구호 활동의 ‘현지화’ 원칙). 이 같은 결정은 2014년 5월과 2015년 2월 중동과 북아프리카 ‘수혜국’ 국민 1,231명을 대상으로 국제원조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이다.(7) 

수혜국 국민의 의견은 구호 활동에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평균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도 되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재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구호 활동에 반영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후 2018년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국제원조의 부정적 평가에 힘을 실었다. 응답자의 80% 이상이 ‘국제원조가 자국의 자립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상당수가 ‘피해자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구호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8) 

 

재난 피해자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

이 설문조사는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음을 알려줬다. 실상 재난 피해자들은 외국 구호단체(및 언론사)가 도착하기 전에, 재난발발 직후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재난 피해자들은 무기력하고 수동적’이라는 편견이 만연하다. 물론 2004년 국제적십자연맹 마르쿠 니스칼라 사무총장은 “재난 피해자는 무기력하므로, 인도주의 구호활동이 절대적이라는 구태의연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재난 피해자와 그들의 위기극복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9) 

그러나 15년이 흐른 현재, ‘버려야 할 믿음’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해졌다. 물론 재난 피해국의 비참한 가난, 혼란스러운 분위기, 희생자의 연약함, 독재 정권의 무능과 부패 등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국제지원의 필요와 정당성이 더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재난 피해자들의 입을 막고 있다. 자국 정부, ‘해결사’를 자처하는 외국 구호단체, 그리고 얽히고설킨 국제관계에 가려져 정작 피해자들은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 탓에 결국 외국 원조가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제구호단체는 늘 순수한 의도를 내세우며 구호단체의 독립성을 옹호하기만 한다. 이런 문제는 구호 활동 이면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 때문이다.

1994년 르완다에서 후투족과 투치족 인종 갈등으로 인한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외국 구호활동가들과 기자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수한 난민 행렬을 양산하는 군사적·정치적·외교적 배경을 무시했다. 특히 국제구호활동가들은 미흡한 대처능력과 비협조적인 태도로 현지인들의 원성을 샀다. 국제 NGO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기자들은 활동가들의 ‘활약상’만 보도했다.(10) 당시 르완다에 절실했던 것은 국제원조가 아니라 정치적인 해결안이었다. 그러나 국제 구호 활동은 오히려 서구 국가의 몰지각하고 방만한 태도를 덮는 역할을 했다. 결국, 르완다에서 지원 부족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학살로 인한 사망자가 훨씬 더 많이 속출했다. 

 

‘시장의 원칙’은 구호활동에도 적용된다

20년이 흘렀지만 불평등한 상황을 존속시키는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았다. 2006년 1월 서구 9개 나라에서 발행하는 60여 개 일간지와 주간지의 국제적 재난을 다룬 기사를 분석한 결과, 지면은 재난의 규모에 비례해 할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에 있어 재난의 규모와 그것이 양산해내는 고통보다 중요한 것은, 재난이 부국에게 미치는 경제적·전략적 영향이기 때문이다.(11) 

일례로 2004년 인도양 쓰나미 참사 때 언론은 이 재난이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언론이 재난 자체에 주목하고 크게 다룰수록 구호단체들은 재난현장에 몰려든다. 그리고 구호단체들끼리 협조하기는커녕 서로 전면에 나서려고 경쟁한다. 대대적으로 보도된 재난현장에 달려가면 돋보이고(즉 신뢰감을 얻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즉 지속적 활동을 보장하며), 구호 활동의 필요성을 부각할 수 있다(즉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렇게 ‘시장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에서 구호활동의 효율성은 중요하지 않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인도주의 활동단체는 후원금을 받거나 언론이나 정책 결정자들과 접촉하기 쉽기 때문에 권력을 행사하기도 쉽다는 사실이다.(12) 물론 필리핀 NGO, EcoWEB(Ecosystems Work for Essential Benefits, Inc.)의 레지나 살바도르 안테키사 사무총장은 이스탄불 인도주의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구호 활동의 현지화’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권력 관계의 부당함과 불평등,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는 요원해 보인다.(13)  

인프라 건설, 시민 보호, 공공서비스, 재난 예방에 대한 투자는 재난에 대한 어떤 사후처리보다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2015년 북미 인도주의 단체 머시콥(Mercy Corps)은 슈퍼 태풍 ‘팸(Pam)’이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Vanuatu)’를 강타했을 당시 필요한 지원 활동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구호팀을 파견했다. 그리고 이들은 현지 정부와 기관이 조직적으로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고, 과감하게 구호 활동이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방해꾼들이 돼버린 구호활동가들

반면 이런 통찰력이 없었던 유럽 국가의 구호단체는 2015년 네팔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아무런 사전 조사도 없이 카트만두로 떠났다. 그러나 이미 인근 국가인 중국, 인도, 파키스탄의 구호팀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구호단체의 난립으로 물류나 업무조율이 더 어려워졌고, 공항은 마비 상태가 돼 프랑스, 벨기에, 뉴질랜드의 항공편이 며칠씩 지연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활동은 구호가 아니라 방해가 돼버렸다. 

이런 황당한 경험 때문에 2018년 11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 구호활동가의 입국과 활동을 제한했다. 결국 인도네시아 국민이 자발적으로 구호조직을 만들었다. 2018년 11월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캠프 지역연합장 모히브 울라는 “우리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국제구호단체는 보조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14)

정부의 무력함을 지적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면 정책 결정자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치는 인도주의라는 미명 뒤에 교묘히 숨으려고 한다. 무능했던 정치를 만회하거나 정치적 활동을 활성화하고자 인도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전략이다. 미국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지적처럼 ‘인도주의 활동의 탈을 쓴 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이미 공공사회 서비스의 ‘NGO화’는 공공연히 진행 중이다. 게다가 공공 인명구조 시스템을 국제원조가 대체하려 하고 있다. 

‘개선해야 할 정치’는 인도주의 활동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다. 같은 편, 바로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글·프레데릭 토마 Frédéric Thomas
프랑스 리에지 대학 사회과학과 교수 겸 프랑스 삼대륙센터(Cetri) 연구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The Global Humainitarian Assistance Report 2019>를 참조한 수치. Development Initiative, 2019년 9월 30일, http://devinit.org.
(2) <Rapport sur le bilan des actions huit mois après Mitch 태풍 미치(Mitch) 이후 8개월간 활동보고서>, 긴급구호 재건개발 기구(Goupe URD), 플래지앙(프랑스), 2000년 1월 9일, Rebecca Barber, <One size doesn’t fit all. Tailoring the international response to the national need following Vanuatu’s cyclone Pam>, Save the Children-Care-Oxfam-World Vision, 빅토리아(호주), 2015년 6월.
(3) 유엔난민기구(UNHCR), 세계식량계획(WFD), 유엔아동기금(Unicef).
(4) Ben Barker, ‘Six aid policy priorities to watch in 2019’, <The New Humanitarian>, 2019년 1월 3일, www.thenewhumanitarian.org.
(5) Léon Koungou, ‘Désoccidentaliser l’aide 원조의 탈서구화’, 부록 ‘Quelle solidarité internationale ? 국제원조라니, 무슨?’,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5월. 
(6) Frédéric Thomas, ‘Haïti, l’imposture humanitaire 아이티, 거만한 인도주의 활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11월.
(7) ‘Preparatory stakeholder analysis. World Humanitarian Summit regional consultation for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세계인도주의정상회의, 뉴욕, 2015년.
(8) ‘Grand Bargain: field perspectives 2018’, Ground Truth Solutions, 비엔나, 2019년 5월, www.groundtruthsolutions.org.
(9) ‘World Disasters Report 2004’, 국제적십자사연맹(IFRC), 제네바, 2004.
(10) ‘The joint evaluation of emergency assistance to Rewanda, Study III. Principal findings and recommend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Network-Overseas Development Institute, 런던, 1996년 6월.
(11) ‘Western media coverage of humanitarian disasters’, Carma International, 런던, 2006년 1월.
(12) Michael Barnet,『Empire of Humanity: A History of Humanitarianism』, Cornell University Press, 뉴욕, 2011.
(13) ‘Roundtable: Going local’, <The New Humanitarian>, 2019년 4월 9일. 
(14) Kaamil Ahmed, ‘In Bangladesh, a Rohingya strike highlights growing refugee activism’, <The New Humanitarian>, 2018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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