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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문화·예술이 만들어가는 길
팬데믹 시대, 문화·예술이 만들어가는 길
  • 김희경 l 언론인
  • 승인 2021.12.3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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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을 몰아넣었던 흑사병. 그 극한의 공포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가 벌어진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내용이다.

1947년 출간된 이 소설은 7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주 회자되고 있다. 특히 2021년 초부터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페스트는 과거의 기록을 담고 있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광범위한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다시 찾아온 길고 긴 전염병의 시대.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험난하고 지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위기가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생존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중 문화와 예술은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인간들에게 문화와 예술은 반드시 필요하며, 멈추지 않고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은 곧 인간의 사유와 상상력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기화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실제 문화와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가치를 공유하고 또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을까. 

 

영화 <컨테이젼> - 네이버 영화

문화·예술 속 지혜의 메시지를 찾아

코로나19가 확산되자 사람들은 먼저 과거의 다양한 문화콘텐츠 속에서 ‘예언’ 찾기에 나섰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은 <페스트>와 함께 많은 화제가 됐었다. 영화는 박쥐로부터 전염병이 생겨나고,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퍼지는 과정을 담았다. 이를 다시 꺼내 본 사람들은 “미래를 예견한 듯한 작품”이라며 놀라워했다. 

넷플릭스가 2021년 1월 공개했던 <판데믹: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란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 또한 코로나19 확산 전에 제작된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람들은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며 감탄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행동은 단순히 예언적 성격의 콘텐츠를 발견하기 위한 것 자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떠올리며 비관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것 또한 아니다.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는 인류가 생존과 문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자 결과물이다. 그중에서도 현재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진 일부 장면들은 지독한 사유의 끝에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와 일부 장면들은 오랜 시간 축적되고 쌓여,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와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인류가 후대를 위해 그려넣은 작지만 정교한 길이다. 평소엔 우리는 미처 이를 인지하지 못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분명 이 길은 기나긴 시간에 걸쳐 이어지고 연결되어 왔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닿아, 고난에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다.

 

팬데믹에도 연결은 계속된다

사람들은 이 길을 발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있다. 문화적으로 팬데믹을 이겨낼 수 있는 다양한 극복 방안도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연결’이다. 

연결은 사실 양면의 동전과 같다. 혼자만의 고독을 해소해 준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선 부정적인 측면이 보다 부각되어 왔다. 과도한 연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었던 것.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전엔 이 단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학교, 회사 등 다양한 사회 공동체 안에서 매일 타인들과 생활하고 호흡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또 급속한 기술 발달로 인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들이 쏟아져 나오며, 24시간 타인과 이어져 있다는 기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진정한 의미의 연결은 사라지고 부차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들이 만들어낸 부작용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임이 최소화되고 재택근무 등이 실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연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실제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맞추며 상대의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진정한 의미의 연결은 인류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사람들은 본래 각자 흩어져 있다가도 함께 모여 많은 시간과 감정을 공유해 왔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탄생한 인간은 낮엔 각자 사냥 등을 하며 먹잇감을 구하고, 해가 지면 같이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맹수에 잡아먹히지 않고 오늘도 살아있다는 기쁨을 나누고, 내일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함께 했다. 결국 연결은 선택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은 이 같은 연결 본능을 가로막고 있다. 전염병의 특성상 사람들은 이전처럼 연결될 수 없었다. 이로 인한 갑작스러운 단절은 개인의 고립과 고독을 심화시켰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교류 방식을 찾아냈다. 오프라인을 넘어서 온라인 공간에서 연결을 시도하고 서로를 다독인 것이다. 이 연결의 중심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췄다. 그리고 이를 영상으로 찍고 이어 붙여 유튜브 등에 올렸다. 영국 웨스트엔드 배우 70명이 제작한 영상도 많은 울림을 주며 화제가 됐다. 영상은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로 시작된다. 그리고 한 배우의 얼굴이 먼저 나오더니 두 명, 세 명의 얼굴이 각각의 화면에 나온다. 그러더니 이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삽입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손에 꽃을 든 채 노래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북을 치는 손동작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화면은 70명의 얼굴로 가득 찬다. 이들의 음성을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겹겹이 쌓여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렇게 인간은 바이러스의 장벽을 뛰어넘는 새로운 연결 방식을 찾아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아끼고 응원하는 마음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말이다.

이뿐 아니라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자 첨단 기술을 접목해 연결을 확장하려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국내 문화계에선 이전부터 K팝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왔다. 고(故) 터틀맨의 모습을 첨단 기술로 복원해 12년 만에 그룹 ‘거북이’를 완전체로 선보이는가 하면, 고(故) 김현식의 모습도 복원해 감동을 안겼다. 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도였던 셈이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산 이후엔 여기서 나아가 세계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다. 해외 투어가 어려운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등을 활용해 생생한 무대를 꾸미고 몰입도를 높였다. 그리고 세계인들이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그 감동을 실시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소외된 주체, 예술인들을 위한 연대

하지만 팬데믹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다양한 문화적 노력에도, 극한의 위기로 인해 큰 타격을 받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이 노력의 주체인 예술인들이다. 이들은 문화 시장의 침체와 함께 생존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연, 영화 등 대부분의 장르에서 관객이 줄어든 탓에,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거나 각종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겨우 버티고 있다. 관객이 공연장과 극장에 있어야만 하는 문화예술의 ‘현장성’ 때문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공연, 주문형 비디오(VOD)와 같은 다양한 수익화 방안을 고민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술인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할 것은 <페스트>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인류가 쌓아온 지혜를 바탕으로 좋은 작품들이 탄생해 왔지만, 이를 재밌는 이야기와 함께 엮어내고 세상에 널리 알려온 주체들은 예술인들이다. 인간의 사유와 상상력의 총체가 문화와 예술이라면, 이를 꽃피우는 중심 역할은 예술인들이 해온 셈이다.

그렇기에 어떤 위기에도 예술가들의 생존과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보장하고, 이를 위해 연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코로나19 확산 이후 예술인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돕는 방안들이 모색돼 왔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의 고충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처음엔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잊어선 안된다. 예술인들의 머리와 손끝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창작물을 통해 인간들은 고난과 위기에도 살아갈 수 있는 혜안을 얻을 수 있음을.

 

깊은 어둠의 끝에 찾아올 찬란한 빛

전염병이라는 칠흑 같은 어둠은 2년째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희망을 발견하고 서로를 연결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젠 여기서 더 나아가 끈끈한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페스트> 역시 연대 의식을 강조하며, 연대가 있어야 오랜 어둠을 끝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던가.

어둠 끝엔 찬란한 빛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시대’란 뜻을 가진 ‘벨 에포크(belle epoque)’도 그러했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까지의 기간을 이른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파리는 초토화된 상태였다. 프랑스 혁명부터 파리 코뮌까지 80여 년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곳곳이 폐허가 됐었다. 

그러나 이 길고 깊었던 어둠 끝에 벨 에포크 라는 빛나는 시대가 시작됐다. 파리에는 다양한 개성과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모여 문화의 꽃이 피었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등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했으며 음악, 문학, 철학 등 장르를 불문하고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지금 이 기나긴 어둠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때 더욱 찬란하고 눈부신 나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연대도 강화되어야 한다. 

 

 

글·김희경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공연· 콘텐츠 산업과 트렌드를 연구하며 작품 비평에 관심을 두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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